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업그레이드> 메인포스터 영화 <업그레이드> 메인포스터

▲ 영화 <업그레이드> 메인포스터영화 <업그레이드> 메인포스터ⓒ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자율운전은 물론 자동차와 대화까지 가능한 시대에 굳이 보닛을 직접 열어 기름때를 묻혀가며 수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수리를 맡기는 사람은 이제 단 한 사람뿐이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의 이름은 그레이(로건 마샬 그린 역).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다.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던 인공지능의 오류와 무장한 괴한들의 습격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 이로 인해 아내 아샤(멜라니 밸레조 역)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그레이는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에론(해리슨 길벗슨 역)이 접근한다. 아날로그적인 수리를 지향하던 그에게 차를 맡겨 온 마지막 고객이다. 최고의 IT 기업을 운영 중인 그는 그레이에게 '스템'이라는 장치를 장착해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며 은밀한 제안을 건네고, 그레이는 세상을 떠난 아샤의 복수를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영화 <업그레이드>는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삶의 모든 의미를 상실한 남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복수를 해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액션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스토리의 뼈대가 얕지는 않다.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요소들을 매몰시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타인 혹은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는 일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영화를 잠시 벗어나 다시 들여다보자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과 방향성이 아닌 결과만을 추종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꺼내 은유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02.
인간의 유한성을 기계의 힘을 통해 극복하는 소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니, 꼭 기계가 아니더라도 많은 종류의 히어로물을 통해 다른 존재, 다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들은 존재해 왔다. 기계물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한정하자면, <로보캅> 시리즈의 머피가 그랬고, <리얼스틸>(2011)의 찰리 켄튼이 그랬다. 물론, 당시의 모든 기계물들이 자유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 활용의 범주에서 아름답게 이용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로보캅>의 경우에도 마지막에 기계물의 대사를 빌어 그 존재가 머피라는 것이 드러나니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 아이언맨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 속의 기계물인 '스템'이라는 장치를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른 기계물들과 달리 덩치가 작은, '칩'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의지를 갖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레이의 몸에 '스템'이라는 장치가 삽입되면서 그레이는 전신 마비 상태였던 자신의 몸을 자의에 의해 움직일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타의의 의해 움직일 수도 있게 된다. '스템'이라는 장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움직일 수 없던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라면, 한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통제를 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는 셈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그레이의 명령에 스템이 최대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자신이 인공지능을 갖고는 있지만 의지를 갖고 있지는 못하는 것처럼. 그것의 흑막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다.

03.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는 설정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뼈대가 된다. 두 자아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제한된 신체를 두고 끊임없는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이 영화 속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애초에 적은 예산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제작된 이 작품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처럼 하나의 설정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특히, 복수를 하기는 해야겠으나 직접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해 본적이 없는 그레이와 그런 그를 대신해 집행자의 역할을 이어나가는 '스템'의 상반된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의외로 웃음이 날 정도로 흥미롭다. 펍의 화장실 액션 장면에서 '스템'이 칼끝으로 상대의 얼굴을 난도질하는 장면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레이의 모습과 같은 부분이다.

'스템'이 자신의 목적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레이에게 칩을 심어준 에론이 '스템'의 위치를 감시, 추적하고 있으며, '스템'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레이가 '스템'에 대한 에론의 접근을 막을 때까지 그레이의 본체, 하나의 몸을 제한할 수 있는 존재가 셋이 된다는 것. 그러니까,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그레이와 '스템'이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에론에 일시적으로 함께 저항한다는 뜻이다. 에론에 의해 '스템'의 활동이 제한되면 그레이 역시 원래의 모습, 전신마비 환자가 되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 전까지 '스템'의 위에 존재하던 그레이의 위치는 이 장면부터 격하되어 동등한 위치로 내려온다. '우리'가 함께 막아야 한다는 '스템'의 말에는 상당히 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04.
사고를 당하기 전의 그레이가 아날로그적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이 고도화된 사회에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가는 행위가 표현되는 것은 다른 디지털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과 반대의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첫째, 어떤 상황 하에서는 개인의 삶의 양식 자체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고 이전에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가던 그레이가 사고 이후에는 최첨단이 집약된 기술, 아직 세상 사람들도 보지 못한 높은 수준의 장치인 '스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이에 대한 표현 방법인 셈. 그레이의 쪽에서 보면 이보다 더 아이러니할 수가 없다. 어떤 양식의 삶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삶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에 대한 물음도 이 지점에서 동반된다.

두 번째는 하나의 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이 효율적인 부분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영화 속 시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지털적인 삶과 아날로그적인 삶을 병행하며 살아간다. 자동차와 대화를 더 많이 한다며 그레이가 핀잔을 주는 아내 아샤도 사랑을 나눌 때는 직접 행동하지 않나. – 여기에서 가상 세계에만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레이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이 그레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 물음에서는 중요하다. 그의 곁을 맴도는 코르테즈 형사(베티 가브리엘)도 모든 사건을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고 있고, 디지털로 작동되는 기기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아날로그적 기기들을 이용하는 인물이다. 도시 곳곳을 떠다니는 드론이나 여러 디지털 기술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기술에도 분명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방식 덕분에 의뭉스럽던 그레이에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또 다른 자아와도 같은 디지털적 존재에 당하고 만다. 과거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고수했지만 변화한 환경에 의해 디지털적인 삶을 받아들인 이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의 대결. 두 사람의 추격 장면은 단순히 액션을 위한 것이 아니다.

05.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스템'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던 삶의 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뚜렷한 계획이나 어떠한 방향성도 없이 목적을 달성한 그레이. 하지만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 보는 방식의 연출은 그래서 더 쾌감을 남긴다. 이 작품의 타이틀처럼 그가 업그레이드가 된 존재로 목적을 달성한 것과 반대로 그 결과까지도 그렇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의 처음에 이야기했던 그 대가를 그는 지독한 방법으로 이제 치르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레이가 '스템'의 힘을 빌려 아내 아샤를 죽인 괴한들에게 복수를 가한 행위 역시 괴한들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는 지점에서만 용납이 가능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또 주도적으로 움직여온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스템'의 잔혹함에 얼굴을 돌리면서도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스템'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것은 그레이 자신이었으니까.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 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영화 <업그레이드> 스틸컷ⓒ 유니버설 픽처스 UPI 코리아


06.
블룸하우스는 현재 가장 뜨거운 제작사 중 하나다.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를 시작으로 <23 아이덴티티>, <인시디어스>, <겟아웃> 등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 처음에는 이 방식이 상대적으로 영세할 수 밖에 없는 제작사의 창립자이자 CEO인 제이슨 블룸의 미봉책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하나의 전략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것들을 쫓을 수 밖에 없다던 그의 말이 회사의 슬로건과도 같아 보이는 이유다.

이 작품에 이은 블룸하우스의 다음 선택은 <쏘우>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 아직 누가 연출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그가 제작에 참여하는 작품이 블룸하우스의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M3GAN>이라고 알려진 그와의 협업은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이야기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어린 아이를 자식처럼 느끼게 되면서 일어나게 되는 일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작품 <업그레이드>에서도 보여줬듯이, 깊게 파고들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면에 결코 놓치지 않는 인간 본연의 모습과 철학에 대한 표현들은 블룸하우스의 작품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대외적으로 호러 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관객들을 단순히 놀라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 <업그레이드>는 충분히 뛰어난 작품이며, 블룸하우스의 다음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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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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