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새 축구대표팀의 첫 주장으로 손흥민(토트넘)이 낙점됐다. 손흥민은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한 7일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공격과 수비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손흥민은 지난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독일전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나선 바 있다. 당시 주장이었던 기성용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부주장이었던 장현수는 스웨덴-멕시코전 부진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라 신태용 감독은 고심 끝에 손흥민에게 임시 주장을 맡겼다. 손흥민은 독일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펼치며 한국이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로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을 완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김학범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출전했던 손흥민에게 주장 완장까지 맡겼다.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팀의 맏형으로 올라선 손흥민은 이타적인 플레이와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으로 김학범호의 금메달에 기여하며 한층 성숙해졌다는 호평을 받았다. 손흥민의 축구 커리어를 통틀어 첫 우승이기도 했다.

첫 우승 경험한 손흥민, 주장 완장 찬 경기서 '무패 행진'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현재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학범호가 아시안게임에서 유일하게 패했던 말레이시아전은 손흥민이 벤치에서 출격하며 당시 경기 주장은 김민재가 맡았다. 선발로 나섰던 조별리그 키르키스스탄전부터 결승 일본전까지 아시안게임 5경기, A대표팀에서 월드컵 독일전과, 벤투호의 데뷔전이었던 코스타리카와 평가전까지 포함하면 무려 7전 전승이다. 손흥민 혼자만의 힘이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표팀에 있어서 기분 좋은 징크스임에는 분명하다.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는 종전 대표팀 주장이던 기성용이 선발로 복귀했지만 벤투 감독은 이번에도 손흥민에게 주장을 맡겼다. 내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 가능성이 거론되는 기성용은 주장직의 부담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자신의 플레이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이 직접 선수들과의 대화와, 팀의 세대교체 등 장기적인 미래를 두루 고려하여 내린 선택으로 알려졌다.
 
손흥민, 좋았어!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황의조의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 손흥민, 좋았어!지난 8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황의조의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은 A대표팀에서도 헌신적인 움직임과 경기 내내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장의 책임감을 드러냈다. 물론 손흥민이 앞으로도 꾸준히 주장 완장을 차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 팀내 비중이나 상징성을 고려할 때, 내년 아시안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목표로 하는 벤투호의 주장 1순위가 손흥민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나이순'이던 국가대표팀 주장, 젊지만 팀 핵심인 손흥민이...

역대 대표팀은 그동안 선후배 서열이 확실한 국내 축구계의 특성을 고려하여 베테랑이 주장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의 홍명보을 비롯하여 1994 미국 월드컵의 최인영,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최영일, 2006 독일 월드컵의 이운재 등은 모두 팀 내에서 최고참급이었다.

서열 위주의 주장 선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박지성부터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팀의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기력이 하락한 전임 주장 김남일 대신 당시 27세에 불과하던 박지성을 새 주장으로 선임했다. 이영표나 이운재 등 다른 베테랑도 있었지만 당시 세계적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며 실력과 명성 면에서 후배들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리더로 박지성만한 선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카리스마형' 리더들이 주장의 전형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조용한 이미지의 박지성이 주장에 어울릴까 하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지만, 박지성은 이후 허정무호의 A매치 27경기 연속 무패행진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의 핵심선수로 활약하며 리더십을 증명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며 직접 솔선수범하는 박지성의 리더십은 현대적인 주장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박지성 이후로도 2014 브라질월드컵의 구자철, 2018 러시아월드컵의 기성용 모두 20대 중반의 나이에 A대표팀에서 주장직을 맡으며 서열보다 '실력 위주'의 주장 선임이라는 트렌드를 이어오고 있다. 어느덧 26세가 된 손흥민도 나이나 명성을 감안할 때 주장직을 맡기기에 큰 문제는 없다. 세계축구계에서도 손흥민의 팀동료인 해리 케인(잉글랜드)이나 네이마르(브라질) 등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찌감치 주장직을 맡은 경우는 드물지 않다.

국가대표팀 주장은 한국축구의 간판이자 중심으로서 남다른 상징성을 지닌다. 박지성이나 홍명보 같은 주장들은 은퇴한 지금도 캡틴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기성용은 초창기만 하더라도 잦은 사건사고로 '사고뭉치' 이미지가 강했지만 주장을 맡으면서 언행이 한결 성숙해지고 책임감이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흥민이 앞으로도 대표팀을 이끌어가야 하는 부동의 핵심 선수임을 감안한다면 이번 주장 선임을 통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손흥민 '혹사 논란'에 주장 역할 맡기는 데 찬반 논란도...

하지만 한편으로 '굳이 꼭 손흥민을 주장으로 삼아야 했을까' 하고 걱정하는 주장도 나온다. 손흥민의 실력이나 자세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대표팀 주장은 그 명예만큼이나 책임감도 무겁다. 국가의 부름에 항상 헌신하던 박지성은 2011년 만 30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표팀에서 박지성을 좀 더 배려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했더라면 그를 A매치에서 좀 더 오래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교롭게도 후임주장이었던 기성용이나 구자철도 만 30세가 되기 전에 대표팀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난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아스널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첫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 5일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아스널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첫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박지성이나 기성용, 손흥민 같은 유럽파 선수들은 A매치 때마다 장거리 이동에 대한 체력적 부담이 크다. 팀의 핵심선수로서 매경기마다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 하물며 주장이라면 큰 비중이 없는 평가전이나 약팀과의 경기라고 해서 쉽게 빠지기도 힘들다. 동료들과의 관계나 팀 내 분위기 등 리더로서 신경써야할 것도 많아진다. 과거처럼 선배의 서열이나 권위를 내세워 팀을 일방적으로 장악하던 시절도 아니다 보니 '젊은 주장'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 클 수도 있다.

심지어 손흥민은 최근 몇 년간 비시즌에도 소속팀은 물론 각급 대표팀 경기와 각종 국제대회를 쉴 틈 없이 넘나들며 '혹사' 논란에 시달렸다. 손흥민에게 일정 기간이라도 휴식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벤투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며 팀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서 핵심선수인 손흥민을 제외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손흥민도 철인은 아니다.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이미 너무 많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는 손흥민에게 '주장의 무게'까지 안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분 좋게 훈련하자 6일 오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 기성용 등 선수들이 코스타리카와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2018.9.6

▲ 기분 좋게 훈련하자지난 6일 오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 기성용 등 선수들이 코스타리카와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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