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9월 7일 고양 종합 운동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A매치 친선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데뷔전을 기분좋게 장식했다.

코스타리카는 비록 최상의 전력은 아니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에 이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본선에 오른 북중미의 강팀이다. 벤투호는 이날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하면서 결과와 내용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코스타리카전 완승을 이끌어낸 '벤투 효과'의 원동력은 첫 번째로 역시 감독교체 그 자체로 인한 분위기 전환을 꼽을수 있다. 벤투호 1기는 사실 선수 구성을 놓고보면 기존 러시아월드컵 멤버들과 A대표팀 경력자들이 여전히 주축을 이루며 큰 변화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새로운 외국인 감독이 부임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구도가 부활했고, 새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한 선수들의 긴장감과 집중력이 높아진 것이 그라운드에서도 나타났다고 볼수 있다.

A대표팀은 비록 지난 러시아월드컵에서 16강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사상 최초로 강호 독일을 제압하는 '카잔의 기적'을 연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지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호가 금메달을 따내며 손흥민 등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주축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얻는 수혜도 누렸다. 손흥민과 아시안게임 멤버들이 합류한 벤투호 1기에서도 최근 상승세의 자신감이 그대로 이어졌다.

벤투호의 첫 주장으로 선임된 에이스 손흥민은 이날 익숙한 측면 공격수 자리에서 출전하여 부지런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전반 페널티킥을 실축한 장면은 아쉬웠지만 이재성이 바로 골로 마무리하며 부담을 덜었다. 아시안게임에서 평소와 달리 이타적인 플레이에 주력하며 눈길을 끌었던 손흥민은 이날도 상대의 집중견제를 이용하여 동료들에게 찬스를 열어주거나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등 팀플레이에 점점 눈을 떠가는 모습이었다.

대표팀에서 명예회복을 꿈꾸는 '올드보이'들의 분발도 팀의 활력소가 됐다. 러시아월드컵 명단에서 탈락했던 지동원과 남태희는 벤투호 1기에서 선발 멤버로 당당히 복귀하여 첫 경기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원톱으로 출전한 지동원은 비록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장점인 연계능력을 활용하여 손흥민-남태희-이재성 등 2선 공격수들과 유기적인 플레이로 공간을 창출하는 움직임이 돋보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선 남태희는 후반 33분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개인기로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강슛을 날려 그림같은 추가골을 뽑아냈다. 득점외에도 폭넓은 활동량으로 이재성과 함께 대표팀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앞으로 황의조-이승우-황희찬 등 아시안게임 멤버들과 대표팀 원톱-2선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을 예고한 장면이다.

러시아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팬들에게 미운 털이 박혔던 장현수는 벤투호에서 수비와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활용도를 점검받았다. 장현수는 이날 중앙수비수로 선발출전하여 월드컵 콤비 김영권과 다시 호흡을 맞췄고, 기성용이 교체되고 김민재가 투입된 후반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동하여 활약했다. 월드컵에 비하면 큰 실수는 없었고 팀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무난한 결과를 받았다.

다만 장현수 개인의 활약만 놓고보면 여러 포지션에서 활용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어느 자리에서도 확실하게 강점을 보이지는 못했다는게 아쉬움이다. 수비수로서는 장점으로 꼽히는 빌드업이나 수비조율에서 특색을 보여주지못했고, 오히려 주포지션이 아닌 미드필더에서 더 안정감있는 수비를 보였으나 기성용이 보여주던 예리한 침투패스나 공격방향 전환을 이끌어내지못하여 후반 대표팀의 공격이 단조로워지는 약점을 노출했다. 앞으로 장현수의 활용도를 높고 벤투 감독이 고민이 깊어질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 첫 경기지만 벤투 감독의 색깔이 조금씩 드러나는 부분도 보였다. 벤투 감독은 첫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을 들고나왔다. 선수구성이나 전술은 이전 대표팀에서도 익숙했던 장면이지만 차이는 볼점유율의 효율성과 속도감이었다.

벤투 감독은 볼을 점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능동적인 축구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한바 있다. 김판곤 위원장이 벤투 감독을 선임한 이유이기도 하다. 벤투호는 경기 초반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코스타리카를 괴롭혔다. 공을 잡으면 측면에서의 빠른 역습이나 기성용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과감한 전진패스로 상대 문전을 위협했다.

조광래나 슈틸리케 감독 시절 한국축구는 유럽의 트렌드를 쫓아 점유율 축구로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현실은 수비가 두터운 팀을 만났을 때 제대로 공략하지못하고 아군 진영에서 의미없이 공만 돌리는 '실속없는 볼점유율'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 시절에도 무의미한 백패스를 싫어하고 전방에서 찬스를 만들어내기위한 적극적인 볼점유를 강조했으며, 측면 풀백을 공격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이날도 좌우 풀백으로 나선 이용과 홍철이 과감하게 공격에 가담하며 사실상 윙어에 가깝게 활약했다.

뛰어난 패스능력에도 경기템포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받았던 기성용은 이날 후방에서 속도감있게 찔러주는 롱패스로 여러 차례 좋은 찬스를 만들어내며 아직은 대표팀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줬다. 결국 '똑같은 선수들이라도 감독의 전술과 철학에 따라 경기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수 있는지'를 보여준게 이날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벤투호가 이날 기록한 2골은 모두 역습 과정에서 만들어낸 찬스를 살려서 이루어졌다. 빠르고 역동적인 한국 특유의 축구 색깔을 다시 재건할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는데 의미가 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데뷔전에서 첫 승과 앞으로의 희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내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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