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포스터.ⓒ 넷플릭스


미국에서 갑자기 '야쿠르트' 인기가 높아졌다. 일본야쿠르트 주식이 2.6%나 상승하고(블룸버그 통신), 트위터의 'Korean Yogurt Smoothie' 검색량도 상승했을 정도. 미국 내 한인마트에는 뜻밖의 '야쿠르트 품절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 뜬금없는 야쿠르트의 인기 상승 배경에는,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아래 내모남)가 있다.
 
이 영화에서 야쿠르트는 사랑의 매개체다. 주인공 라라진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 남자 주인공 피터는 라라진 여동생의 간식인 이 야쿠르트를 뺏어 먹고는 너무 맛있다며 감탄했고, 이후 라라진과 여행을 준비하며 멀디먼 곳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서 이 야쿠르트를 사 온다. 자신을 향한 피터의 마음이 뭔지 헷갈려하던 라라진은 피터가 자신을 위해 야쿠르트를 준비해왔다는 사실에 그의 진심을 깨닫는다.
 
이 장면을 본 <내모남> 팬들은 너도나도 이 야쿠르트를 사 먹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야쿠르트 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졌다.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야쿠르트는 대부분 일본 제품이다) 지난 8월 17일 오픈해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하이틴 로맨스 영화 한 편이 만든 때아닌 나비효과. 넷플릭스는 공식적으로 조회수나 인기 순위 등을 공개하지 않지만, 미국 내에서 <내모남>의 인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미국 내 야쿠르트 인기를 몰고 온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내모남>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이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라라진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언니 마고, 동생 키티,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16살 소녀다. 옆집에 살던 친구 조시를 좋아하지만, 언니의 남자친구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고백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다. 언니가 스코틀랜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언니와 조시는 이별하지만, 그래도 언니와 사귀었던 친구에게 다시 고백할 수는 없는 일. 언제나처럼 전하지 못한 마음은 편지로 적어 자신만의 비밀 상자에 넣어둔다. 

그렇게 정리한 라라진의 마음.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비밀 러브레터가 당사자들, 라라진이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배달되고 만다. 편지를 보고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7학년 때 친구였던 피터. 라라진은 피터에게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다섯이고, 그중 지금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조시이며, 이 마음만큼은 절대 들키고 싶지 않다고 설명한다. 

고백을 거절하려던 피터는, 라라진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난 뒤 위장 연애를 제안한다. 피터는 헤어진 여자친구 젠의 질투심을 자극하고 싶었고, 라라진은 조시를 향한 진심을 절대 들킬 수 없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가짜 연애. 꼼꼼하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한 계약서까지 쓰고 시작한 위장 연애지만, 둘의 마음은 점점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다. 진심으로 변한 것이 자신의 마음뿐일까 걱정하고 초조해하며, 피터는 조시를, 라라진은 젠을 신경 쓰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평범한 여자 주인공을 향한 킹카들의 구애, 그리고 '계약 연애' 혹은 '정략 결혼' 등으로 엮였지만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마는 남녀. 등장인물 소개만 봐도 러브라인이 어떻게 뻗어 나갈지 뻔히 내다보이는 흔한 설정의 하이틴 로맨스다. 하지만 <내모남>은 10대들의 갈팡질팡한 마음과 엄마를 잃은 세 자매와 아버지의 끈끈한 가족애, '야쿠르트'와 같은 한국적인 요소들을 적절하게 결합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40주나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고, 넷플릭스 영화로까지 제작됐다. 영화는 야쿠르트 품절 열풍을 일으킨 것은 물론,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4%를 기록 중이다.

야쿠르트와 김치를 먹고, 마스크팩을 즐기는 한국인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전형적인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하이틴 로맨스의 여주인공이 아시안으로 설정됐다는 건, 반가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속 아시안은 대개 컴퓨터나 수학을 잘하는 천재거나, 칼을 휘두르는 자객, 혹은 작은 몸을 이리저리 접고 굽히는 서커스의 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모남> 속 라라진은 미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미국 대중미디어 안에서 유별나거나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아시안이 로맨스 장르의 주인공이 됐다는 건, 그 자체로 화제가 될 만큼 놀라운 변화다.
 
무엇보다, 현실성을 부여한답시고 주인공에게 인종 차별이라는 시련을 주지도 않았다. 아시안 여학생과 학교 최고 인기남의 연애를 인종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둘 사이에 사랑의 장애물은 여럿 있지만, 그 중 '라라진이 아시안이라서' 생긴 장애물은 없다. 혹시라도 누군가 라라진을 한국인이라고, 아시안이라고 차별하고 무시할까 걱정한 마음이 머쓱해질 정도다.
 
다만 야쿠르트나 마스크팩, '커비' 성을 가진 라라진 자매들이 엄마의 성을 따라 자신들을 '송(Song) 자매'라 부르는 것, 고기 요리를 먹을 때 식탁에 놓인 김치와 (상추 대신 놓인) 버터 레터스(Butter Lettuce) 등 주인공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라라진과 그 가족의 '아시안-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은, 여느 할리우드 작품 속 시선처럼 독특하고 기이한 것이 아닌, 흥미롭고 신선한 것, 궁금하고 경험해보고 싶은 것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섹스 앤 더 시티> 속 친구들이 즐기던 브런치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보며 느낀 딱 그 정도의 시선으로 말이다. 

원작자 제니 한이 '아시안 라라진' 고집한 이유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동명 원작 소설을 쓴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동명 원작 소설을 쓴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 제니 한 인스타그램

하지만 이런 디테일은 하마터면 만날 수 없을 뻔했다. 원작자인 제니 한이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 따르면, 원작 소설이 인기를 끌고 영화화를 제안해온 제작사 중 단 한 곳만이 라라진을 아시안 배우로 캐스팅하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작가는 라라진의 주요 정체성 중 하나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이라고 생각했고, 아시안 캐스팅을 약속한 그 한 곳의 제작사와 계약했다고. 하마터면 우린 백인 라라진을 만날 뻔한 것이다.
 
제니 한은 이 칼럼에서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은 모두 백인 배우들이었고, 나는 어떻게 꾸며도 그들을 닮을 수 없었다"면서 "영화 속에서 나를 닮은 배우를 자주 발견하는 경험은,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이동할 힘을 준다"고도 썼다. 이는 제니 한이 라라진 역할에 아시안 배우 캐스팅을 고집한 이유이자, <내모남>을 본 아시안-아메리칸들이 반가움 이상의 의미를 담아 라라진을 응원한 이유일 것이다.

차별적인 시선은 우리 안에도 있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라라진 부녀의 모습.ⓒ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서로를 끈끈하게 사랑하는 '송 시스터즈'. 왼쪽부터 막내 키티, 첫째 마고, 둘째 라라진.ⓒ 넷플릭스


영화 <내모남>은 우리 안의 또 다른 차별적인 시선을 깨닫게 만들기도 했다. 온라인에는 마고와 라라진은 부모님의 재혼으로 맺어진 의붓자매로, 막내 키티는 재혼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측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작 소설에서 세 자매는 모두 혼혈인 설정이지만, '혼혈처럼' 보이지 않는 마고와 라라진의 외양을 보고 그리 추측한 것이다. 라라진을 연기한 배우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배우 라나 콘도어고, 많은 시청자들이 '절대 혼혈이 아닐 것'이라 추측한 마고 역할의 배우 쟈넬 패리쉬는 중국계 어머니와 유럽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처럼 겉모습만으로 혼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세 자매의 혈연관계를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만을 공들여 그릴 뿐. 여기에서 이들이 의붓자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막내 키티는 연애도 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언니 라라진을 걱정해 사랑의 큐피트를 자처하고, 언니 마고는 동생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짝사랑했다는 사실보다 이 일 때문에 자매들의 사이가 멀어질까 걱정한다. 여기에 어린 딸의 첫 연애를 바라보는, 때론 초조해하고, 때론 응원하는 아빠의 마음까지. <내모남>의 이야기를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든 건 바로 이 가족애다.  

수잔 존슨 감독이 어떤 의도로 세 배우를 캐스팅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시안과 백인의 혼혈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라는 선입견으로 셋의 혈연관계를 추측한 시청자들에게는 한 가지 메시지를 더 얹어줬다. "어떤 형태로 맺어졌든 그게 중요해? 가족은 그저 가족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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