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양만춘과 조인성? 늘 청춘일 것만 같은 배우 조인성과, 위인으로 남은 고구려의 장수 양만춘 장군은 쉽사리 연결되지 않았다. 영화 도입부, 조인성이 등장해 "내가 양만춘"이라고 소개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영화 <안시성>은 5천의 군사로 20만 당나라 군대를 무찌른 고구려의 위대한 승리와, 이 전쟁을 이끈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의 이야기다. 

관객은 사물(남주혁 분)과 함께 양만춘을 만난다. 처음 양만춘을 '반역자'라고만 여기던 사물이 소탈한 양만춘을 만난 뒤 느낀 당황스러움처럼, 조인성을 '꽃미남 배우' 혹은 '청춘스타'로만 여기던 관객이라면 자신을 양만춘이라 소개하는 양만춘의 첫 등장을 분명 어색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물은 양만춘 장군의 진가를 깨닫고, 같은 속도로 관객 역시 조인성이 연기하는 양만춘의 매력에 빠져든다. 

조인성이 만든 양만춘의 매력   
 
 영화 <안시성> 스틸 컷

영화 <안시성> 스틸 컷ⓒ (주)NEW

 
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인성은 "나 역시 양만춘 장군과 (내 이미지가) 바로 매칭이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감독은 "너 아니면 안 돼"라며 조인성을 설득했다고. 김광식 감독은 조인성의 어떤 모습을 보고, 양만춘 장군 역할을 그에게 맡겼던 걸까?   

"젊은 리더를 그리고 싶으셨대요. 감독님이 원하는 양만춘 장군의 모습과, 제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안시성> 출연 제안을 받고 두 번 거절했지만, 결국 저여야만 한다, 새로운 거 해보자, 라는 말에 받아들였죠.  

저는 안시성의 성주, 장군이라는, 지위 직함을 뺀 양만춘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봤어요. 기록이 별로 안 남아있긴 하지만, 역사에 남아있는 것만 봐도 당시 최고 권력자인 연개소문한테 반기를 들었다가 주류 고구려 사회에선 '반역자'로 낙인 찍히고, 그럼에도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싸워 이겼잖아요. 일단 야망, 권력욕 이런 건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제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어느 시대건 높은 자리에 가고 싶으면 권력자한테 잘 보여야 할 텐데 그걸 안 했다는 거잖아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도 권력 욕구가 없는 사람... 저는 그 자유로움이 (당 태종 역의) 성웅이 형이나 (연개소문 역할의) 유오성 선배의 카리스마와 맞서도 빛날 수 있는 양만춘만의 '범상치 않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위인 연기하는 부담, 하지만...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역사에 남은 위인을 표현하는 부담. 조인성은 "최선을 다하는 거 말곤 답이 었었다"고 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은 '딱 10분 만이라도 이순신 장군님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역사에 남은 위인을 표현하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조인성은 "최민식 선배님 같은 분도 그런 분이신데, 나는 오죽했겠나"라며 공감했다. 

"제가 가진 한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 말곤 답이 없었어요. 다만 (이순신 장군과 달리) 양만춘 장군은 생몰 연도도 물음표일 만큼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고, 기존 작품에서 다뤄진 적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표현할 여지가 많았죠. 

어떤 것들도 투영해도 된다는 허용치가 열린 셈이지만, 그래도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당나라라는 국제 조직의 보스가, 우리나라에 자기 조직원 다 데리고 한 판 붙으러 왔다가 동네 싸움 잘하는 건달 몇 명에게 얻어맞고 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세민과 연개소문이 제대로 붙었다면 '짱 대 짱'으로 붙었다고 할 텐데, 고구려 작은 성 성주한테 깨진 거잖아요. 당 태종 입장에서는 얼마나 창피하고 수치스러울까, 우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또 통쾌할까, 이렇게요. 위인이라고, 역사적 사건이라고만 생각하면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우니까, 저희끼리는 이렇게 편하게 비유하면서 연기했어요." 


20kg 넘는 갑옷... 그보다 힘들었던 건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조인성은 역사에 남은 양만춘의 기록을 보고 '자유로움'을 떠올렸다. 전쟁터에서는 한없이 냉철한 장수지만, 백성들에겐 한없이 따뜻한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그렇게 탄생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비유는 심플했지만, 영화가 그리는 '안시성 전투'는 처절 그 자체다. 고작 5천의 병력으로 20만 대군에 맞서는 안시성 군사들의 결사 항전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화면만으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멋진 갑옷을 입고 무거운 칼과 화살을 들고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양만춘 장군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지기도 했다. 갑옷의 무게만 20kg이 넘었다고. 칼과 화살 등 무기 무게까지 감안하면 20kg을 이고 지고 뛰어다닌 셈이다.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고 물으니, "그렇게 보이죠. 근데 감독님만 그걸 모르시더라고요" 하며 장난스럽게 볼멘 표정을 지었다.   

"저는 감독님이 갑옷 무게를 알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근데 하루는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갑옷을 들어보시더니 '이렇게 무거웠어?' 하시더라고요. 그제서야 '풀어풀어~ 쉬어쉬어~' 이러시는데 배신감이 확 들었죠. 감독님은 따뜻한 평창패딩입고, 저흰 갑옷 입고..."

하지만 진짜 힘들었던 건 갑옷의 무게가 아닌 날씨였다. 조인성은 "우리나라 겨울이 남극보다 춥고, 여름은 아프리카보다 덥다는데 진짜 실감했다. 미치겠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성에서 촬영할 땐 바람 때문에 눈을 못 뜰 정도였어요. 날씨와의 전쟁이었죠. 갑옷입고 바람을 맞고 있는데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해야 하는데 왜 자꾸 자연을 이겨 먹으려고 할까... 이럴 땐 그냥 집에 있어야 하는데... 바람 피하고 추위 피하려고 집을 만든 건데 우린 왜 자꾸 밖으로 나와야 하나... 하하하. 한 번은 근처에서 <스윙키즈>를 찍고 있던 (도)경수가 촬영장에 놀러 왔거든요. 경수가 '여긴 정말 전쟁터 같아요. 장난 아니네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죠. '우리 이렇게 90회차 찍고 있어. (웃음)'"   

'220억 대작' 주인공 부담보다 컸던 건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영화 <안시성>은 22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이 영화의 원톱 주연을 맡은 조인성은 "제작비에 대한 부담보다 고구려를 다룬 첫 영화라는 사실이 더 부담됐다"고 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역사에 남는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18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였다. 7개월간 100회 차의 촬영이 진행됐고, 6500명의 보조 출연자와 말 650필이 동원됐다. 고구려의 운명이 달린 전투를 벌여야 했던 양만춘 장군의 비장함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220억 원이 투자된 영화 <안시성>을 책임져야 했던 조인성의 부담감도 어마어마했다고. 조인성은 "단지 돈에 대한 부담 보다는 고구려를 제대로 다룬 첫 영화라는 부담이 더 컸다"고 말했다. 

"고구려 역사를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이 영화가 정말 잘돼야 하는 거잖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다뤄지는 시대가 넓어지면 이야기도 확장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고구려 정말 멋있잖아요.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삼기엔 사료가 많지 않으니 이야기 만들기도 어렵고, 조선 시대처럼 기존 건물을 활용할 수도 없으니 돈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이 영화가 잘 되면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겠어요? <안시성>이 고구려의 모든 걸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고구려 역사를 배경으로한 첫 영화니까, 그 물꼬를 제대로 잘 터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느덧 데뷔 20년... 특별한 건 없다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늘 청춘일 것만 같은 조인성은 어느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가 됐다.ⓒ 아이오케이컴퍼니

 
18살에 모델로 데뷔한 조인성은, 어느덧 데뷔 만 20년을 채웠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스크린에 데뷔한 남주혁에게 특별히 조언해준 내용이 있는지 묻자, "묻기 전엔 먼저 말해주지 않았다. 묻기 전에 말하면 꼰대처럼 보이니까..."라며 웃었다. 늘 청춘일 것만 같은 조인성이, 어느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가 된 것이다.  

"주혁이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하던 배우예요.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죠. 걱정도 안 했어요. 충분히 맡을 자격이 있는 친구고, 또 실제로 잘했고요. 충분히 잘하고 있기 때문에 묻기 전에는 따로 말해줄 필요도 없었어요."  

데뷔 20주년을 맞아 특별한 마음가짐이나 계획은 없는지 묻자, "봄이 가면 자연스럽게 겨울이 오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 것뿐이다. '오늘은 특별한 봄이야!' 이런 건 없는 것처럼, 20주년이라는 숫자도 특별할 건 없다"며 웃었다. 
 
"다시 태어나서 살아도 지금보다 잘 될 가능성은 낮을 거예요. 그만큼 스스로는 나름 잘 흘러왔다고 생각해요. '데뷔 20년'이라고 하니까 원로 배우 같은 느낌도 들지만... 사실 앞으로는 '20주년'을 맞는 배우들의 나이가 점점 당겨질 거라고 봐요. 제가 18살에 데뷔했는데, 지금은 초등학생 때 데뷔하는 친구들도 많잖아요. 아마 요즘에 활동하는 어린 친구들은 제가 활동했을 때보다 더 힘들 거예요. 마음 다칠 일도 많고, 사회에 들어오기 전에 겪어야 할 일들을 건너뛰는 셈이니까... 전 굉장히 무섭고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 친구들이 자기 마음을 잘 챙기면서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 조인성.

조인성에게 <안시성>은, 지난 20년 시간 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이 만든 가장 최근의 모습이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조인성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었는지 묻자, "당연히"라는 답이 돌아왔다. 

"많이 넘어졌죠. 전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넘어졌을 때 빨리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안 넘어질 수 있겠어요. 앞으로도 또 넘어지겠죠. 모든 순간이 처음이잖아요. 

제가 넘어졌을 때 격려해주고 손을 잡아준 선배님들이 계세요. 그땐 그런 선배님들의 마음이 '정'이었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잘 씻고, 돈 잘 쓰고, 묻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 세 번 이상 권유하지 않고... 변해가는 세상에 잘 적응해야 하니까요. (웃음)" 


올해 나이 서른여덟. 곧 마흔을 맞이하게 되지만 조인성에게 40대를 준비하는 특별한 마음가짐 같은 건 없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싶다"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20년을 보내온 것처럼 말이다. 

"<안시성>으로 고생도 많이 했고,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아요. 이번 작품에서 배운 것들은 다음 작품에서 발휘되겠죠.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요. 그래서 <안시성>은 열심히 해온 지난 20년의 시간이 만든 가장 최근의 제 모습이고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또 발전해야 겠죠. 차기작이요? 요즘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일단 무조건 놀아야 해요. 당분간 푹 쉬면서 생각해 볼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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