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016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시민들을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 연합뉴스


히딩크의 중국행, 경계하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이 중국 21세 이하(U-21)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다. 21세 이하라고 하지만 사실상은 23세 이하 대표팀이다. 2년 뒤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중국축구는 풍부한 국제경험과 지도력을 갖춘 히딩크 감독을 승부사로 영입했다. '축구굴기'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축구는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에게 A대표팀을 맡긴 데 이어, 히딩크 감독에게 23세 이하 대표팀을 맡김으로써 세계적인 명장의 지도력에 기대어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

이미 히딩크 감독은 8일(한국시간) 네덜란드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U-21 대표팀 사령탑 부임 소식을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미얀마, 타지키스탄과의 경기를 직접 관전하며 중국 선수단 파악을 시작했으며 정식 부임은 이달 말쯤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 팀을 맡아 성과내는 경우 많았던 히딩크

히딩크 감독은 세계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이다.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것을 비롯하여 네덜란드-호주-러시아-터키 국가대표팀을 거쳤으며 클럽축구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첼시-발렌시아-아인트호벤 등 유럽 유수의 명문클럽을 이끌고 무수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주로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지는 비주류의 팀을 맡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던 경우가 많아 '히딩크 매직'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마지막 전성기는 사실상 2000년대 후반이었다. 러시아대표팀을 이끌고 유로 2008에서 4강 진출이라는 성과을 이뤄낸 데 이어 2009년에는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겸직하면서도 FA컵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은 명백한 하향세가 두드러졌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러시아 감독직을 사임했고, 이후 터키와 조국 네덜란드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기도 했으나 역시 성적 부진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낙마했다. 러시아 클럽 안지 마하치칼라의 지휘봉을 거쳐 첼시의 두 번째 임시감독을 맡았던 2016년을 마지막으로는 지난 2년간 현장을 떠나 있었다. 몇 차례 국가대표팀이나 유럽 클럽의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하여 유럽에서는 전성기가 지난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주가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히딩크 감독이 은퇴를 앞둔 나이에 축구에서는 변방에 해당하는 아시아, 그것도 연령대별 대표팀의 감독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히딩크 감독이지만 올림픽 출전 경험은 없으며 연령대별 대표팀을 맡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축구 경험은 한국에 이어 두 번째다.

히딩크 감독은 2017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동안 한국대표팀 복귀설이 거론되어 국내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축구팬들 사이에서 히딩크 감독이 남긴 향수는 여전히 강하다. 히딩크 감독과의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한국축구계 입장에서는 어쩌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하필 직접적인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중국의 감독으로 부임한 모습을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히딩크 감독의 중국, U-23 챔피언십 본선에서 한국 만날 가능성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선 2020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본선에서 3위 안에 들어야 한다. 그 전에 내년 3월 열리는 예선부터 통과해야 한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아시아 U-23 챔피언십 예선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직행한 상황이다. 만일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중국이 챔피언십 본선에 진출한다면 한국과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스포츠 강국을 자부하는 중국이지만 축구에서만큼 유독 맥을 못쓰고 있다. 축구계에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 결실은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하는 클럽축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해외의 유명 선수와 명장들을 대거 영입하며 자국리그의 규모는 성장했지만 정작 자국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대표팀의 체질과 경쟁력이 단기간에 바뀌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올림픽도 자국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권을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자력으로 예선을 거쳐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베이징 대회에서도 조별리그 1무 2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사우디에게 3-4로 패배하며 16강에서 탈락한 바 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이나 호주 대표팀을 맡아 비교적 단기간에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발굴해내며 좋은 성과를 올린 경력이 있다. 특히 한국 시절에는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하여 사실상 K리그를 중단하고 선수들을 수시로 소집하여 대표팀을 클럽팀처럼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히딩크 감독 이후 그만큼의 권한과 지원을 누린 한국 대표팀 감독은 전무하다.

재정적인 지원면에서는 중국이 부족할 것이 없겠지만 히딩크 감독이 원하는 만큼의 체계적인 대표팀 운영 시스템과 선수층을 갖춰줄 수 있느냐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 현지 언론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경력은 인정하지만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올림픽팀의 경쟁력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칠순을 넘긴 고령의 나이와 최근의 현장 공백기도 약점으로 꼽힌다.

히딩크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중국행, 한국과 선의의 경쟁 펼치길

중국은 대표팀의 부진과 함께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으로도 악명이 높다. 보비 휴튼, 알렝 페랭, 아리에 한,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등 여러 외국인 감독들이 거쳐갔지만 중국에서 이렇다하게 성공했다고 할 만한 인물은 사실상 전무하다. 월드컵 우승경험을 비롯하여 중국의 역대 외국인 감독 중 최고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리피 감독조차도 최근 계속되는 A대표팀의 부진 속에 지위가 위태롭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선수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중국 선수들의 특성 때문에 어떤 유능한 감독도 처음에는 개혁을 시도하다가 끝내 '중국화'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히딩크 감독 입장에서는 2002년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을 때와 어쩌면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축구는 어차피 아시아무대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약팀이었고 히딩크 감독이 설사 실패한다고 해서 경력에 큰 오점이 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2002년에는 아직 50대였던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의 성공을 바탕으로 유럽무대에 복귀하겠다는 계산이 있었지만 현재는 어차피 멀지 않은 시기에 은퇴를 앞둔 상황이다. 히딩크 감독이 만일 유럽 현장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굳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중국행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9일(한국 시각) 오전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7-1로 완패한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스콜라리 감독이 실망해 머리를 감싸고 있는 오스카를 위로하고 있다.

지난 2014년 7월 9일(한국 시각) 오전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7-1로 완패한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스콜라리 감독이 실망해 머리를 감싸고 있는 오스카를 위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결국 중국행의 가장 큰 매력은 엄청난 몸값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리피나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루이스 스콜라리 같이 전성기가 지난 세계적인 명장들이 굳이 축구변방의 아시아를 노크한다면 가장 흔한 이유이기도 하다.

리피 감독이 중국 대표팀을 이끌고 연봉 2300만 유로(약 300억 원)를 수령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중국 21세 이하 대표팀에서 대략 연봉 150억~200억 이상을 받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최소한 올림픽 본선진출만 이뤄내도 히딩크 감독은 파격적인 보상을 받게 되며 본인의 커리어에도 영예로운 이력이 하나 더 추가된다. 히딩크 감독 입장에서는 설사 돈을 보고 중국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해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인 셈이다.

히딩크 감독이 중국행을 선택한 것을 부러워하거나 혹은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한국축구는 히딩크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잡았다. 히딩크 감독은 이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축구가 넘어야 할 과거의 유산이자 선의의 경쟁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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