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최근 방영분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금융 침략이 다뤄졌다. 일본이 자국 화폐인 제일은행권을 유통시켜 조선의 화폐 자주권을 위협하자, 이에 맞서 조선인들이 들고일어나 저항하는 장면이었다. 고애신(김태리 분)의 할아버지인 고사홍(이호재 분)은 선비들과 함께 대궐 앞에서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됐고, 시장 상인들은 제일은행권의 유통을 거부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조선을 강점한 게 아니다. 조선 의병들과는 전쟁을 했지만, 조선 정부군과는 전쟁하지 않았다. 정부군과 전쟁을 하지 않고도 쉽게 강점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조선을 탐내는 청나라와 러시아를 연달아 격파했기에 조선과 별도의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조선 정부를 약화시켜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전에 일본이 조선을 약화시킨 방법 중 하나는 <미스터 션샤인>에 묘사된 바로 그 금융 침략이다.
 
치밀했던 일본의 금융 침략

일본의 금융 침략은 상당히 치밀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전개됐다. 1910년 국권 침탈로부터 32년 전인 1878년부터 이런 식의 침략이 진행됐다. 서양 열강이 공식적으로 조선에 발을 내디디기 4년 전부터 일본은 금융 침략을 개시했다. 김옥근 전 경상대 교수의 <한국 경제사>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국립 제일은행은 1878년에 그 지점을 설치한 다음, 이어서 원산(1880), 인천(1883), 서울(1888), 목포(1898), 군산(1903), 진남포(1903) 등 늘어나는 각 개항지에 지점 또는 출장소를 두었다."
 
제일은행이 단순히 이윤 창출만을 위해 조선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 이 은행은 조선 해관(세관)의 관세징수 업무까지도 인수했다. 조선 정부는 서양식으로 운영되는 해관 업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를 외국인들에게 위탁했다. 이 틈을 비집고 제일은행이 관세징수를 대행했던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관세 업무를 인수한 것이지만, 조선의 관세 주권을 위협하는 게 제일은행의 더 큰 목표였다.
 
그뿐 아니라 일본은 제일은행권까지 조선 개항장에 유통시켰다. 이 화폐는 일본 상인들뿐 아니라, 부근의 조선 상인들에게까지 유통 범위를 넓혀갔다. 그런 식으로 일본 금융에 대한 조선인들의 의존도를 서서히 높여갔던 것이다.
 
제일은행은 조선 정부에게 강제로 돈도 빌려주었다. 빌려 쓸 생각이 별로 없는 조선 정부를 상대로 강제로 돈을 꾸게 했던 것이다. 서양인들이 청나라 정부에 돈을 강제로 빌려준 뒤 이를 빌미로 이권을 빼앗아가는 방법을 차용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강제로 빌려주면서 담보를 설정해뒀다. 해관에서 발생하는 관세 수입이나 조선 인삼 등을 저당으로 잡아뒀다.
 
그렇게 빌려준 돈이 얼마 안 가 주권을 침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이것이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원인이 됐다. 조선인들이 나라 빚을 갚고자 국채보상운동을 벌였을 때, 일본이 얼마나 방해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금+이자'보다는 '조선'으로 되돌려 받을 생각이었다.
 
강제로 돈 꿔주고, '조선'으로 돌려받은 일본

<미스터 션샤인> 속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친일파 이완익(김의성 분)으로부터 "5만 원만 주면 조선을 넘겨드리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실제의 일본은 금융 침략을 통해 조선을 통째로 삼키는 계획을 자신들이 알아서 잘 추진하고 있었다.
 
제일은행이 벌인 일은 위에 열거한 정도가 아니다. 나중에는 조선의 국고까지 대신 관리했다. <한국 경제사>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이다.
 
"1905년 1월 한국 정부는 일제의 강요에 의하여 주식회사 일본 제일은행과 국고금 취급에 관한 전문(全文) 20조에 달하는 계약을 취급하였다.

이때부터 한국 국고금을 모두 일본 제일은행에 위탁하고 그 밖에 한국 정부는 통화 지금(地金, 황금)·은 및 유가증권도 제일은행에 위탁하였다. 한국 정부는 위탁한 국고예금에 대해 한 푼의 이자도 받지 못하였다."
 
1905년 11월에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 이전에, 이미 일본은 조선의 재정주권·금융주권을 강탈해놓았다. 그래서 조선 정부군과의 전쟁도 없이 조선을 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민중의 저항이 강력했기 때문에 의병들과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일본의 금융 침략을 설명할 때는 제일은행을 제1은행으로 표기하는 게 자연스럽다. 의미상으로는 차이가 없지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제일은행뿐 아니라 제18은행과 제58은행도 금융 침략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일본 제18은행은 1889년 부산·원산에 지점을 설치하는 것으로써, 일본은 제58은행은 1892년 인천에 지점을 설치하는 것으로써 금융 침략 대열에 가세했다.
 
제일은행은 몰라도 제십팔은행과 제오십팔은행까지 아라비아 숫자 없이 표기하면 상당히 어색하다. 그래서 제18은행·제58은행이 가세한 일본의 금융 침략을 설명할 때만큼은, 제일은행을 제1은행으로 표기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은밀한 '금' 반출, 이유 몰랐던 조선
 
 인천시 중구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제18은행 지점. 왼쪽은 안내문, 오른쪽은 청사.

인천시 중구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제18은행 지점. 왼쪽은 안내문, 오른쪽은 청사.ⓒ 김종성


일본의 금융 침략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진행됐다. 아주 은밀한 방식이었다. 조선에 들어가는 일본인들을 시켜 금을 은밀히 반출해 가는 일이었다.
 
1882년부터 1894년까지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받았다. 일본의 금융 침략이 전개되는 동안에 한편으로는 청나라의 정치 간섭을 받았다. 이 때문에 조선 해관 기록이 청나라 해관 기록에 부록으로 붙게 됐다. 오늘날 <중국 구(舊)해관 사료>란 이름으로 편집된 청나라 해관 기록에 조선 편이 붙어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구해관 사료> 조선 편에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대량의 금을 반출하고 있다"는 경고의 글이 실려 있다. 조선을 다녀가는 일본인들이 이상하리만치 많은 금을 몰래 갖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그들이 금을 몰래 갖고 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 해결하지 못한 의문은 1897년에 풀리게 됐다. 이 해에 일본은 금본위제를 선언했다. 전통적으로 은본위제였던 동아시아 금융질서에서 이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일본이 조선에서 금을 몰래 빼간 것은 금본위제에 대비해 금 보유량을 확보해두기 위해서였다. 조선에서 금을 빼내 자국의 금본위제에 대비하는 한편, 조선의 금 보유량을 떨어트려 조선이 금본위제 시대에 낙오되도록 하려는 이중 목적을 가진 행동이었다.
 
이렇게 일본의 금융 침략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치밀하고 과학적으로 진행됐다. 그런데도 조선 정부는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일본의 행동에 담긴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결과였다.
 
<미스터 션샤인>의 최근 방영분에서는 1903년 시점에 이완익의 딸인 이양화(김민정 분)가 펜싱 실력으로 일본 군인들을 제압하는 장면이 나왔다. 당시 일본은 검 끝보다도 더 예리한 금융의 칼날로 조선 정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향해 그들은 시곗바늘을 급히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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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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