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물괴>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인 1527년 '경복궁 괴물 출현 사건'을 다룬 영화 <물괴>는 인간과 괴물의 대립 구도 외에 또 다른 구도도 함께 보여줬다. 왕권과 신권의 대결 구도, 군주와 양반 귀족의 대결 구도가 바로 그것이다.
 
음력으로 중종 22년 6월 17일자(양력 1527년 7월 14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경복궁에서 '삽살개 같고 망아지만한 물체'가 목격됐다는 게 이야기의 전부다. 이를 근거로 <물괴>는 귀족 출신 신하들이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어 중종(박희순 분)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물괴 출현 소문을 거짓으로 퍼트렸다가 실제로 물괴를 만나 참극을 당한다는 스토리를 설정했다.
 
영의정 심운(이경영 분)을 비롯한 신하들이 임금을 압박하고 왕권을 견제한다는 이 같은 설정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왕권이 대체로 약했다. 지주계급을 대변하는 신하들이 국정 주도권을 장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왕권이 비교적 강해져 탕평책을 시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된 영조·정조 시대를 제외하면, 대체로 신하들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연산군을 몰아낸 쿠데타인 중종반정과 함께 개막된 중종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중종시대에는 훈구파라 불리는 귀족 신하들이 대체로 우위를 지켰다. 이런 점에서는 영화 속 설정이 맞다.
 
하지만, 너무 과도했다. 영화에서는 중종이 1527년 시점까지도 공신들의 간섭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1506년에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한 공신 세력이 1527년 시점까지도 여전히 중종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임금 되자마자 강제 이혼 당한 중종
 
 중종(박휘순 분).

중종(박휘순 분).ⓒ 태원 엔터테인먼트

  
중종이 허수아비였던 것은 사실이다. 한동안은 그랬다.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그는 임금으로 옹립되자마자 부인 신씨와 강제 이혼을 해야 했다. 중종반정 주역들이 그렇게 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훗날 단경왕후란 이름으로 복원될 부인 신씨가 전(前) 정권 실세이자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거기다가 중종은 반정 주역인 박원종·성희안·유순정 앞에서 쩔쩔매기까지 했다. 실학자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의 '중종조 고사본말(중종시대 사건·사고 내막)'에 따르면, 중종은 처음 한동안은 이들이 자리를 뜨면 얼른 일어섰다고 한다. 이들이 방문을 열고 나간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왕의 체면을 지킬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양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바로 그 '세월'이 상황을 변화시켰다. 반정 주역들이 하나씩 유명을 달리하면서 훈구파가 조금씩 약해졌기 때문이다.
 
박원종은 쿠데타 4년 뒤인 1510년, 유순정은 1512년, 성희안은 1513년에 중종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이랬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훈구파 지도자들이 1527년까지 중종을 압박하는 일이 있을 수 없었다. 3대 주역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신권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처럼 중종의 신변을 위협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3대 주역 사망 후에 중종이 강해졌다는 점은, 1516년에 그가 조광조를 위시한 개혁파 정권을 전격 출범시킨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훈구파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사림파를 꽂을 정도로 중종이 강해진 것이다.
 
 영의정 심운(이경영 분).

영의정 심운(이경영 분).ⓒ 태원 엔터테인먼트

   
사림파 정권이 너무 강해질 조짐을 보이던 1519년, 중종은 이번에는 훈구파와 손잡고 조광조를 전격 체포한 뒤 사림파 정권을 와해시켰다. 그런 뒤 훈구파 정권을 복원시켰다.
 
하지만 이때의 훈구파 정권은 예전의 훈구파 정권이 아니었다. 이 정권의 출범에 중종이 관여했기 때문에 누구도 중종을 마음대로 대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사림파를 완전히 축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사림파가 조정에 남아 훈구파를 어느 정도나마 견제할 수 있었다.
 
이랬기 때문에, 신권이 우위를 지키는 속에서도 중종의 권력과 입지가 확장될 수 있었다. 이런 구도가 출현하고 한참 뒤인 1527년에 신하들이 중종을 허수아비 다루듯 했다는 영화 속 상황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었다.
 
연산군이 근정전 지하에 조준방을 만들었다?

중종의 왕권을 지나치게 '다운'시켜 묘사한 점 외에, 또 하나 언급할 만한 것은 전 정권의 난맥상을 지나치게 '업'시켜 과장했다는 점이다. <물괴>는 중종은 실제보다 약(弱)하게 묘사하고 연산군은 실제보다 악(惡)하게 묘사했다.
 
경복궁은 조선왕조 제1궁궐이었다. 이 궁궐이 정도전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정도전의 라이벌인 태종 이방원이 이곳을 폄하하고 이방원의 후예들이 창덕궁의 위상을 높이기는 했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쉽게 훼손되지 않을 만큼 경복궁의 상징성은 대단했다.
 
그런 경복궁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근정전이다. 왕의 공식 집무실인 근정전은 각종 의전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런 중요한 장소의 지하에다가 연산군이 조준방이란 유희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물괴>의 이야기다. 연산군이 각종 희귀한 동물을 이곳에 모았으며 그중 하나가 괴물이 되어 경복궁은 물론이고 한양 곳곳에서 파괴 활동을 벌였다는 게 영화 속 이야기다.
 
 근정전.

근정전.ⓒ 김종성

  
그와 유사한 조준방이 실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연산군 12년 9월 2일자(1506년 9월 18일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군이 조준방을 설치하고 매·개·말 같은 동물을 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정전 지하에 있지는 않았다. 위의 <연산군일기>에서는 궁궐 안에 있었다고 했다. 궁궐 안에 동물원을 설치하려면, 정무 공간이나 생활공간을 뺀 나머지 장소를 물색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연산군이라도 그 정도 판단력이 없을 수는 없었다.
 
연산군이 근정전 지하를 유희 공간으로 바꿀 정도의 미친 짓을 벌였다면, 그런 사실이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 없다. 역사의 패자인 데다가 상식 이하의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관들이 연산군의 죄악을 실제보다 과장한다 해도 문제가 되기 힘들었다. <연산군일기>는 연산군한테 불리하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산군이 근정전 지하에다가 그런 짓을 했다면,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연산군이 조준방을 설치한 목적이 꼭 유희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연산군은 조준방에서 키운 짐승을 이용해 야외 사냥을 나갈 때에 대비해 특별 병력을 확보했다. 교대제로 근무할 이 병력은 1만 명이었다. 이것은 그가 왕권 강화와 군사력 증강을 위해 조준방을 활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록에서는 연산군이 여기에 과도한 정성을 쏟았다고 비판하지만, 연산군의 실제 의도는 유희보다는 권력 강화였을 수도 있다.
 
이처럼 <물괴>는 중종의 권력을 실제보다 낮게 묘사하고 연산군의 난맥상을 실제보다 심하게 묘사했다. 동시에, 신하들의 권력을 지나치게 강하게 묘사함에 따라, 중종시대의 정치적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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