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걸음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작은 관 5개를 가진 영화관이 있다.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있어서인지, 주로 그 시기에 잘나가는 영화들이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상영한다. 영화관이 다 그렇듯 팝콘도 팔고 콜라도 팔고 한 쪽에는 개봉 예정작들의 포스터가 놓여있다. 주말이면 관이 꽉꽉 차게 붐비고, 큰 배급사에서 나온 영화들이 상영 시간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의무 교육 12년 동안 한 번을 안 쳤던 땡땡이를 대학 와서 몰아치게 된 나는 학교에 가는 척 백팩을 메고 나와 동네 영화관으로 걸어가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더니, 처음에는 집 앞까지만 걸어가던 게 점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나 영화관을 찾아다니기에 이르렀다.
 
하루 종일 같은 극장에서 영화 서너 편을 연달아 보는 날도 많았고, 좋아하는 음악 영화를 보겠다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 덕분에 사운드가 훌륭하다는 극장에도 찾아갔다. 멀티플렉스와 독립 영화관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고,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서 갤러리의 사진을 지우면서도 영화 예매 어플 만은 사수했다. 극장이 아니라면 방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영화를 보러 나가는 게 아니라면 방 밖으로 단 한 발자국을 벗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영화 '몬스터 콜'

영화 '몬스터 콜' ⓒ 롯데엔터테인먼트

 
학교 대신 영화관으로... 우울했던 나의 도피처
 
"우울해"라는 말을 달고 살던 시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죽지 않고 살지?" 혹은 "이렇게 산다고 세상이 바뀔까?" 싶던 작년. 어딘가로 가서 아는 얼굴들을 마주치고 항상 비슷한 우울을 느끼기 싫었던 나에게 극장은 훌륭한 도피처였다. 강의실 문 앞까지 도착했는데도 결국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겁나서 돌아 나왔던 어느 보통의 날, 나는 또 나를 괴롭게 하던 온갖 것들을 떠올리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태로 제일 가까운 극장에 갔다.
 
10분의 광고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서 스크린과 스피커에서 나오는 온갖 영상과 소리를 흘려보냈다. 극장 안의 관객은 나 혼자뿐이었고, 핸드폰 전원을 끄고 앉아 있으니 극장이 아니라 온 세상에 나 혼자뿐인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시작된 영화는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몬스터 콜 A Monster Calls>이었다. 원하지 않은 혹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떠밀린 주인공 코너와 그런 코너를 찾아온 몬스터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펼쳐졌고, 단순히 괴수 영화일 것이라 짐작하고 앉아있던 나는 영화가 끝날 즈음엔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있었다. 
 
 영화 '몬스터 콜'

영화 '몬스터 콜' ⓒ 롯데엔터테인먼트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며 코너를 찾아오던 몬스터와, 코너를 탓하지 않은 어른들과,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코너. 나는 1시간 48분의 러닝타임 동안 코너였고, 끝끝내 코너가 영화 속에서 내뱉었던 말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들고 온 휴지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영화가 끝나고 OST와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코너에게 몬스터가 찾아왔듯, 나에게는 이 영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2시간 영화로 이틀 살아갈 힘을 얻다
 
영화는 끝이 났고 나는 아주 통곡을 하면서도 다음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또 다시 사람들이 붐비는 극장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날 나는 나약하고 게으르다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러느라 나조차 돌보지 않았던 나를 봤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살았고, 아주 운 좋게도 죽고 싶어질 때마다 나의 몬스터 같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집에서 나와, 어차피 나를 모를 사람들을 지나쳐 스크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나이면서 내가 아닌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 극장의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흘러가는 빛들을 주시하며 나는 현실로부터 훌륭하게 격리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울하고 슬프면서도 혼자서는 잘 울지 못하는 내가 영화 속의 이야기들에 울었고 사람에게서 구원을 원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만든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다. 텅 빈 동네의 텅 빈 영화관, 겨우 40명의 사람도 찾아오지 않아 항상 혼자 앉아있던 극장 마지막 줄 제일 가운데의 의자에서 나는 그렇게 매번 두 시간의 영화로 이틀 정도 살아갈 힘을 얻어냈다. 
 
 영화 '몬스터 콜'

영화 '몬스터 콜' ⓒ 롯데엔터테인먼트

 
나는 이제는 그래도 제법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수 있고, 휴학한 상태로 꾸준히 매일매일 출근해 일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강의실은 무섭고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겁나지만, 더 이상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기만 하지도 않다. 나를 숨기고 싶어서, 죽고 싶거나 살아갈 이유와 방법을 몰라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다 향하던 극장. 결코 나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았어도, 그래도 잠시 도망칠 극장이 있었기에. 어둡고 텅 빈 극장 안에서 내가 할 일은 유일한 빛을 바라보는 일 뿐이어서, 흔들리고 연약한 마음으로도 그것 하나만은 잘 해낼 수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그 겨울을 살아내어 또 다시 올해의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공모
영화관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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