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웃는 남자> 중 그윈플렌의 기이한 미소로 공연을 하는 장면이다. (그윈플렌역에 수호배우)

뮤지컬 <웃는 남자> 중 그윈플렌의 기이한 미소로 공연을 하는 장면이다. (그윈플렌역에 수호배우)ⓒ EMK

 
개막 때부터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인 핫한 뮤지컬 <웃는 남자>. <웃는 남자> 티켓팅은 열릴 때마다 순식간에 매진이 돼 '피켓팅'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장된 흥행보증 수표 박효신과 인기 아이돌 엑소의 수호가 뮤지컬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맡는다는 소식에 뮤지컬 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거기다 뮤지컬 배우로서 입지를 굳혀온 박강현 배우가 같이 그윈플렌 역을 맡았고 이외에 정성화, 신영숙, 정선아, 양준모, 민경아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뮤지컬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으니 화제가 안 될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화제'들은 나의 <웃는 남자> 관람을 늦춘 이유기도 하다. 좋은 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에 계속 예매를 미뤘던 건 사실 핑계였고 청개구리 심보가 있었다. 개막 전부터 너무 떠들썩한 공연이었고 후기에는 화려하다는 극찬들만 가득했다. 그래서 그냥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 하나가 왔구나' 하는 마음에 좋은 자리를 예매할 때까지 애를 태우지 않고 기다렸다.
 
화려함 속 따뜻한 이야기
 
그런데 <웃는 남자>를 보는 동안 당혹스러웠다. 내가 본 <웃는 남자>는 화려함보다도 그 속에 있는 따뜻함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한 화려한 무대는 역시나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도 빠지지 않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대를 구경하는 것보다 나한테 중요했던 건 그윈플렌, 데아, 우르수스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윈플렌, 데아, 우르수스 이 세 사람은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웃는 남자>의 메시지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표본이다. 사회적으로 억압 받고, 약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 이 세 사람이 가족으로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웃는 남자>의 배경은 17세기 영국이다. 당시는 지독하게도 철저한 계급 사회였다. 왕족과 귀족들은 끝도 없이 부를 쌓아올리고 명예를 과시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감자 하나, 우유 한 그릇을 두고 아껴 먹는 지경이었다. 우르수스가 부르는 '세상은 잔인한 곳' 노래에 나오는 "잔인한 곳 무자비한 곳 목구멍 풀칠해 버텨내 살아내는 것도 벅차"라는 가사와 딱 맞는 시대였다.
 
인신 매매단 콤프라치코스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괴롭혔는데, 어린 그윈플렌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찢긴 입을 가지게 됐다. 그들은 그윈플렌의 입을 찢어놓은 것도 모자라 시리도록 추운 겨울 설원에 버리기까지 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어린 꼬마가 아무도 없이 눈밭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로 기적처럼 어린 그윈플렌은 눈 속을 빠져나와 우연히 약장수 우루수스의 집에 도착한다. 우르수스는 "저리가"라며 투덜댔지만 그윈플렌에게 마지막 남은 본인의 식량까지 탈탈 털어주는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때 그윈플렌이 혼자 우르수스의 집으로 갔던 건 아니었다. 눈 속에서 우연히 죽은 엄마의 젖을 물고 있던 갓난 아이 데아를 발견해 품에 꼭 안고 왔다. 그렇게 인간을 혐오하는 우르수스, 입이 찢어진 그윈플렌, 눈 먼 아이 데아 세 사람은 가족이 됐다.
 
인물로 담아낸 잔인한 세상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불공평한 세상을 향해 그윈플렌이 울부짖고 있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불공평한 세상을 향해 그윈플렌이 울부짖고 있다.ⓒ EMK

 
<웃는 남자>의 원작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쓴 동명의 소설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시대상을 작품의 인물이나 배경을 통해 탁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웃는 남자>에서는 이 내용들이 인물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우르수스는 인간과 세상을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윈플렌과 데아에게 "세상은 잔인한 곳"이라고 교육을 시킬 만큼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 여기는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우르수스 라는 이름의 뜻은 본래 '곰'인데 소설에는 항상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호모'라는 늑대가 있다. 이는 사람에게는 짐승의 이름을 쓰고 늑대에게는 사람의 이름을 부여하면서 '사람이 사람 같지 않았던 시대'를 풍자하려는 빅토르 위고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윈플렌은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자를 상징한다. 괴물 같은 모습의 얼굴만 봐도 세상의 모든 아픔을 가진 듯하다. 반면 항상 웃고 있는 입을 세상을 향해 던지는 조소 같기도 해 섬뜩함과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준다.
 
데아는 약자이지만 꿈을 상징하기도 한다. 눈도 안 보이고 심장도 안 좋지만 천사가 살아있다면 이런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다. 험악한 세상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웃는 남자>는 이렇게 남남이었던 세 사람이 모여 가족을 꾸리면서 시작한다. 너무 다른 세 사람이지만 아픔이 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제법 똘똘 뭉쳐서 살아간다. 우르수스는 그윈플렌에게 틱틱거리지만 알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마음 따뜻한 아버지고, 그윈플렌과 데아는 서로의 목소리, 눈이 되어 사랑을 속삭인다.
 
가족의 위기
 
이 특이한 가족은 하는 일도 특이했다. 바로 유랑극단을 꾸려 공연하는 것이었다. 기이한 미소의 그윈플렌과 눈 먼 데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이는 관객들에게 호기심과 공포를 동시에 줬고 어느덧 입소문이 나 꽤 유명한 공연이 됐다. 그러나 무료한 일상에 지친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 공작부인까지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그윈플렌에게 빠져버린다.

조시아나는 자신 안의 괴물을 깨워줄 신선한 존재 그윈플렌을 향해 구애했고 그윈플렌은 흔들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다가온 여성이었고, 게다가 귀족에 매력적인 모습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흔들렸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윈플렌이 흔들리고 이 가족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
  
 조시아나 공작부인이 자신 안의 괴물을 깨워줄 그윈플렌을 원하고 있다.

조시아나 공작부인이 자신 안의 괴물을 깨워줄 그윈플렌을 원하고 있다.ⓒ EMK

 
그윈플렌은 위기가 엄습해오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달콤한 꿈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끌려간 고문소 눈물의 성에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자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했다. 호화로운 침실에서 잠을 자고 평생 써도 넘쳐나는 돈을 상속받았다. 우르수스와 데아를 잠시 제쳐두었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도 꿨다. 그래서 귀족의 신분으로 참석한 의회에서는 "눈을 뜨라"며 여왕과 귀족들에게 나누고 살 것을 소리쳤다.
 
진정한 가족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
 
그러나 부패한 세상에선 그윈플렌 하나만 노력한다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결국 이 불공평하고 말도 안 되는 세상에 환멸을 느낀 그윈플렌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윈플렌이 돌아오는 과정은 화려함과 풍족함이 결국은 '따뜻한 낭만'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이 번지르르한 귀족의 삶도 살아봤지만 그 곳에 진짜 알맹이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좁지만 언제나 따뜻한 빛이 넘쳐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여기서 탁 무릎을 쳤다. 어쩌면 이게 웃는 남자의 무대가 화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웃는 남자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극 중 계속 강조한다. 이 때문에 유독 화려한 장면들이 많다. 귀족들의 가든파티, 가발, 드레스 등은 반짝 반짝 빛난다. 반면 우르수스의 집이나 유랑극단은 크기도 작고 따뜻한 노란 빛이 흘러나온다. 또한 무대 전체는 그윈플렌의 찢겨진 입의 형상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공연 내내 그의 아픔을 드러낸다. 무대를 스토리와 이어서 생각하니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웃는 남자>
 
<웃는 남자> 속에는 많은 내용들이 있다. 불합리한 세상, 가족의 정, 진정한 사랑. 아마 대다수 사람은 이 작품을 보면서 하나 이상에 무조건 공감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특히 그 중에서도 극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건 '불공평한 세상'에 관한 내용이다. 극이 시작하자마자 스크린에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문구를 띄운다. 극 중 인물들이 수차례 대사로 반복할 정도로 강조하는데 강조할 때마다 매번 가슴에 와 닿았다. 분명 저 무대에 있는 사람들은 까마득한 17세기 영국의 삶을 살고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공감하는 걸까. <웃는 남자> 속 모든 메시지들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부터 몇 세기가 지나도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당시 영국부터 지금 우리 삶까지 가족과 사랑의 의미는 그대로였다.
 
또한 이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17세기부터 지금까지 불공평한 세상도 그대로다. 다시 몇 세기가 지나면 바뀌려나. 작품의 결말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그윈플렌과 데아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관객들은 그윈플렌이 세상을 바꿔주기를 원했을까 아니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을까?

하지만 작품은 결국 둘 중 어느 것도 완벽하게 선택하지 못한 채 비극을 맞는다. 이러한 결말에 힘이 빠진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만족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낭만'을 잠시 이뤄서 기뻤으며, 반면 세상을 못 바꾸는 결말은 오히려 그 몫을 관객에게 넘기는 듯해서 길게 여운이 남았다. 
 
화려한 무대로 유명한 <웃는 남자>지만 그 속에 있는 따뜻함을 맛본 사람이라면 아마 평생 못 잊을 작품이 아닐까. 낭만적이며 섬세한 뮤지컬 <웃는 남자>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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