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살기 시작하면서, 반강제로 홍상수 감독의 팬이 됐다. '프랑스가 사랑하는' 홍상수 감독인지라 그의 영화는 프랑스에서도 항상 개봉했다. 프랑스에서 한국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보니 나도 홍상수 영화를 보게 됐다. 게다가 그의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홍대도 강릉도 잠시 다녀올 수 있었고, 차갑고 개인주의적인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잠시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프랑스 영화관에 부착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포스터

프랑스 영화관에 부착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포스터ⓒ 신진화

 
올해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에 갔다. 거기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풀잎들>을 첫 영화로 봤다. 이 영화는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였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다. 그들을 쳐다봤다. 관객들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고, 그들이 진지하면 나도 같이 진지해졌다. 꼭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사람 같았달까.

영화가 끝나고 홍상수 감독이 무대에 올라와 '관객과의 대화'를 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모은 영화표를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내가 그동안 모은 영화표에 그의 사인을 받고 싶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홍상수 감독 근처로 갔다. 하지만 스태프들에 막혀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홍 감독이 양팔을 번쩍 들더니 누군가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내 옆에 떨어졌고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내 옆에 그녀가 있었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 내가 말을 한번 건네 보고 싶었던 그 사람. 바로 배우 김민희였다.
 
 영화 '풀잎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모습

영화 '풀잎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모습ⓒ 신진화

  
김민희를 만나다, 우연히
 
실은 그녀를 한번 꼭 만나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이니까. 우리는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내가 아주 못 났을 때,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내 스스로 다짐할 때, 나는 그녀를 보면서 버틸 수 있었다.
 
6년 전인 2012년, 영화 <화차>가 개봉했을 당시 나는 대학원 신입생이었다. 학부 졸업 후, 잠시 회사를 다녔다. 돈을 모으고 회사를 그만둔 뒤, 다시 내 길을 가겠다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4년이란 공백은 너무나도 컸다. 전공은 다 까먹었을 뿐더러, 공부하는 방법도 영어도 다 잊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학원 수업은 논문을 스스로 읽고 소화해 발표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논문을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대학원 첫 수업, 어렵게 준비해 간 수업시간에 잘못된 내용을 전달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교수님의 한마디.
 
"야, 거짓말 하지 마."
 
좌절 한 번 안 해봤을 학교 친구들 앞에서 나는 '사기꾼'이 되었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저렇게 됐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쫙 퍼졌다. 공부 잘한다는 애들 사이에서 영어 하나 못 읽는 무능력자로 있는 건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내 적성이라고 찾아온 이 길에서 영어가 안 돼 연구를 할 수 없는 내 상태가 한심했다.
 
회사를 그만 둘 때, 누군가 말했다. '회사 한 번 그만두는 사람들, 자주 그만둔다. 그거 습관 된다.' 너도 그런 사람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였다. 첫 발표를 마치고 그의 조언이 계속 생각났다. 그의 말을 들었을 당시엔 '그런 거 아닌데, 난 인내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내 길을 찾아서 떠나는 건데'라는 말도 못했는데 말이다.
 
 2017년 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민희의 모습

2017년 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민희의 모습ⓒ 베를린국제영화제

  
김민희가 극복한 길, 나도
 
그때 우연히 배우 김민희가 출연한 <피플 인사이드>를 봤다. 10여 년 전 연기력 논란으로 연예계를 떠날 뻔했던 김민희가 무서운 연기력으로 <화차>라는 영화를 가지고 나온 직후였다. 그때 그녀의 성장을 보면서 견뎠다. 그래도 김민희는 전 국민 앞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날 것으로 보여줘야 했지만, 난 단지 10명이 채 안 되는 친구들 앞에서 쪽팔린 거니까. 나도 그녀처럼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며 위안했다. <화차> 때 보여준 그녀의 연기에서 10년 전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미성숙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나도 그녀처럼 10년 뒤 내 재능이 발휘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계속 멋있는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신 덕분에 나도 이렇게까지 왔다고, 당신이 더 잘 되면 나도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나 그 말을 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사인 요청에 영화관 안을 두려운 눈으로 두리번거리더니 황급히 이름 석 자를 흘려 쓰고 사라졌다. 급히 쓴 이름 석 자는 정말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수준의 사인이었다.

6년 전 영어 때문에 좌절했던 나는 아직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머물고 있다. 여전히 영어 때문에 논문이 이해가 안 돼 학계를 떠나고 싶을 때도 많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언어 장벽으로 하루 몇 줄 밖에 못 쓰고 있을 때 이게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연기력 논란을 겪었던 한 배우가 <화차>라는 영화를 거쳐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오늘도 견딘다.
 
그녀를 홍상수 감독의 영화뿐만 아니라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고 싶다. 오랜 팬으로서 그때가 오기를 상상해 본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공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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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과거가 궁금한 빙하학도. 하지만 영화 에세이를 쓰고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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