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의 흥선군 이하응.

영화 <명당>의 흥선군 이하응.ⓒ 주피터필름

  
영화 <명당> 속의 흥선군(지성 분)은 길한 땅을 얻고자 칼까지 휘두르며 장동 김씨(안동 김씨)와 싸운다. 그는 이 가문한테 상갓집 개의 대우를 받는다. 이 집안 실세 중 하나인 김병기(김성균 분)한테 두들겨 맞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2대 천자를 배출한다는 최고 명당만큼은 놓치지 않기 위해 이들과 대립한다. 그렇게 해서 흥선군이 얻은 길지가 충청도 덕산 가야산에 있는 명당이며 이 땅에 그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이장됐다는 게 영화 스토리다.
 
남연군의 묘가 개장(改葬)된 이 땅은 한국사의 유명한 사건과 관련돼 있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행이 도굴을 시도했다가 무덤을 훼손하는 데 그친 사건이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흥선군이 안동 김씨와 싸워서 이 땅을 차지했다는 영화 속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 명확히 배치된다. 이 땅을 확보하는 과정부터가 그랬다. 보덕사란 사찰이 소유한 이 땅이 흥선군한테 옮겨 갈 수 있었던 것은 대원군의 힘 때문도 아니고 왕실의 힘 때문도 아니다. 대원군을 위해 위력을 행사해준 쪽은 다름 아닌 안동 김씨였다.
 
안동 김씨 권력 이용해 명당 확보한 흥선군

1885년에 개화파 인물이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흥선대원군 약전(略傳)>에 그 내용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이마니시 류우가 수집해간 이 약전은 덴리도서관에 소장돼 있다가 1980년대 한국인 학자 김의환에 의해 발견됐다. 이 약전에서는 흥선군이 가야산 명당을 획득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흥선군이 아버지 무덤을 이장하고자 했다. (가야산 명당에 관한) 말을 오래 들었던지라 대단히 욕심을 냈다. 그래서 손덕중과 모의해 김씨 권력의 도움으로 보덕사 땅을 빼앗고 그곳에 장례를 지냈다."
  
여기 나오는 김씨는 안동 김씨다. 흥선군이 안동 김씨의 권력을 이용해 가야산 명당을 확보한 것이다. 함께 모의한 손덕중은 안동 김씨 4인방인 김병기의 최측근이다. 영화 <명당>에서 흥선군을 두들겨 팬 김병기의 최측근이 조력을 제공했던 것이다.
 
흥선군과 안동 김씨는 속으론 경계하면서도 겉으론 좋게 지냈다. 흥선군은 주류 왕족은 아니지만 왕실의 일원이었으므로 안동 김씨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안동 김씨는 권력을 갖고 있었고 왕실은 권위를 갖고 있었다. 안동 김씨의 권력은 왕실의 권위에 근거한 것이었다. 왕실의 외척이란 지위를 바탕으로 세도를 누린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대놓고 왕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흥선군이 안동 김씨한테 상갓집 개처럼 천대를 받았다'는 헛소문이 퍼진 것은 거의 전적으로 소설가 김동인 때문이다. 1933년 4월 26일부터 그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운현궁의 봄>이 그런 이미지를 창출했다.
 
<운현궁의 봄>에는 아들이 왕이 되기 이전의 흥선군을 '상갓집 개'로 표현한 부분이 17회나 나온다. 상갓집 개를 한자로 바꾼 상가구(喪家狗)란 단어까지 합하면 18회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상갓집 개와 같이 가는 곳마다 구박을 받는 이 공자는, 그래도 행여 구박하지 않는 고마운 세가(권세가)가 있지 않나 하여, 대목의 바람 찬 거리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왕족치고는 꽤 활달했던 흥선군
 
 <명당>의 김병기(김성균 분).

<명당>의 김병기(김성균 분).ⓒ 주피터필름

  
고종이 왕이 되기 전인 음력 철종 3년 7월 10일자(양력 1852년 8월 24일자) <철종실록>에 따르면, 선비들의 여론을 대변하는 홍문관 관원이 "왕족들이 한결같이 남연군·흥인군·흥선군을 본받도록 하소서"라는 상소문을 올린 일이 있다. 실제의 흥선군이 <운현궁의 봄>에서처럼 세상의 구박을 받으며 왕족의 체통을 상실했다면, 그를 모범적 왕족으로 묘사하는 상소문이 올라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김동인이 흥선군의 처지를 실제보다 열악하게 묘사한 이유는 당연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의 성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자 성공 이전의 삶을 실제보다 열악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흥선군은 왕족치고는 꽤 활달했다. 왕족들은 일반인 집을 방문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인간관계를 확장시켰다. 이런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안동 김씨 가문에 있었지만, 외형적으로 볼 때 흥선군과 안동 김씨는 사이가 좋았다.
 
안동 김씨의 좌장인 김좌근과도 그랬다. 김좌근에게는 나주 기생 출신인 양씨라는 첩이 있었다. 양씨는 김좌근과의 관계를 이용해 국정 운영에 깊이 개입했다. 김좌근도 그의 말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양씨는 기생 출신이었기 때문에 흥선군 앞에서 예를 다해야 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 약전>에 따르면, 흥선군, 양씨, 김좌근 세 사람은 아주 허물없이 지냈다. 장난인지 아닌지 모호한 분위기에서 흥선군이 양씨한테 절을 올린 일도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양씨가 흥선군을 더욱 더 중히 여기면서 자금을 후하게 제공했다고 한다. 김좌근의 정치자금이 양씨를 거쳐 흥선군의 지갑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흥선군을 무시하고 푸대접했던 김병기
 
 흥선대원군 이하응 영정.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의 운현궁에 전시된 사진.

흥선대원군 이하응 영정.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의 운현궁에 전시된 사진.ⓒ 김종성

  
<흥선대원군 약전>에 따르면, 김좌근뿐 아니라 그와 함께 안동 김씨 4인방을 구성한 김문근·김병국도 흥선군을 극진히 대했다. 흥선군의 파격적 행보를 낯설게 대하면서도 대접만큼은 융숭하게 했다.

"김문근과 김병국 역시 대원군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대접은 매우 후하게 했다."
  
그런데 4인방의 또 다른 멤버인 김병기는 그렇지 않았다.

"다만 김병기만큼은 그를 매우 가벼이 여겨 예를 다해 대접하지 않아, 흥선군이 늘 원망했다."
  
하지만 김병기도 흥선군을 때리지는 못했다. <명당>에서는 그가 흥선군을 마구 때린 것으로 묘사됐지만, 실제의 그는 흥선군을 무시하고 푸대접하는 선에서 그쳤다.
 
가야산 명당을 빼앗을 때 도와준 손덕중이 바로 김병기의 최측근이었다. 손덕중 역시 흥선군의 지갑 속을 늘 들여다 봤다. 돈이 없으면 넣어주곤 했다. 김병기는 흥선군을 싫어했지만, 그의 최측근은 흥선군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처럼 흥선군은 안동 김씨 4인방은 물론이고 그 측근들로부터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 안동 김씨 가문이 흥선군을 무시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 리 없다. 김동인의 소설이 널리 확산되지 않았다면, 이런 정확한 실상이 현대 한국인들의 역사 지식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명당>에서 흥선군을 상갓집 개로 자연스레 묘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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