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뤼미에르(Auguste Lumière),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ère).

프랑스어로 '빛'을 의미하는 집안의 두 형제가 1895년 세계 최초의 영화 촬영 겸 영사기인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를 만들면서 영화는 비로소 세상에 태어났다. 그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가 탄생하고, 기억되고, 잊히며 우리 마음속에 들고났던가.

'시네마 아나토미(Cinema Anatomy)'는 영화사에서 '고전(Classic)'으로 등극한 작품 중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해부해 실제 상황과 비교하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 한다. 그 첫 번째 영화는 <아귀레: 신의 분노>다. - 기자 말

 
 <아귀레: 신의 분노>를 상징하는 명장면. 두 명의 광기어린 표정이 압권이다.

<아귀레: 신의 분노>를 상징하는 명장면. 두 명의 광기어린 표정이 압권이다. ⓒ 백두대간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Der Zorn Gottes)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주연 클라우스 킨스키(Klaus Kinski) 개봉 1972년 언어 독일어


욕망이 부른 밀림 속 지옥도

황금. 그 번쩍이는 화려함 앞에 인간은 이성이 마비되곤 했다. 특히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황금의 나라 지팡구를 언급한 이래, 유럽인은 자기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황금으로 넘치는 부유한 장소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믿었던 세상의 끝(아메라카 대륙)에서 원주민과 조우한 이래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와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금과 은을 수확했다.

그후 모든 유럽인은 새로운 황금에 대한 탐욕에 젖어 제2의 코르테스, 피사로가 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뒤지고 다녔다. 엘도라도(El Dorado). 스페인 어로 '황금 인간' 혹은 '황금 도시'를 일컫는 이 단어는 300여 년을 넘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생 역전의 정수이자 탐욕의 말로를 이중적으로 보여준다. 숨겨진 엘도라도를 찾기 위한 페르난도 피사로의 탐험대가 안데스산맥을 넘는 장면을 시작으로 <아귀레: 신의 분노>는 95분간 참혹한 여정을 떠난다.

페르난도 피사로 장군은 안데스산맥을 넘어 아마존 강기슭으로 접근한다. 아마존 밀림 어딘가 있다는 전설의 황금 도시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서다. 험준한 산맥을 넘어 강을 따라 전진해보지만 길은 날이 갈수록 험준해지고 식량난이 겹치면서 탐사대는 더욱 지쳐간다. 피사로는 1주일 내 돌아오는 조건으로 40명의 선발대를 선발하고  뗏목을 만들어 강을 사전 조사하는 방법으로 막막한 난국을 타개하려고 한다.
 
 처절히 행군하는 영화 속 탐험대의 모습

처절히 행군하는 영화 속 탐험대의 모습 ⓒ 백두대간


우루수아를 대장으로, 아귀레를 부대장으로 하는 선발대는 거센 물살을 넘어 강가로 진입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루수아는 약속한 1주일이 가까워지자 선발대에게 귀환을 통보하지만 엘도라도에 대한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아귀레는 반란을 일으켜 우루수아를 가두고 허수아비 귀족을 황제로 내세워 엘도라도 왕국을 선포한다. 제2의 코르테즈가 되려는 야심에 사로잡힌 아귀레는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엘도라도를 찾아 계속 강 아래로 내려갈 것을 명령한다.

작은 뗏목 위의 선발대는 배고픔과 질병, 식인종의 습격 속에 연이은 희생과 절망을 겪으며 서서히 미쳐간다. 자신에게 반항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며 전진을 계속하던 아귀레는 집단 광기가 만들어낸 환상을 겪게 되고 대원들은 정체불명의 화살에 맞아 하나 둘씩 없어진다. 마침내 뗏목에 홀로 남은 아귀레는 스스로를 '신의 분노'라 지칭하며 자신이 곧 점령할 황금 왕국을 상상하며 미친다.

[ANATOMY ①] 엘도라도
 
 애니메이션 <엘도라도> 속 엘도라도의 이미지

애니메이션 <엘도라도> 속 엘도라도의 이미지 ⓒ DreamWorks Pictures


엘도라도는 '인디언이 약탈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주장도 아직 있지만, 콜롬비아 땅에 살았던 치브차 인디언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 부족은 '태양신의 땀'이라고 믿는 황금을 숭배하여 몸에 황금 장식물을 달고 다녔고 건물을 황금판으로 덮었다.

특히 족장이 새로 등극할 때면 그의 몸에 끈끈한 송진을 바른 다음 금가루로 온몸을 치장했다. 그는 황금 장식물을 가득 실은 뗏목을 타고 신이 산다는 구아타비타(Guatavita) 호수 한가운데로 이동한 후 물에 뛰어들어 금가루를 씻어내고 황금 제물을 물속으로 던진다는 이야기다.

피사로가 촉발한 광적인 탐험이 실패로 돌아간 후, 300여 년 동안 수많은 탐험대가 황금을 찾아 남아메리카 밀림으로 몰려들었다. 19세기 독일의 고고학자 피터의 탐험대가 콜롬비아 쿤디나마르카 고원에서 실제 구아타비타(Guatavita) 호수를 발견했다.

스페인 탐험대가 가장 먼저 얕은 호수에서 황금 세공품을 건져 올렸고, 1912년 영국의 한 회사가 15만 달러를 들여 최신 설비를 가지고 콜롬비아로 갔다. 구아타비타 호수의 물을 모두 퍼내 호수에 던졌다는 황금 제물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들이 얻은 황금은 탐험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콜롬비아 정부가 자연 보호를 이유로 호수를 봉쇄한 후 엘도라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점차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보고타 근처의 동굴에서 잉카 유물을 발견했다. 현재 '보고타 황금박물관(El Museo del Oro)'에 소장된 이 순금 유물은 국왕과 귀족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조각상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이를 둘러싸고 뗏목을 타는 모습인데 마치 전설 속 치브차의 '황금 인간' 의식을 연상시킨다. 엘도라도의 전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증거일까.
 
 구아타비타 호수의 설화를 연상시키는 황금 유물

구아타비타 호수의 설화를 연상시키는 황금 유물 ⓒ El Museo del Oro


[ANATOMY ②] 원정대

코르테스는 아즈텍에서, 피사로는 잉카로부터 엄청난 금과 은을 약탈했다. 아메리카는 끝없는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이복동생인 곤살로 피사로(Gonzalo Pizarro)도 욕망의 화신 중 하나였다.

영화에서는 1560년이라 말하지만, 실제 곤살로는 1541년 200~300여 명의 스페인 군사와 돼지 2000마리, 야마 2000마리 그리고 노예로 간주한 고산 부족 인디언 4000명을 이끌고 안데스산맥의 고산 도시, 키도를 떠났다. <아귀레: 신의 분노> 인터 타이틀에서 언급한 선교사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Gaspar de Carbajal)은 이때 군목으로 부대와 동행했다.
 
 곤살로 피사로의 출정

곤살로 피사로의 출정 ⓒ La Biblioteca Universitar


곤살로는 소문의 엘도라도에 대한 대략적인 위치조차 몰랐기 때문에 안데스 동쪽 기슭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불행하게도 안데스산맥은 아마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습기를 모두 흡수해 가파른 만큼이나 습했다. 벌레가 들끓고, 뜨겁고, 습하며, 열대 우림의 덩굴 식물이 매 순간 여정을 방해하는 곳. 타고 간 말은 금방 죽어버려 소수의 개체만 남았고 선선한 고산 지역이 익숙한 인디언은 고향보다 4000여 m가 낮은 밀림 지대에서 극도의 탈진으로 죽어갔다.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자 원정대는 조잡한 보트를 만들어 아마존 상류의 지류인 나포강 변을 따라 강행군을 했다. 원정대의 식량이 바닥이 난 후, 이 정복자들은 그때까지 살아있던 돼지, 개, 심지어 뱀과 뿌리 식물까지 먹으며 버텼지만 사람들은 계속 병으로 죽었다.

곤살로의 사촌인 원정대의 부사령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Francisco de Orellana)는 나포강 아래에 있다는 부유한 나라에 대한 소문을 토대로 원정대의 보트를 이용하여 보급품을 얻으러 가는 일에 자원했고 오레야나는 1541년 12월 26일 59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출발했다.

아마 <아귀레: 신의 분노>의 선발대는 오레야나의 이야기를 각색한 듯싶다. 실제 카르바할이 속해있던 오레야나 일행은 곤살로에게 돌아가지 않고 단독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일대를 방황하며 계속 길을 찾아 헤맸다. 결과적으로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는 아마존 지역을 답사한 최초의 유럽인이자 위대한 탐험가로 후세에 기록되었다. 무척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기념우표 속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초상

기념우표 속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초상 ⓒ Correos de Espana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아마존 탐사 루트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아마존 탐사 루트 ⓒ Wikipedia


* 이어지는 기사 : "이단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사제가 벌인 무차별 살육 http://omn.kr/14m3a
아귀레신의분노 아귀레 시네마아나토미 실화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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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건축, 예술, 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harry.jun.writer@gmail.com www.huffingtonpost.kr/harry-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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