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 너머의 존재는 많은 영화에서 구현되곤 한다. 다음 단계의 인간, 소위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존재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 말이다.

<터미네이터> 류의 영화를 생각하면 쉽다. <터미네이터>가 처음 나올 때는 기술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설정이 먼 미래 혹은 허무맹랑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반면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제는 이런 설정이 구체적인 예상은 어려워도 가까운 미래, 적어도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은 이야기가 된 듯하다.

공포영화의 명가라고 불리는 영화 제작사 블룸하우스(Blumhouse)가 이제는 새로운 매력의 액션에 도전했다. <겟 아웃>과 <인시디어스> 시리즈, <해피 데스데이> 등의 웰메이드 공포 영화로 대표되는 블룸하우스가 근미래의 기술 발전과 스릴러를 콘셉트로 한 신작 <업그레이드>로 돌아왔다.

인간을 기만하는 테크놀로지, 스템
 
 <업그레이드> 스틸컷.

<업그레이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주의! 이 기사는 영화 <업그레이드>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그레이(로건 마샬 그린 분)은 자동차 수리공이다. 극중에서 아내 아샤(멜라니 벨레조 분)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집에서는 인공지능을 통해 도움을 받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레이는 그에 반해 인공지능과 기술의 진보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감이 있다. 아직까지 손으로 직접 만지며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정도니까.

어느 날 아샤와 그레이가 타고 가던 자율주행 자동차가 오류를 일으켜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현장에서 괴한들의 공격으로 아샤는 살해당하고 그레이는 사지가 마비되는 비극을 겪는다. 몇 개월이 지나고 그에게 차를 맡겨 온 고객이자 IT 기업의 오너인 에론(해리슨 길벗슨 분)이 '스템'이라는 기술을 소개하며 스템을 장착하면 전신마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수술을 통해 스템을 삽입한 그레이가 아내를 살해한 무리들에 대한 복수를 해 나가는 것이 영화의 이후 플롯이다.

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을 기만할 줄 아는 테크놀로지라는 점이다. 아내를 죽인 자들과 연루된 한 남자의 집에 침투한 그레이가 남자와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그 기만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윤리와 책임 문제에서 기술은 자유롭다는 것을 이용해 '스템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그레이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문제'를 의도적으로 구분한다. 

결국 남자를 죽인 건 스템인가 그레이인가? 물론 그레이의 육체를 지배하는 스템이 한 일이지만 난장판이 된 집안을 정리할 때 스템은 마치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듯이, 자신은 뒷수습은 할 줄 모른다는 듯이 한발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의 복수를 위한 응징은 어차피 모두 표면적으로 그레이의 육체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책임은 그레이의 몫이 된다. 
 
 <업그레이드> 스틸컷.

<업그레이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그러니 윤리와 책임의 문제 앞에서 인간은 혼란스러워 하지만 기계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레이가 사지마비의 상태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범죄를 일으키고 있음을 짐작한 코르테즈 형사(베티 가브리엘 분)는 그레이를 미행하는데, 이를 알아차린 스템이 다른 이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조작하여 형사의 차와 사고를 내게 만든다. 

이 장면은 이후 기술의 급속한 발전 앞에 언젠가는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과연 기술과 관련한 책임과 윤리의 문제 앞에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걸까?

잘 알려졌다시피 <업그레이드>는 저예산 영화다. 화려하고 웅장한 액션신에 대한 욕심이 날 법한데 그보다는 스템이 어떻게 인간 육체를 지배하는지 미묘한 움직임을 그레이의 행동을 통해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하지 않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다가올 현실에 대한 영화적 재현
 
 <업그레이드> 스틸컷.

<업그레이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극 중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생활 전반에 침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코르테즈 형사가 드론 CCTV를 사용해 모든 상황을 감시하는 상황이 딱 그렇다. 인공지능 스템은 인간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테크놀로지인 셈이다. 특히 에론의 통제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능한 해커가 프로그래밍을 통해 스템의 알고리즘을 해킹하고 백도어를 만들어놓는 장면에서는 '다운로드 가능한 정신'이라는 포스트휴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통제불능한 스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론을 찾아갔을 때 그레이가 자기 머리에 총을 쏜 뒤, 마지막 엔딩은 뻔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정말 이 모든 상황은 꿈이었을까? 스템은 어떻게 된 걸까? 이제 육체만 그레이의 것을 빌린 스템은 온전한 생명력을 얻었음을 암시하고 영화는 끝난다. 꿈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을 허무는 상상을 해봐도 재밌을 듯하다. 정말로 그레이는 '깨어난' 것일까.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는 뻔한 말이 여기서 필요할 법하다.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서, 감독이 기술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전지전능한 테크놀로지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이야기는 보통 디스토피아적인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 기술이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거나 아예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거나 하는, 미래에 대한 공포 말이다. 소위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로 불리는 이러한 태도는 기술 진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렇다면 감독은? 결국 스템은 육체를 얻기 위해 누군가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였지만, 어쨌거나 그 기술 덕분에 사지가 마비된 그레이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가 아니겠는가. 이 모든 물음 앞에 <업그레이드>는 답하기 보다는 그저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꿈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딱히 어떤 답을 주지 않고서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결말은 어쩌면 포스트휴먼과 인간의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공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어느 입장을 확고하게 보여주기 보다는 다가올 현실에 대한 영화적 재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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