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메인포스터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메인포스터

▲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메인포스터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메인포스터ⓒ 찬란


01.

올해 초,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 하나가 열렸다.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이름조차 생소한 어느 예술가에 대한 전시. 그는 피카소의 시기를 받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조각가이자 화가였지만, 그 명성만큼은 잘 알려지지 못한 인물이었다. 스위스 태생의 예술가는 스무 살 무렵 파리로 자리를 옮겨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으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전후 현대미술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20세기를 상징하는 예술가 중 하나로, 석고 원본 작품 한 점이 1,200억으로 경매에 낙찰된 바 있는 그 작가의 이름은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앞서 설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년에 이루어진 작업의 내용, 그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전기 작품들이 한 인물의 인생 전체나 특별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달리, 스탠리 투치 감독은 이 작품에서 예술가 자코메티(제프리 러쉬 역)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작가인 제임스 로드(아미 해머 역)를 대상으로 한 초상화를 작업하는 18일을 면밀히 보여주는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일생으로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떤 방식을 활용할 것인지 고민했지만, 한 예술가의 삶을 두 시간 남짓한 한 편의 짧은 영화로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작업한 마지막 초상화를 작품의 중심에 가져다 놓은 까닭이다. 덕분에 타이틀도 직관적일 수 있었다. 파이널 포트레이트, 즉 마지막 초상화.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

▲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 찬란


02.

영화는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는 대신 집약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18일 간의 동행은 대부분 그의 작업실 내부, 두 사람의 협업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작품의 러닝타임 역시 근래에 보기 드문 90분 분량으로 상당히 짧은 편에 속한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아내 아네트(실비 테스튀 역)와 캐롤라인(클레멘스 포시 역)과 관련한 플롯들은 자코메티의 삶을 슬쩍 들여다보게 만들 뿐, 그 이상의 역할을 부여 받고 있지는 않다. 처음에 이야기한대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삶 전체를 들여다 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단지, 그의 성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들 가운데 하나다. 그 대신 관객들은 자코메티와 제임스의 관계, 자코메티의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전기 작품이 그들의 삶 전반에 걸친 고증의 부분에 있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이 작품에서의 고증은 조금 더 특별한 부분이 있다. 두 인물이 어떤 배경이나 성격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이 작품에서 완벽하게 구성된 자코메티의 작업실과 내부를 채우고 있는 예술품들은 그를 설명하는 예시가 되기 때문이다. 직전에 언급했던 외부 인물들의 플롯과 유사한 장치로 활용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 감독은 1960년대 자코메티의 작업실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코메티 재단 관계자들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이를 통해 어느 작품보다 자코메티와 그의 예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캐롤라인과의 관계라던가 아내와 함께 자주 찾던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 동생 디에고(토니 샬호브 역)와의 관계 역시 실제 그의 삶과 아주 가깝게 표현되고 있다.

03.

초상화 작업이 진행되는 18일 동안 자코메티와 제임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행위 속에는 많은 사유들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사유를 했던 자코메티의 내면을 대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전에 그림은 아는 대로가 아닌, 보이는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의 모습 또한 작품을 쉽게 완성시키지 못하고 수십 번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이 모습은 인생의 허무와 죽음에 대한 묘사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이 또한 삶의 덧없음을 고민하던 자코메티 말년의 삶과 닿아있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작품의 표현과 이 작품이 내포하던 메시지의 정점은 자코메티가 완성해가던 작품의 대상인 줄만 알았던 제임스가 그의 초상화 작업의 끝을 맺는 장면에 있다. 단순히 화가와 작품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18일의 작업 기간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고 관찰하며 이해해 나가고 있었음이 이 장면에서 짧지만 명확하게 표현된다. 자코메티의 관찰이 제임스의 모습을 캔버스 위에 그려냈다면, 제임스의 관찰은 자코메티의 삶을 영화 속에 그려내는 셈이다. 그렇게 관객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하나의 작품 속에서 함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이 작품은 자코메티의 삶과 작업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이 작품이 두 사람의 협업이었다는 것에 확신을 만든다.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

▲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스틸컷ⓒ 찬란


04.

전체적으로 제임스의 시선에서 작품이 진행되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작품의 중심에는 자코메티가 있다. 마지막 초상화 작업이 협업이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캔버스에 채워질 대상은 바로 제임스였으며, 굳이 따지자면 자연스럽게 그가 조연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작품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데 있어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저서와 함께 이 작품을 이해해 보기를 권한다.

지난 2009년 죽음을 맞이한 제임스 로드는 21살의 나이로 프랑스에 첫 발을 디딘 후 파리에 거주하면서 자코메티를 비롯한 유럽의 유명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고 한다. 그는 1985년, 그와 함께했던 18일간의 기록을 'Giacometti Portrait' (국내 번역 명 작업실의 자코메티)라는 책으로 남겼고, 이 책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탠리 투치 감독 역시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생전의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이 작품의 더 깊은 여운을 위해 그의 저서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삶 전반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짧은 영화 한편이 그를 몰랐던 관객들에게는 호기심을 심고,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마지막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영화적 기능 밖에서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소를 불러일으키는 소소한 웃음들까지, 잔잔하지만 감독과 배우의 연륜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