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틸다> 제작보고회 중 마틸다 역을 맡은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뮤지컬 <마틸다> 제작보고회 중 마틸다 역을 맡은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뮤지컬 <마틸다>의 첫 인상은 무대 위에 '아이들이 참 많다'는 점이었다. 무대 위 주연 배우들도 아이들이었고 객석에도 다른 뮤지컬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어린이 관객들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오자 '이 뮤지컬은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행동을 하는 어른에게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마틸다를 보고 본인의 모습을 돌이켜 볼 수도 있고 꿈 많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잊고 살았던 과거의 꿈을 마주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어린이들이 만드는 어른을 위한 동화랄까.
 
특별한 아이 마틸다, 사랑은 받지 못하다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마틸다는 매일 도서관에 들러 죄와 벌, 오만과 편견, 파우스트 등 어려운 책을 읽고 독학으로 러시아어를 배울 만큼 영특한 아이다.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암산 실력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중고차를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하는 아빠에게 "옳지 않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 착한 심정까지 갖췄다. 그런데 이런 사랑스러운 마틸다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은 "책 그만보고 TV나 봐"라고 말했고 "여자 아이가 무슨 공부냐"며 핀잔을 줬다. 심지어 딸에게 "역겹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정말 다행히도 마틸다에게 한 줄기 빛이 다가온다. 담임선생님 허니는 마틸다의 재능을 칭찬해주고 따뜻하게 바라봐줬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마틸다는 다시 엄청난 벽에 부딪혔다. 바로 학교 교장 트런치불이었다. 해머 돌리기 선수 출신인 그녀는 '어린이는 구더기이며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믿었다. 또한 매일 아이들을 괴롭혔으며 누명을 씌워 벌을 주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악당 '트런치불'
 
 뮤지컬 <마틸다>의 주인공 마틸다와 트런치불 교장이 마주보고 서있다.

뮤지컬 <마틸다>의 주인공 마틸다와 트런치불 교장이 마주보고 서있다.ⓒ 신시컴퍼니


 
그런데 사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트런치불은 끔찍하기는 해도 이 세상 최고로 잔인한 흉악범은 아니다. 길을 지나가는 어른들을 붙잡고 가장 무서운 사람들 생각해보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 잔인한 살인마, 범죄자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마틸다> 속 트런치불은 조금 다르다. 그는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어른'이다. 2m에 가까운 키, 살찌고 커다란 몸, 쭉 찢어진 눈, 볼에 붙은 커다란 사마귀 점 등 겉모습부터 심상치 않다. 트런치불이 아이들에게 벌주는 방식도 독특하다. 초코 케익을 훔쳐 먹은 아이에게는 커다란 초코 케익 한 판을 강제로 다 먹도록 했고 말 안 듣는 학생의 귀는 치즈처럼 쭉 늘려 버렸다. 이런 트런치불의 묘사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이 묻어 나온다. 우리가 어린 시절 쓴 일기장을 보면 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싶은 문장들이 있는 것처럼 바로 그런 아이들의 상상이 모여 못된 악당 트런치불이 태어났다.
 
마틸다는 똘똘함과 비범함으로 트런치불을 향해 당당히 맞선다. 그 과정에서 트런치불의 그릇된 행동에 분노하며 피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린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모두 어렸을 때 마틸다처럼 예의 바른 행동을 했고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어른들에게 "그러면 안돼"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많은 어른들이 어느 순간 그때의 꿈을 잃고 바쁘게 살고 있다.
 
콜라를 먹고 싶던 아이가 어른이 된 후
 
뮤지컬 <마틸다> 중 'When I Grow Up' 넘버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그 꿈들이 참 소박하다. "매일 콜라를 원 없이 먹을래", "밤을 새고 아침에 잠 들거야" 등 어른이 된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고 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장면에서 어린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어린 아이가 순식간에 큰 아이로 바뀐다. 작은 아이와 큰 아이가 재빨리 그네를 바꿔 탔을 뿐인데 내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마치 저 그네 위에서 훌쩍 자란 아이가 나 같았다.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해맑았고 작은 행복이 하루의 전부였지' 하면서 말이다. 어른 관객들은 그네 위에 서있던 작은 아이가 조금 더 큰 아이가 되고 큰 아이가 마침내 어른이 되는 모든 과정을 이미 겪었기에 더 울컥한다.
 
부모님에게 무시당하고 못된 교장한테 괴롭힘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밝고 도전적인 마틸다. 그녀의 당당함에 어른인 나도 의지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어른들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마틸다가 더 안쓰러운 이유도 관객들은 어린이들의 그 시기가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 때인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의 귀여운 표정과 순수한 대사야말로 <마틸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책 읽지마"
 

<마틸다> 속 인물들은 크게 어른과 아이들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어른과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물들의 성격에 있다. 우선 아이들은 각각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덤벙대는 아이, 먹을 걸 좋아하는 아이, 친구를 좋아하는 아이 등.

그런데 어른들은 착하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 이분법적으로 나눠져 있다. 어린이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을 하는 착한 어른 담임선생님 허니와 도서관 사서 선생님은 마틸다를 유일하게 응원해주는 어른들이다. 나쁜 어른들은 어린 마틸다에게 "역겹다"는 말을 하는 부모님과 트런치불이다.

공연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착한 어른과 나쁜 어른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공연, 영화 등에서 종종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서 인물들의 성격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는 하는데 <마틸다>는 이 점을 아주 탁월하게 활용했다. 그렇다보니 극 내내 인물들이 객석을 향해 "책 보지마"라는 말을 해도 관객들은 책 읽는 행동이 나쁜 행동이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동화 같은 무대 
 
 뮤지컬 <마틸다>의 무대.

뮤지컬 <마틸다>의 무대.ⓒ 신시컴퍼니


<마틸다>는 아름다운 무대 덕분에 동화 같은 느낌이 한껏 살아난다. 이게 과연 내가 무대에서 보고 있어도 되는 장면인가 싶을 정도의 고난이도의 안무들도 많다. 공연을 보다 입 밖으로 "헉" 소리를 내기도 했다. 트런치불이 양갈래를 머리를 한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 올려 빙빙 돌려 던지기도 하고 천장에서 아이가 바닥으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거의 모든 장면에서 점프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 높은 안무들이 이어진다. 트런치불 키의 3분의 1만한 조그마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압도당할 만 했다.
 
<마틸다>의 무대는 수많은 '알파벳'들이 감싸고 있다. 이 무대를 보고 들었던 생각은 참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나이가 이제 막 글을 배울 시기다. 극중에서도 알파벳 수업을 듣는 장면, 단어 시험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알파벳들은 무궁무진한 조합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을 알파벳을 이용해 표현한 듯했다.

<마틸다>를 보고 나와서 지금까지 계속 기분이 좋다.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던 노래들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고난이도의 안무들도 모두 멋있었지만 지금 나의 기분을 가장 좋게 만드는 건 아이들에게 받은 '에너지'다. 무한동력의 힘을 가진 아이들에게 기를 받아온 느낌이 이런 걸까.

나는 뮤지컬 <마틸다>를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동심 가득했던 시절을 떠올려볼 수 있고 그들에게 용기를 배울 수도 있다. 아이들을 데려간 부모님들이 더 감동받고 오는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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