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 포스터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 포스터 ⓒ 하준사


요시코(키시이 유키노)는 한낮에 자기 방에서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다가 할아버지의 부고 전화를 받는다.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온 가족들이 하나씩 모이지만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 가족 간의 교류는 오래전 일이다. 모처럼 만난 요시코 아버지 세이지(미츠이시 켄)와 큰아버지 아키오(이와마츠 료)는 말싸움을 한다. 요시코의 사촌동생들은 사춘기가 온 것처럼 서로를 헐뜯는다. 장례식이 처음인 요시코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한다. '콩가루' 집안을 보면 그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웃음과 답답함이 교차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영화 메시지가 가볍지만은 않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던지는 질문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의 한 장면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의 한 장면 ⓒ 하준사


13일 개봉하는 일본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모리가키 유키히로 감독)에 등장하는 가족은 실제로는 반(反)가족에 가깝다. 일단 서로 무관심하다. 자식의 나이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키오, 아버지의 시신을 보자마자 장례절차부터 고민하는 세이지. 이들이 서로에게 짜증과 분노를 내는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가족 간의 냉소는 현대 가족의 실제 단면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런 가족을 전면으로 내세웠을까. 

요시코가 할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과 연결된다. 가족의 죽음을 처음 마주친 요시코는 사후세계는 어떤 곳인지, 길거리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인도는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없는 가족들 틈 속에서 요시코의 고민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더 큰 고민은 따로 있다. 영화의 한 축인 '섹스'다. 

요시코는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섹스를 하고 있었던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섹스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죽음을 앞뒀을 때 자신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다. 섹스가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시코는 그런 자신이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인위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시코의 이런 행동은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가 올바른 것인지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이다. 

죽음, 결국은 인류 보편적인 일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의 한 장면

영화 <불량가족, 행복의 맛>의 한 장면 ⓒ 하준사


영화는 죽음의 보편성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준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커다란 일이긴 하지만 인간이면 겪는 당연한 일이다. 슬퍼도 결국 배는 고픈 것처럼. 요시코는 이렇게 점차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섹스로 인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낸다. 이런 마음가짐은 현재 삶의 동력으로 이어지고 요시코의 내면은 한 단계 도약한다. 

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섹스 장면에서 요시코가 바라보는 한 그림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들개 두 마리가 인간처럼 보이는 형상을 잡아먹는 모습이다. 일본의 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가 인도 여행 중 찍어 자신의 저서 <황천의 길>에 실은 사진이다. "인간은 개에게 잡아먹힐 만큼 자유롭다"라는 문구가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이는 인간도 하나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영화의 메시지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요시코를 연기한 키시이 유키노는 강렬한 연기를 펼친 것은 아니지만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답답하고 적당한 유머스러함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2009년 데뷔해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여기에 우스꽝스러운 가족의 모습을 감쪽같이 연기한 이와마츠 료, 미호 준, 미츠이시 켄 등 여러 작품에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 베테랑 배우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CM(광고 방송)으로 이름을 날린 모리가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영화 원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おじいちゃん、死んじゃったって)>다. 이는 영화 속 요시코의 대사이기도 하다.
불량가족, 행복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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