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 tvN


조선시대엔 유교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체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 초기만 해도 모계적 전통이 남아 있어 결혼을 하고도 친정에 머무르며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유교적 질서가 전 사회로 확산되면서 가부장제가 여성의 삶을 옥죄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사용하던 쓰개치마와 현재 이슬람 여인들이 쓰는 '히잡'의 용도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공주조차도 결혼을 하면 시댁 문밖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래서 '규방'이란 곳이 여성들의 '세계'이자 감옥이 되었던 그 시대의 끝자락에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이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맞은 건 남자의 복색을 하고 총을 든 여인이었다. 남녀 주인공은 각자 손에 총을 든 채 지붕을 타다가 마주친다. 드라마는 그렇게 구한말 최고 명문가의 교수인 고애신의 파격적인 면모를 선보이며 시작한다.
 
그녀가 총을 든 이유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의병이었던 애신의 아비(진구 분)와 어미(김지원 분)는 '나라를 팔아먹기'로 작심한 이완익과 이완익에게 자신들을 팔아넘긴 동지의 손에 타국인 일본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동지와 애신을 구한 어미 덕에 애신은 무사히 고씨 가문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조국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 그리고 가산을 기꺼이 의병 자금으로 내놓으신 할아버지 아래에서, 애신은 풍전등화의 조국을 위해 총을 든다. 어쩌면 그녀에게 의병 활동은 '당위'였을지도 모른다.
 
고애신의 파격적인 선택... 거기 '개인' 애신은 없다
 
 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 tvN


동시에 애신은 여전히 조선 최고 명문가의 아녀자다. 스물아홉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정혼자가 있고, 지엄한 명문가의 규율에 맞춰 외출 시엔 가마를 타고 하인을 대동하며 쓰개치마를 뒤집어쓰는, 유교적 생활이 몸에 배인 여인이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고 고백한 뒤에도 할아버지가 내린 엄명을 어기지 못하고 달려가다 대문 앞에서 멈추어버리는 여인. 여전히 그녀는 조선의 양반가 규수였다.
 
양반가의 규수이자 의병의 일원으로 총을 든 여인이라니... 이 아이러니한 조합은 '개인' 애신이 아니라 유교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의병 가족으로서의 선택이었다. 즉 애신은 그 당시 조선의 여인으로서는 그 누구보다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애신 '개인'은 없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정해준 틀을 넘어서지 않으며 살았던 애신의 삶에 균열을 불러일으킨 건 '사랑'이었다. 가장 사적이고 감정적인 사건이자 총을 겨눈 자리에서 만난 자신과 같은,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유진 초이. 이방인에 대한 불안함으로 시작된 만남은 호기심과 궁금함을 넘어 어느덧 사랑으로 흘러간다.
 
그 이방인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애신이 견고하게 쌓았던 의병이자, 규방 처자로서의 '옹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이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 모두가 격동하는 구한말의 조선에서 각자 자신의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하여 어떤 입장을 선택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통해 그 자신이 했던 선택에 질문을 던져 사회적 갈등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돌이켜보면 왜 애신이 유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틈에 유진이 애신과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향해 가게 되었는지, 2018년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뜬금없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은 두 사람의 사랑을 친절하게 그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대다수 김은숙표 드라마들이 그랬듯 '사랑'이라는 당위적 전제 위에 서사를 쌓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사회적 자각을 위한 설정에 사랑을 슬쩍 끼워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를 두고 여전히 일각에선 두 주인공의 사랑에 개연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문은 바로 이런 설정으로부터 기인하는 바가 크다.
 
고씨 가문이라는 담을 잃은 애신의 고뇌
 
 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 tvN


애신은 자신이 그간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의병활동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유진과 구동매, 쿠도 히나와 만나며 깨닫는다. 그저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애신은 충격적인 질문을 받는다. 과거 노비였던, 백정이었던 이들을 통해 과연 자신이 구하려는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그것 때문에 그녀가 선택한 전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제에 대한 의문은 그녀의 선택이 가졌던 안이함을 꼬집는다. 그것을 확인한 뒤 그녀는 유진에 대한 마음으로 자신을 가뒀던 고씨 가문의 담을 넘는다. 이때 그녀가 넘는 담은, 총을 들고 넘었던 담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극복'이다. 여전히 고씨 가문의 손녀였던 그녀는 당시 양반가 여성으로서의 치욕이 될 수도 있는 정혼을 깨고 유진과의 길 위에 서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녀의 로맨틱한 결정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제 그녀에게는 큰마음을 먹어야 넘을 수 있던 담 자체가 없어졌다. 대신 그녀가 든 총은 더욱 그녀와 일체화되었다. 할아버지가 죽으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사랑은 이제 그저 지난 꿈이 되었다. 이제 납치당한 이정문(강신일 분)을 구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할 만큼.
 
드라마는 고씨 가문이라는 담을 잃은 애신의 고뇌를 생략한다. 단호하지만, 가문을 잃은 처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물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 그 부모들이 죽음으로 대신했듯 애신 역시 그러할 뿐이다. 총을 든 채 나타난 의병의 일원으로 그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
 
대신 그런 그녀를 두고 고뇌의 칼날은 남성 캐릭터들에게 향한다. 6개월 동안 연락도 없는 애신으로 인해 유진은 애가 타고, 나라의 위기에 애신이 죽을까, 쿠도 히나가 죽을까 동매는 불안하다. 김희성(변요한 분)이라 다를까. 그래서 남은 이야기에선 이미 선택이 끝난 그녀를 향해 그들이 달려갈 것이다. 여태까지 자신들을 보호해줬던 '담'을 버리고, 이제 '담'조차 없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든 규방 처자'라는 캐릭터는 결국 존재론적 선택을 향해 달려갈 그들을 위한 가장 매력적인 배경이 된다. 결국 애신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온 '타인' 세 남자에게 닥친 조국의 운명, 그 상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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