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편집자말]
 장례식장 사진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다.ⓒ Pixabay

 
얼마 전 내가 일하는 재단에서 후원한 트라우마 심리 교육 워크숍에 참여했다. 트라우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심리적 외상 치유를 위한 작업을 직접 해보는 이 프로그램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트라우마는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에 사람을 묶어둔다는 정의가 와닿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의 사건이 끝이 난다고 그 일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리적 외상은 과거의 일이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며 그 결과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온전히 현재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강사는 우리에게 트라우마 증상을 안정시키는 방법 중 하나로 자기 주변의 물건을 만져보는 것을 추천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느끼다 보면 내가 과거의 사건과 떨어진 시간에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끝나고 늦은 밤,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버스에 앉아 워크숍의 내용을 복기했다. 내가 앉은 버스 의자를 계속해서 매만졌다. 이를 악물었다.

다소 냉정하게 말하자면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이를 겪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그 죽음이 병이나 사고, 나이듦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구분은 그리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두 경우 모두 사람들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내몰린다. 다만 '자살'로 규정된 죽음은 그 이유가 다른 것들에 비해 남겨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육체적 고통, 고독, 심리적 상처, 빈곤 등등. 추모하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일 내가 그 때에 손을 뻗을 수 있었다면. 이는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누군가 아픔을 호소하면 대부분 '괜찮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어쩔 도리가 없을 분더러 여유가 없다. 무슨 일인지 묻고 듣고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한다. 내가 그 때에 자초지종을 알고자 했다면. 듣고 보듬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죽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

우리가 죽은 사람과 함께 머무르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쁜 선택은 아니다.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따스함, 친밀함, 행복함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행위를 통해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 육신의 부재가 결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회상 속에서 우리는 죽은 이가 살아 있던때 주고 받았던 것들을 나눈다. 하지만 우리가 망자를 떠올리며 후회, 회한, 슬픔에 잠긴다면 이는 다른 문제다.

이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상처 받기를 반복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자와 달리 이런 행동이 선택적인 경우는 드물다. 나는 고인이 아픔을 호소했던 그 시간과 공간으로 계속해서 다시 호출된다.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해서 지켜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려야 할 지하철역이 어디인지 누굴 만나기로 했었는지 망각한다. 현실 감각이 옅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만 겪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죽은 이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그 관계는 보다 건강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답은 그것 뿐이다. 누군가의 부재가 계속해서 상처로 남아있고 그것이 일상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떠나간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이는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우리가 특정한 기억을 도서관의 책처럼 자유롭게 꺼내 보고 다시 넣어둘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즉 우리는 고인의 죽음을 인정하고 제대로된 작별을 해야한다. '내가 미리 알았다면, 그 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하는 후회는 우리가 현실을 완벽하게 수용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상실을 미연의 영역에 남겨 놓고 싶어하는, 안타깝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램이다. 우리는 이를 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차가운 단절의 과정이 될 필요는 없다.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노래
  
 레이디 가가 < Joanne > 앨범 커버 이미지.

레이디 가가 < Joanne > 앨범 커버 이미지.ⓒ 유니버설 뮤직

 
레이디 가가의 노래이자 다섯 번째 앨범의 제목인 < Joanne >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한 고모의 이름이다(또한 이는 가가의 실명이기도 하다). 조앤은 성폭력 생존자였지만 그 경험이 가져다 준 충격으로 인해 루푸스병을 심각하게 앓았고 끝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상실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레이디 가가는 고모인 조앤을 추모하기 위해 그리고 고통에 빠진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Joanne >은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서 여느 사람이 그렇듯 가가는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손을 잡고 남아달라고, 아파하는 나의 마음은 천사들 보다 당신을 더 원한다고 노래한다. 이 노래의 부제처럼 가가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도대체 어디를 가고 있다고 생각하냐고. 우리를 남겨둔채 도대체 어디로. 하지만 노래의 클라이막스에서 레이디 가가는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나는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어요/ 당신은 그저 그 다음으로 이동할 뿐이죠/ 그리고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거에요/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해도/ 당신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걸 기다릴 수가 없네요(Honestly, I know where you're goin/ And baby, you're just movin' on/ And I'll still love you even if I can't/ See you anymore/ Can't wait to see you soar)"

우리가 삶을 떠난 사람과 제대로 작별해야 하는 이유
 
가가의 노래는 명백히 등을 돌린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다. 떠나가는 사람, 더 이상 곁에 두고 손을 잡을 수 없는 사람. 하지만 가가는 이 과정을 슬픔과 단절의 경험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해도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라고, 작별을 고하는 대신 미소를 짓겠다고 말한다.

작별을 온전히 수용하되 그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한 인터뷰에서 가가는 고모인 조앤이 가족을 떠났지만 그녀가 생전에 전했던 강하고 아름다운 힘은 자기에게 남아 있으니, 조앤의 남겨진 삶을 자신이 계속해서 살아가겠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유예 혹은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인정한 사람, 즉 제대로 작별한 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태도다.

그래서 < Joanne >은 내게 아름다운 추모의 노래이지만 한편으로 애도의 지침과도 같은 곡이다. 죽은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먼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가가는 이 노래를 통해서 알려준다. 물론 유혹은 강력하다.

죽은 이를 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후회하며 고통 속에 남을 때, 나는 내가 속죄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 스스로의 삶을 등졌을 때, 그것이 절대 주변 사람의 책임이 아니며 우리가 아파하는 것으로 죽음은 결코 만회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죽은 사람과 더욱 오래 충만함 속에서 함께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불필요한 부연이지만, 레이디 가가는 < Joanne >을 처음 작업했을 때, 이 곡에 '낙원(Paradis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를 떠나간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 그 곳에서, 언젠가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