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앞두고 훈련하는 칠레 선수들 한국과 평가전을 갖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한국전 앞두고 훈련하는 칠레 선수들 한국과 평가전을 갖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과 칠레의 A매치 축구 평가전을 앞두고 칠레 국가대표 미드필더 디에고 발데스의 부적절한 행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국내 한 축구팬은 칠레 대표팀 선수들과 찍은 기념사진에서 발데스가 인종차별적인 동작을 취했다고 폭로하며 인터넷에 사진을 공개했다. 발데스는 한국팬 옆에서 눈을 찢는 동작을 취하며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이는 아시아인의 신체적인 특징을 비하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행동이다.

발데스는 멕시코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A매치에는 6경기서 1골을 기록한 선수다. 칠레 대표팀에서는 백업 멤버 정도로 분류되고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며 국내 팬들은 격분했다. SNS와 축구 커뮤니티 등에서는 발데스의 인종차별적인 동작을 취하는 사진이 확산되며 팬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칠레와의 친선전을 보이콧하고 칠레축구협회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강경한 반응도 속출하고 있다.

설상가상 칠레 대표팀 감독의 적반하장식 대응도 성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콜롬비아 출신의 레이날도 루에다 칠레 축구대표팀 감독은 10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발데스의 인종차별 행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경기 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답변을 피했다.

대표팀 감독은 자신이 선발한 선수를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가대표 선수가 해외 원정 중 심각한 물의를 일으켰는데도 그저 '축구 외적인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인종차별 행위는 전 세계적으로는 물론, FIFA에서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현안일 만큼 결코 축구와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선수가 개인 SNS에 사과하긴 했지만...
 
질문에 답하는 칠레 루에다 감독 한국과 평가전을 갖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레이날도 루에다 감독이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질문에 답하는 칠레 루에다 감독 한국과 평가전을 갖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레이날도 루에다 감독이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사건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졌고, 이미 칠레 현지 언론에도 보도된 상태다. 그런데도 오히려 당연한 문제제기를 한 언론에 사과는커녕 감독이 면박 주는 듯한 모습은 그야말로 오만방자함의 극치다. 한국축구와 팬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황당하다고 할 장면이다.

발데스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 밤에야 결국 개인적으로 사과문을 게재했다. 발데스는 개인 SNS를 통하여 "불쾌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실망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사과드린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뒤늦은 사과에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감독의 무성의한 태도에 이어 칠레축구협회도 아직까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칠레는 피파랭킹 12위로 한국(57위)보다 크게 높으며 남미 선수권인 코파아메리카에서 2연패에 빛나는 축구 강국이다. 아르투로 비달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스타플레이어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칠레 대표팀은 지난 7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돔에서 일본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홋카이도 지진으로 평가전이 취소되면서 휴식 후 바로 한국으로 이동했다.

칠레 대표팀 선수들은 공항을 통하여 한국에 입국할 때부터 적지 않은 국내 축구팬들의 따뜻한 환대와 관심을 받았다. 발데스의 행동이 개인의 일탈이라고 해도 명백히 칠레 국가대표팀의 품위를 떨어뜨린 것을 물론, 그들을 환영해준 한국축구팬들의 크게 실망하게 만든 처신인 것은 분명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분명한 메시지 전달해야 한다

해외에서 방한한 유명 선수들의 인종차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A매치를 위하여 방한한 콜롬비아 대표팀의 에드윈 카르도나(보카 주니어스)도 경기 중 신경전을 벌이던 한국 선수들을 향해 발데스와 똑같은 인종차별적 동작을 취한 바 있다. 카르도나는 이후 FIFA로부터 출전정지와 벌금 징계를 받았고, 콜롬비아 축구협회를 통하여 공식 사과해야 했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의 에드윈 카르도나(보카 주니어스)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평가전 도중 몸싸움 과정에서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눈 찢기 동작'을 하고 있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의 에드윈 카르도나(보카 주니어스)가 지난 2017년 11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평가전 도중 몸싸움 과정에서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눈 찢기 동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에는 당시 박지성이 속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방한하여 친선전을 치렀던 이탈리아 출신의 페데리코 마케다(현 파나티니아코스)의 사례도 있다. 당시 마케다는 골을 넣고서 관중석을 향해 원숭이 흉내를 내는 인종차별적인 동작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가 국내 방송에 출연하여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논란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의 변명은 늘 비슷하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라거나 혹은 "잘 모르고 실수로 했다"라는 식이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가 인종차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정말로 몰랐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몰랐다고 해서 바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심 어린 반성과 제대로 된 해명이 먼저 나와야 한다. 심지어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 찾아온 손님 입장이면 더욱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다. 기껏 손님이라고 모셔와서 잘 대접했는데 오히려 조롱이나 당한다면 그저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뒷맛이 씁쓸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단호한 대응만이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대한축구협회도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이번 사태를 대충 묵과해서는 곤란하다. 칠레축구협회의 공식 사과와 더불어, 필요하다면 FIFA에 징계까지도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물의를 일으킨 선수와 감독에게도 다시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A매치가 끝나고 나면 사건이 적당히 흐지부지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 어디에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용납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해명과 재발 방지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칠레 대표팀은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스스로 내보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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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칠레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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