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소리를 내기에 입을 막으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래."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발달장애인 친구는 처음 보는 모습과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옆에서 지켜보던 같은 반 급우들도 그녀를 자제시키기 위해 힘을 보탰다.
 
영화관은 처음엔 그녀의 몸짓과 소리에, 나중엔 친구들의 움직임에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다 처음 겪는 상황. 영화 <접속>을 보며 비명을 지르던 발달장애인 친구도, 이를 옆에서 말리던 나와 친구들도,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서야 허겁지겁 달려온 선생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첫 경험이었다. 전도연, 한석규 주연의 영화 <접속>(1997)은 태어나서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였다. 중학교 단체관람으로 보게 됐다. 처음엔 전도연과 한석규를 보러 왔지만 영화를 보다가 다른 배우에 눈길이 끌렸다. '추상미'. 그녀의 분량은 짧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에 남다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과 귀가 집중됐다. 그렇게 언제 또 추상미 배우가 나오나 기대를 모으고 있을 때였다. 발달장애를 안고 있는 친구가 영화관에서 갑자기 일어나 자기 자리에 섰다. 
 
처음엔 못 봤다. 오른쪽에 앉은 친구랑 추상미 배우에 대해 조용히 얘기를 하다가, 왼쪽에서 일어선 발달장애 친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가 일어선 옆모습을 봤을 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을 못하고 있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던 친구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평소 장애를 안고 있던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앉음을 반복했다. 몸을 비비 꼬기도 하고, 뒤척이기도 했다. 무언가가 불편했는지 연신 들썩였다.
 
2년 만에 처음 본 모습이었다. 발달장애인 급우와 같은 반을 쓴 시간은 짧지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마포구에서 살다가 영등포로 이사 왔는데, 처음 짝을 하게 된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였다. 전학 와서 아는 친구가 없었던 나, 친구가 없어 짝이 없던 아이와 짝꿍이 됐다. 그렇게 1년에 1년이 더해지던, 중학교 2학년 때 일이 터졌다.
  
착하고 순진했던, 말수가 적었던 그 친구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을 뿐 평소 친구는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말투가 다소 어눌하고, 가끔 행동이 둔할 뿐이었다. 의사소통을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말과 행동이, 보이는 모습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기억된다. 그 친구는 장애를 안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에도 졸지도 않고, 필기도 열심히 했던 아이로 남아 있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배려받기보다는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할 줄 알았고, 사소하지만 맛있는 반찬을 다른 친구들과 나눠 먹을 줄 아는 착한 친구로 기억 속에 존재한다.
 
그런데 착하고, 순진했던, 말수가 적고 어눌했던 그 아이가 어느 날 영화를 보다가 극장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나름 그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돌발행동에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있었다.
 
본다. 보기 시작한다. 한 명, 두 명 그렇게 그날 단체관람을 하던 친구들이 그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수군거린다. 같은 반 친구들이, 다른 반 아이들이, 20대로 보이는 일반인 관객들이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용했던 영화관이 술렁였다. 그 분위기에 더 동요가 됐을까.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친구, 술렁이기 시작한 영화관
 
 영화관

영화관ⓒ 픽사베이

친구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왜 그러냐"라고 반복해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소리에 영화관의 조용한 분위기가 깨졌다. 갑자기 등 뒤가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극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나를, 그리고 그녀를 다독이려는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어디에 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발달장애를 겪고 있던 친구를 연신 괜찮다고 다독였다. 그 사이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웅성거림으로 이어졌다. 들썩이던 장애인 친구의 어깨를 다른 친구들과 부여잡았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선생님은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됐는지 부랴부랴 달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장애를 가진 친구의 어머님이 극장 앞으로 왔다. 시장에서 몇 번 마주치고, 인사를 건넸던 어머님이었다.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친구를 데리고 사라졌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영화 관람은 일종의 '해프닝(happening)'으로 끝이 났다.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가 그날 영화관에서 갑자기 왜 그랬는지 그 때도, 지금도 정확히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학교에 여러 가지 소문이 퍼졌지만 직접 묻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알고 싶지 않아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서, 말해줘도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시감
 
2017년 7월 오케스트라를 관람하던 자폐아동이 공연 도중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소동이 있고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음악을 듣기 힘든 아이를 왜 공연장에 데려 왔냐"는 시각과 "장애 아동도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부딪혔다.
 
기시감이 들었다. 2017년의 사건을 보며, 20년 내가 영화관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나와 발달장애 친구가 경험한 일들은 단순히 우연한 사건으로 끝났지만, 2017년 세상은 주목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그 시간이 두 번이나 지나서야, 묻기 시작했다. 마치 20년 전 내가 그녀가 왜 그랬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던 것을 대신 묻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 내가 사는 세상이 장애인의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됐다.
 
어린 나이였다. 나도, 장애를 가진 친구도 고작 14살에 불과했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처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어른이었던 선생님을 원망했다. 그 때 뭐 하고 있다가 뒤늦게 나타나 수습했는지 궁금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도와주지 않았던 어른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이 바뀌었다. 설령 선생님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한들 제대로 조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사전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있었을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 일이 있기까지 사전에 배운 적도 없고, 경험한 적이 없었다.
 
장애인을 위한 영화관이 없다
 
1997년 영화 <접속>을 보며 있었던 일을 시작으로, 지금은 일주일에 최소 2편을 볼 정도로 영화관을 자주 드나든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영화관을 나서기 전에 요즈음 자주 느끼는 감정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 팝콘 부스러기가 널브러진 자리를 보며 느낀다. '장애인' 좌석에 앉아 있는 '장애인'을 한 번도 본 적 없음을, 천만 관객의 시대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관(barrier free)이 변변치 않음을 오늘도 마주친다.
 
20년 전 내가 영화관에서 겪었던 일은 과거에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간이 흘러 까까머리 중학생 소년은 검푸른 수염이 난 청년이 되었지만, 바뀌지 않은 현실이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문화생활은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잘못된 길이라면 고쳐서,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이미 늦었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영화관에는 '장애인'들이 없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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