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농구대표팀은 여전히 '아시안게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기록한 대표팀은 대회 직후 허재 감독이 돌연 사퇴했다. 성적부진보다 허재 감독의 두 아들인 허웅(상무)-허훈(KT) 형제의 발탁을 둘러싼 '특혜' 논란으로 대표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판이 더 치명타였다.

규정상 선수선발에 공통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위원회 관계자 전원은 아시안게임 직후 허재 감독보다 먼저 사퇴를 결의했다. 허웅과 허훈은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다. 허재 감독은 내년 2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사임했다. 아시안게임 우승 실패보다 한국농구에 더 뼈아픈 흑역사로 남게된 장면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농구대표팀의 행보다. 대표팀은 일단 김상식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2차 예선 일정을 소화해야한다. 14일 요르단과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으며 17일에는 안방에서 시리아를 불러들인다.

농구대표팀의 장기 방향성, 눈앞 경기보다 중요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지난 8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연합뉴스

 FIBA 랭킹 33위인 한국은 2차 예선에서 중국(29위), 뉴질랜드(38위), 요르단(46위), 레바논(54위), 시리아(87위)와 함께 E조에 편성됐다. 1차 예선에서 같은 조였던 중국, 뉴질랜드와는 맞붙지 않고 중동 3개국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와 홈 앤드 어웨이 대결만 펼치지만 1차예선에서의 성적은 그대로 누적된다.

월드컵 개최국인 중국을 제외한 조 3위까지는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고, E조와 F조 4위팀중 성적이 더 좋은 팀이 마지막 본선행 티켓을 가져간다. 1차 예선에서 4승 2패를 기록한 한국은 나란히 5승1패인 뉴질랜드, 요르단, 레바논에 이어 조 4위로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다.

1차예선에서 C조 1위를 차지한 요르단은 만만치 않은 전력을 지닌 강적이다. 에이스로 꼽히는 슈팅가드 다 터커는 미국계인 귀화선수로서 1차 예선에서 평균 19.3점을 올리며 맹활약한 바 있다. 한국농구는 요르단을 넘지 못하면 농구월드컵 본선행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최상의 전력과 분위기를 유지해도 모자랄 시점이지만 정작 한국은 현재 최악의 조건에 놓여있다. 2년여간 팀을 이끌어왔던 전임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대표팀은 리더십의 공백을 대체할 틈도 없이 어려운 원정경기를 치러야한다. 김상식 대행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표팀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수구성 문제도 원활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아시안게임에 불참했던 오세근-김종규-이종현-양희종 등 핵심전력들의 공백은 농구월드컵에서도 이어진다. 가뜩이나 국제무대에서 열세인 빅맨진의 약화가 뼈아프다. 특혜 논란에 휩싸인 허웅-허훈 형제를 제외한 것은 불가피했지만, 대체선수 중 한 명으로 뽑은 정효근이 부상으로 합류가 불발되며 대표팀은 12인 엔트리를 다 채우지도 못한 상황에서 요르단 원정에 나서야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상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나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농구협회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상 아시안게임부터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귀화선수 라건아에 대한 의존도만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당장 눈앞의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구대표팀의 장기적인 방향성이다. 허재 감독의 불명예 사퇴로 농구협회가 야심차게 추진한 전임감독제는 또다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대표팀은 2009년 첫 전임감독으로 임명됐던 김남기 감독이 연봉문제와 개인사정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프로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동안 프로팀 우승 감독이 대표팀을 겸임하는 불안정한 체제로 회귀해야했다.

대표팀 감독과 경기력 향상 위원회의 엇박자

일단 17일 시리아전까지는 김상식 대행 체제가 유지될 것이 확실하지만 그 이후의 일정은 미지수다. 현재로서는 김상식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김 대행이 아직까지는 지도자로서 대표팀을 맡을 만한 성과를 보여준 게 없다는 점이다.

김 대행은 프로농구 안양 KT&G(현 인삼공사),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서울 삼성 썬더스에 이번 대표팀까지 포함 감독대행만 4번이나 거치는 진기록을 세웠으나 독자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당장 새로운 감독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전임감독제의 틀을 계속 유지해야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다시 프로팀 감독이 대표팀을 겸임하는 체제로 회귀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고 더 이상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지도자 인재풀이 넓지 않은 국내 농구의 한계를 감안할 때 대표팀 감독을 맡을 만한 후보는 많지 않다. 김남기-허재같은 전임자들의 불행한 결말을 보면서 부담은 크고 지원은 열악한 대표팀 감독직에 선뜻 자원할 만한 인물이 나올지도 미지수다.

선수선발이나 대표팀 운영의 체계화된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지난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과정에서 대표팀 운영에 공동의 책임을 져야할 전임감독과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위원회는 심각한 엇박자를 보였다. 허재 감독과 기술위원들이 선수선발을 놓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다, 사퇴 과정에서도 충분한 논의 없이 저마다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리며 대표팀을 더욱 무책임한 혼란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다시 전임감독이 되더라도 대표팀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표팀은 앞으로도 2019 농구월드컵이나 2020 도쿄올림픽 예선 등 중요한 경기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 농구의 상향평준화 속에 경쟁팀들은 점점 앞서나가고 있는데 한국농구는 세대교체와 포지션 장신화, 대표팀 상비군 제도와 평가전 상설화 등 중요한 현안들 앞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지원도 비전도 없는 국가대표팀에는 선수들도 동기부여와 충성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대표팀 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농구계 주요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책임감있는 행보를 보여줘야할 시점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