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집 뒷마당 겨울에는 해가 떠도 금방 졌기 때문에 눈이 잘 녹지 않았다

▲ 스코틀랜드 집 뒷마당겨울에는 해가 떠도 금방 졌기 때문에 눈이 잘 녹지 않았다ⓒ 이희찬


분명히 누구나 영화관에 얽힌 각자의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관을 떠올리면 약 7~8년 전, 지구 반대편 영국 스코틀랜드의 영화관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기억난다.

불편하고 어려운 영국 생활

한국처럼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한 사회에서 살다가 스코틀랜드에서 생존하는 건 여간 불편하고 어려운 게 아니었다. 느린 인터넷이나 수리공을 부르면 일주일이 걸리는 것은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늘 영어와 날씨가 문제였다. 물론 지금은 원어민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농담을 건낼 수 있지만 8년 전 영어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한 초등학생에게 영어는 족쇄 같은 존재였다.

날씨도 문제였다. 안 그래도 '안개의 나라', '비가 많이 오는 나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날씨가 특이하기로 유명한 영국이지만,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날씨는 더욱 역동적이었다. 나는 영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우박을 봤고, 365일 중 180일 동안 비가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영국인들조차 날씨에 적응이 안 되는지, 인사말로 날씨 욕을 하는 것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특히 겨울 날씨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겨울이 되면 밤이 길어져 아침 9시가 되어야 해가 뜨고, 오후 3시가 되면 해가 졌다. 게다가 비바람까지 불어, 겨울만 되면 암흑과 비바람을 뚫으며 비장하게(?) 등하교를 해야 했다. 비가 바람에 실려서 내리기 때문에 우산을 써도 머리만 빼고 온몸이 흠뻑 젖을뿐더러, 우산이 수시로 뒤집혀 비싼 우산만 버리기 때문에 방수 재킷을 입고 다녔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에 영국은 겨울에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고, 자살률도 급증한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겨울에 기념일을 화려하게 기리거나 외부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우리 가족도 한국에서는 챙기지 않았던 크리스마스를 칠면조 구이로 기념하고, 교회 예배까지 가곤 했다. 그리고 마치 의식처럼, 한 달에 최소 두 번은 영화관을 갔다. 

따뜻한 영화관
 
 영국 런던의 영화관

영국 런던의 영화관ⓒ Pixabay


근처에 집과 숲밖에 없고, 늘 밤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외부활동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밖에 없었다. 춥고 어두운 밖과 달리 영화관은 따뜻하고, 재밌었으며,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화관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렜다. 패턴은 늘 똑같았다. 정오쯤 영화관에 도착해서 밥을 먹은 후 영화를 봤다. 특별한 날에는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관 옆에 위치한 쇼핑몰에서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나니아 연대기> <워 호스> 등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영화를 봤었다. 특히 소설이 원작인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이건 영화를 재밌게 본 후 책도 읽게 하려는 어머니의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2011년에 개봉한 <워 호스>(War Horse)다. 1차대전에 군마로 차출된 말과 그 말을 찾기 위하여 참전한 주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워 호스>를 본 이후 나는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영화를 본 후 간략하게라도 후기를 쓰게 되었다. 여러모로 좋은 관심사와 습관을 지니게 된 셈이다.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다. 영화관 내부에 작은 일식당이 있었는데, 주인이 자주 오는 우리 가족을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자신을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한 일본인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이 올 때마다 서비스로 오렌지 주스를 주셨다. 스코틀랜드에는 외국인, 특히 아시아인이 소수이기 때문에 아시아인 사이에 어느 정도 연대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에게는 작은 선행이었겠지만 먼 타지에서 고생하던 우리 가족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영국 영화관의 추억

한국으로 돌아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화관에 가면 가끔 영국 생각이 난다. 안타깝지만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국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약간의 고생이 동반했지만,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영국에서의 겨울나기를 생각한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봉오리를 맺는 수선화처럼, 내가 지금 겪는 시련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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