"민감한 한일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에 시달리고 있다. 기자회견을 준비한 영화제 입장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점 사과드리고자 한다."

부산영화제 측이 지난 5일 뉴커런츠 기자회견장에서 심사위원인 쿠니무라 준과 오간 질의응답에 대해 7일 밝힌 입장이다.
 
 배우 쿠니무라 준이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 참석해 최근 제주 해상 관함식을 앞두고 일본 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는 것에 대해 "자위대는 욱일기가 자신들의 전통이라 굽힐 수 없다고 하겠으나, 한 번쯤 과거사를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며 "사실 일본 아베 정권은 욱일기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우 쿠니무라 준이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 참석해 최근 제주 해상 관함식을 앞두고 일본 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는 것에 대해 "자위대는 욱일기가 자신들의 전통이라 굽힐 수 없다고 하겠으나, 한 번쯤 과거사를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며 "사실 일본 아베 정권은 욱일기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성호

 
당시 쿠니무라 준은 제주 관함식 참석 예정이었던 일본 자위대 함정의 욱일기 게양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과거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 일본 아베 정권은 욱일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질문인데도 본인이 직접 관련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설명을 들은 뒤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 것. 이런 그의 모습에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옆에서 말을 들어보니 솔직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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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무라 준의 답변은 반향을 일으켰다. 해당 발언을 인용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에 쿠니무라 준이 일본 극우세력의 반발을 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부산영화제의 입장문은 이런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화제 측은 "배우를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 게 영화제의 책임"이라며 사과했다. 일본 내 반응에 대해 소속사 측이 부담을 느낀 것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게스트가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에 노출되지 않도록 꼭 유의하겠다"는 표현 등을 덧붙여 사실상 언론의 질문을 영화제가 걸러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영화제 혹은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가 질문하고 그 대상이 답변하는 것 자체가 일련의 취재 과정이고, 질문을 받은 쪽에서 자발적으로 답한 것을 두고 주최 측이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쿠니무라 준은 같은 날 영화제 측의 사과문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 보다, 밝은 미래의 희망이나 따뜻한 과거의 추억이 필요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왜, 지금 이렇게 엄중한 상황이 되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있기에 전 세계에서 이렇게나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이어 "영화제라고 하는 자리는 모두의 생각이나 의견이 섞이고 녹여져서 어느새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어가는 장이 되기를 저는 염원한다"고 밝혔다.

영화제와 영화인들의 소신 발언

영화제나 기자회견에서는 본래 다양한 질문이 나온다. 당사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주요 현안에 대한 배우의 견해를 묻기도 한다. 또, 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소신 발언을 꺼내놓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왔을 때, 간담회 자리에서 그에게 쏟아진 질문에는 영화제와 직접 관련 없는 현안들이 많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당시 국제적인 이슈였던 북핵 위기에 대해 "미국이 너무 적대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드 반대에 공감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은 사드 배치 문제를 비판한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를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유명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에 대해서도 본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법을 어겼다면 당연히 재판을 받아야 한다. 어떤 시스템에서도 정당화 돼서는 안 된다"고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 당시 주윤발 류덕화 양조위 이안 감독 등 배우들은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 이 때문에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중국 내 활동이 제한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윤발은 "돈을 조금만 벌면 된다"는 말로 응수했다.

올해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일본의 거장 음악감독 사카모토 류이치는 개막식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한반도에 이제 평화가 찾아오려 하고 있다"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축하드린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영화음악가이자 뮤지션으로 유명하지만 환경운동가이면서 탈핵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탈핵과 평화헌법 개정 반대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침수됐던 어느 학교의 피아노를 찾아 조율 없이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이 맞지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소리로 평가하는 대목에 탈핵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5일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유현목영화예술상을 수상한 오지필름이 수상 소감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도종환 장관이 지난 10년 동안 문화 예술인의 목줄을 옥죄었던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책임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5일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유현목영화예술상을 수상한 오지필름이 수상 소감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도종환 장관이 지난 10년 동안 문화 예술인의 목줄을 옥죄었던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책임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지필름

 
지난 5일 열린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유현목영화예술상을 수상한 부산의 독립다큐영화사 오지필름(문정현, 박배일, 김주미 감독)은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와 도종환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대한 책임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이행하도록,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시아 영화의 허브가 아닌 한국 영화의 허브 역할을 해나가도록 함께 싸워나갔으면 한다"고 말헸다.

모든 배우들이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건 아니다. 과거 칸 영화제에서도 당시 민감한 현안이었던 미국 대선 관련 질문이 나오자 미국 배우 심사위원은 "여기서 언급은 적절치 않다"며 피해갔다. 항상은 아니지만 영화제 측에서 관련 질문을 미리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거나 삼가는 영화인들 태도의 바탕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별로 서로 다른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어떤 국가는 자유롭게 소신을 밝힐 수 있는가 하면, 어떤 국가는 입조심을 하는 게 현명한 태도가 될 수 있기에 기자의 질문에 따라 그 대상이 적절히 판단해서 답하는 것이다.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공식적인 현장에서라면 더욱 그런 판단 기제가 예민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쿠니무라 준 간담회와 같은 날인 5일 오후에 열린 부산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초연> 기자회견장도 그러했다.
 
중국 배우 판빙빙의 탈세 의혹에 대한 생각을 한 외신기자가 묻자, 배우 바이바이허는 "답변하기 곤란한 것 같다"고 말문을 닫았다. 외신기자가 재차 물었지만, "제 일이 아니기에 여기서 말하긴 곤란하다"고 일축했다. 관금붕 감독 역시 "바이바이허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일"이라며 "바이바이허를 제외하고 다른 세 배우는 홍콩에서 주로 활동을 해 중국 대륙 시스템을 정확히 알지 못해 답하기 더 곤란하다"고 피해갔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초연> 기자회견에서 관금붕 감독과 배우 바이 바이허, 정수문, 엔지 치우, 량융치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초연> 기자회견에서 관금붕 감독과 배우 바이 바이허, 정수문, 엔지 치우, 량융치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성호

 
2014년 부산영화제 때도 당시 홍콩 시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황금시대>를 연출한 허안화 감독은 "적절치 않은 질문"이라며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반면 진가신 감독은 "홍콩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비통하다"고 솔직한 입장을 전했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고, 답변은 질문을 오롯이 받은 자의 몫인 것이다.

영화제가 정치적이면 안 된다?

일부에서는 영화제가 너무 정치적이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2004년 57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2004)이 상영됐을 당시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는 공개석상에서 "영화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영화제가 정치적이었던 게 아니라 마이클 무어가 정치적이었던 것"이라 말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올해 <화씨 11/9>(2018)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2012년 부산영화제서 월드 프리미어로 <남영동 1985>를 공개한 정지영 감독 역시 공개석상에서 "어느 감독이든 영화에 자신의 정치성을 담는다"며 당시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영화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국내외 크고 작은 다수 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동진 평론가도 관련 기자회견에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영화는 정치고 정치는 영화다"라고.

영화제가 영화의 해방구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제는 다양한 영화와 다양한 상황과 배경을 지닌 영화인들이 찾는 축제인 만큼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난감한 질문 혹은 적절치 않은 질문이라는 판단은 질문 받는 자의 몫이다. 피하고 싶다면 침묵을 택하면 되고, 소신을 밝히려 한다면 답하면 된다. 그것이 곧 부산국제영화제가 강조하는 독립성과 자율성에도 어울리는 태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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