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선수(경희대·198cm)

알렉스 선수(경희대·198cm) ⓒ 박진철

 홍콩 출신이자 현재 경희대 배구팀에 소속돼 있는 알렉스 선수의 귀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가 기본적인 규정조차 모르고 귀화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경희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알렉스(26세·198cm)는 현재 법무부에 특별 귀화를 신청한 상태다. 그는 2014년 9월 경희대 체육학과 입학이 결정된 후부터 최근까지 여러 인터뷰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해 한국 프로 무대인 V리그와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 알렉스는 4년여 동안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러시아 카잔)에서 전체 출전 선수 중 득점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또 201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대만)에서도 득점 부문 2위에 올랐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활약했다. 알렉스는 2016-2017년도엔 대학배구 선수 중 블로킹 부문 전체 1위를 차지했고, 2017년에는 공격 부문 전체 5위에 랭크됐다.

올해 대학 4학년인 알렉스는 10월에 열리는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 참가 대상자이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만 참가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이를 위해 일찌감치 지난 4월 법무부에 특별 귀화 신청서를 접수했다. 귀화에는 일반귀화와 특별귀화가 있는데, 일반귀화의 경우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알렉스는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특별귀화는 조금 다르다. 해당 종목의 단체가 대한체육회 측에 귀화를 요청하면 대한체육회가 해당 선수를 '우수외국인 체육 분야 인재'로 추천하고 법무부가 이를 최종 승인해야 한다.

배구협회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이 '추천서' 제출
 
 법무부에 제출된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과 김호철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알렉스 선수 귀화 추천서'

법무부에 제출된 오한남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과 김호철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알렉스 선수 귀화 추천서' ⓒ 알렉스 매니지먼트사


앞서 대한민국배구협회 수장인 오한남 회장과 대학배구연맹의 오승재 회장, 그리고 현직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김호철 감독은 지난 4월 알렉스의 특별 귀화를 승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귀화 추천서'를 작성해 법무부에 제출했다. 심지어 알렉스의 본국인 홍콩 배구협회 회장까지 한국으로 귀화를 지지한다는 추천서를 보내왔다.

오한남 회장과 김호철 감독은 알렉스 귀화 추천서에 "(알렉스는) 현 경희대학교 배구 선수 및 홍콩 국가대표 배구 선수로써 2010년부터 2018년 1월 현재까지 각종 국제대회에 대표선수로 참가하여 우수한 경기성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중략) 특히, 위 선수는 신장이 197cm로 장신이면서도 서전트 점프가 80cm 이상으로 국내 배구선수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라며 "위 선수가 한국인으로 귀화 된다면 곧바로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될 수 있으며, 이 선수의 뛰어난 경기력은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참가하는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주요 대회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이기에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라고 밝혔다.

김호철 대표팀 감독은 최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알렉스가 오랫동안 한국에서 배구를 했고, 한국 배구가 좋아서 귀화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은 좋은 일"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배구협회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귀화 추천서를 법무부에 제출하자, 알렉스는 특별 귀화 승인 절차가 오는 10월 8일 열리는 V리그 신인 드래프트 이전에 완료될 거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그러나 배구협회 내 남자 경기력향상위원회(아래 위원회)가 지난 8월 뒤늦게 '반대' 결정을 내리면서 알렉스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남자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인 최천식 인하대 감독은 '반대'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대학 4년간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고 해서 특별 귀화 추천을 하게 되면, 앞으로 다른 선수들이 특별 귀화를 신청했을 때 알렉스 건이 선례로 남아서 다 추천서를 써줘야 한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런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남자배구의 경우 국가대표팀 사업이 아시안게임으로 다 끝났다"며 "내년 초에 국가대표팀 구성을 새로 할 때 요청이 오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알렉스의 특별 귀화를 영원히 반대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FIVB 규정에 소속 협회를 바꾸는 것은 단 한 번만 인정된다"
 
 알렉스의 점프력

알렉스의 점프력 ⓒ 박진철


최 위원장과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특별 귀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과도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별 귀화에 대한 심사와 승인은 전적으로 법무부가 하기 때문이다. 배구협회가 귀화 추천서 공문을 제출했다고 해서 법무부가 모든 선수에게 무분별하게 특별 귀화를 승인해주는 것도 아니다.

일각에선 '알렉스가 한국 국적을 취득해 이중 국적이 되면, 만약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을 때 홍콩 대표팀 선수로 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력향상위원회도 똑같은 의견을 귀화 추천 반대 이유로 내놓았었다. 그러나 이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을 따져봤을 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FIVB 규정에는 "선수는 소속 국가의 배구협회를 '단 한 번만' 변경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실제 규정 내용 : A player's Federation of Origin may be changed only once).

따라서 알렉스가 한국인으로 귀화해서 대한민국배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되는 순간, 다시는 홍콩 배구협회를 비롯한 다른 어떤 나라의 배구협회에도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한국 국가대표 이외에는 다른 나라의 대표팀 선수로 뛸 수가 없다.

배구협회 국제 담당 관계자도 13일 기자의 규정 해석에 대한 질의에 "FIVB 규정에 소속 협회를 바꾸는 것은 단 한 번만 인정된다"고 확인해 줬다.

이에 대해 최천식 위원장은 13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그런 규정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확인해보겠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위원회가 "내년에 국가대표팀 구성을 새로 할 때 대표팀 감독의 요청이 있으면 그 때 가서 특별 귀화 추천서를 써줄지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회의적이다.

김호철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 국제대회를 앞두고 알렉스를 대표팀에 뽑겠다고 요청하면, 그 때 가서 배구협회가 특별 귀화 추천서를 써준다는 것인데, 법무부가 하루 이틀 만에 승인을 내주느냐"라면서 "절차를 밟고 하다 보면 수개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다 국제대회 다 끝나버린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부에선 이번 위원회의 귀화 반대 결정이 한창 불붙은 프로배구 인기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알렉스는 오래 전부터 한국 프로배구 선수로 뛰고 싶고, 프로에서 기량을 인정받아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도 뛰고 싶다는 의지를 팬들에게 밝혀왔다. 그런 스토리가 이미 많은 언론에 감동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배구 팬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만큼 V리그 흥행에 기여할 스타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선수가 신인 드래프트에 못 나가게 된다면, 프로배구에 득이 될 리가 없다. 더군다나 올해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는 우수 선수가 부족해 '흉작'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 남자배구는 올해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와 아시안게임을 거치면서 센터 포지션에서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라이트 포지션도 문성민의 나이와 서재덕의 군 입대를 감안하면 후계자 육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알렉스는 한국 배구의 취약 포지션인 센터와 라이트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기량과 잠재력을 갖추었다. 그만큼 대표팀에 발탁할 필요성이 있는 선수다. 경기력향상위원회의 현명한 판단과 재검토가 요청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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