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 요르단 원정 경기서 승리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리카르도 라틀리프(왼쪽)와 이정현(가운데)이 13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2차 예선 E조 요르단과 경기에서 요르단의 다 터커를 상대로 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날 우리나라는 요르단을 86-75로 이겼다.

▲ 한국 남자농구, 요르단 원정 경기서 승리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리카르도 라틀리프(왼쪽)와 이정현(가운데)이 13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2차 예선 E조 요르단과 경기에서 요르단의 다 터커를 상대로 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날 우리나라는 요르단을 86-75로 이겼다.ⓒ EPA/연합뉴스


'허씨 삼부자'의 공백은 없었다. 김상식 감독대행이 이끄는 대한민국 농구대표팀이 14일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2라운드 1차전 요르단과 원정경기에서 86-75로 승리했다. 1차예선 전적을 안고 경쟁하는 2차예선에서 한국은 요르단과 나란히 5승2패를 기록하며 레바논·뉴질랜드(이상 6승 1패)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농구월드컵은 개최국 중국을 제외하고 각 조 3위까지 본선직행 티켓이 주어진다.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는 성과였다. 이날 한국은 김상식 감독대행 체재로 나선 첫 경기였다. 대표팀은 지난 5일 허재 감독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아시안게임 국가 대표 선발 과정에서 친아들인 허웅과 허훈을 무리하게 발탁했다는 지적과 함께 '혈연농구' 논란으로 인한 후폭풍이었다.

허웅과 허훈은 모두 이번 대표팀에서 제외됐고 국가대표 경기력향상위원회 전원도 아시안게임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사퇴했다. 일부 대표 선수들을 교체했지만 부상자 발생으로 요르단 원정에서는 12명 엔트리도 다 채우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물려받은 김상식 감독 대행은 팀 분위기를 제대로 추스를 기간도 없이 어려운 원정길에 올라야 했다.

모든 면에서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위기 상황에서 더 빛나는 한국농구의 저력이 빛을 발휘했다. 에이스 라건아가 30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변함없이 든든하게 공격을 이끌었고 이정현이 15점, 이승현이 12점으로 뒤를 받쳤다. 한국은 요르단과 3쿼터까지 접전을 펼쳤으나 전반 부진했던 슈터진이 외곽슛이 후반 들어 폭발하여 4쿼터에 점수차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라건아 활용방식과 전술 변화

눈여겨볼 승리 요인은 라건아의 활용방식과 전체적인 경기운영의 전술적 변화다. 허재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초창기에는 유기적인 패스플레이와 외곽슛을 앞세운 '스페이싱 농구'로 호평을 받았지만, 라건아가 합류한 이후로는 오히려 그의 개인능력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단조로운 농구로 퇴행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활용도가 제한된 단신 가드인 허웅-허훈을 무리하게 붙박이 멤버로 끼워넣으면서 전술 운용의 유연성도 극도로 떨어졌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도 불구하고 준결승 이란전 완패하며 대표팀의 경기력이 혹평받았던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허재 부자가 빠진 대표팀의 경기력은 오히려 아시안게임 때보다 살아났다. 라건아가 공격의 핵심인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볼을 만지는 시간은 크게 줄었다. 허재 시절에는 주로 라건아에게 공을 맡기고 포스트플레이를 시도할 동안 다른 선수들이 지켜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팀은 라건아에게 많은 점수를 주더라도 슈터진의 외곽슛만 막으면 된다는 전략으로 임했다.

대표팀은 이날 오랜만에 특유의 모션 오펜스로 회귀했다. 김선형-박찬희-이정현 등 가드진들이 공격을 주도하며 여러 선수들이 고르게 볼을 주고받는 패스 빈도가 크게 늘어났다. 볼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은 많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부지런히 빈 공간을 찾아내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라건아도 이날은 2대2 플레이에서 활발한 스크린으로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상대의 미스매치를 이용하여 패스를 이어받아 바로 골밑을 파고드는 패턴으로 무리하지 않고 쉬운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혼자서 이것저것 다 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자 체력과 파울관리도 한결 수월해졌다.

'도우미' 역할을 해주던 조연급 선수들의 쓰임새도 확연히 달라졌다. 허재 감독 시절 이상하리만큼 출전시간이 적었던 장신가드 박찬희가 이날 승부처에서 포인트가드로 투입되어 답답하던 공격 흐름을 풀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수비적인 역할로만 한정되어있던 최준용이 포스트업이나 속공에서 공격적인 역량을 보여준 것도 성과다. 이승현은 아시안게임 때도 잘했지만 이날은 라건아와의 호흡이 한결 무르익은 모습을 보이며 내외곽을 넘나드는 활발한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이날 경기의 숨은 성과는 역시 장신포워드 안영준이었다. 성인대표팀에는 처음 승선한 안영준은 이날이 데뷔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5분 정도를 출전하여 6점 3리바운드의 기록은 겉보기에 크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비와 리바운드, 몸싸움 등에서 궂은 일을 전담하는 모습은 과거 양희종(안양 KGC 인삼공사)의 데자부를 떠올리게 했다.

안영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3대3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건바 있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소속팀으로 돌아가 미국 전지훈련을 소화하던중 A대표팀의 교체멤버로 발탁되어 뒤늦게 합류했다. 손발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안영준에게 기대를 걸었던 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요르단전에서 보여준 깜짝 활약은 대표팀의 오랜 고민이었던 장신포워드에 대한 갈증을 다소나마 해결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김상식 감독대행, 요르단 원정에서 값진 승리 일궈내

아시안게임의 후폭풍을 안고 불과 열흘 만에 급조된 김상식호의 선전은 역설적으로 허재호의 팀 운영이 얼마나 경직되고 모순에 빠져있었는지를 증명한 시간이었다.

'농구판 신태용'으로 꼽히는 김상식 감독대행은 프로와 대표팀을 포함하여 대행만 벌써 4차례나 역임하고 있는 '소방수' 전문 지도자다. 현역 시절 정상급 슈터로 명성을 떨쳤으나 지도자로서는 뚜렷하게 성과를 보여준 경력이 없어서 갑작스럽게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게된 것을 두고 우려를 자아냈으나 어려운 요르단 원정에서 값진 승리를 일궈내며 반전에 성공했다.

적재적소의 선수기용과 수비 변화, 작전 타임에 이은 전술 대응도 훌륭했다. 17일 시리아전에서도 대표팀이 좋은 경기력을 이어갈 수 있다면 김상식 대행체제를 정식 감독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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