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상류사회> 메인포스터

영화 <상류사회> 메인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01.
하나의 작품에서 그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한가지 요소를 배제하고 난 뒤에야 관객들이 더 괜찮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배제되는 요소는 어떤 이유로 그 작품에 굳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의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을 감독 스스로가 그 까닭을 몰라서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보다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그 배제되었어야 하는 요소에 담겨있기 때문이거나 그 부분을 떼어내면 작품의 방향 자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작품 전체의 만듦새를 생각하기보다는 그 요소의 투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메시지나 구조적 역학을 통한 특정 장면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문제가 될 때는 그 삭제되었어야 할 요소가 감독이 의도한 작품의 목적에 위치해 있을 때 발생한다. 이 작품 <상류사회>처럼.

영화 <상류사회>는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인물, 공간, 지위를 향해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중심이 되는 것은 수연(수애 역)과 태준(박해일 역) 부부. 두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정한 방식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 작품의 타이틀인 '상류사회'라는 단어가 대한민국 최고 상류층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에 두 사람의 행동이 두드러지지만, 이 단어를 단순히 자신의 위치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의미하는 단어로 확장시킨다면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그에 해당된다.

태준을 꾀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비서 은지(김규선 역)나 애초에 모자란 것 없이 자랐지만 수연을 제치고 미술관의 관장(지위) 자리를 차지하려는 현아(한주영 역)도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02.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

▲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영화 <상류사회>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작품 <상류사회>에 대해 긍정적인 표현을 내놓기 힘들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연과 태준, 두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이미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권력의 최정점으로의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부부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의 부관장으로 재개관을 앞두고 점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수연이나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는 스타 교수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태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지만, 그 욕망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이 자신의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는 상류사회에 계속해서 짓밟히는 이유다. 가지고 있는 욕망을 꺼내 흔드는 것과 가지고 싶은 욕망을 향해 뛰어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던져 복수를 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원했던 욕망을 얻는 데는 실패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한 회장(윤제문 역)을 비롯한 상류 사회의 권력자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될까? 작품이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면, 또 현실의 많은 사례들을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진짜에 가깝다.

수연과 태준 두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이 작품에서 그나마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 모든 것을 던져도 획득할 수 없는 상류사회로부터의 거리감과 무력감과 같은 것들이 그들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도 이야기했듯,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03.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상류 사회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섹슈얼한 지점을 파고드는 고전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방만하고 오만한 행위를 하는, 권력을 가진 남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의 정사 장면은 권력층의 어두운 면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각적 자극만으로 이 문제를 그려내겠다는 것은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화적 특성에만 기댄 원초적, 아니 기만적인 행위라고까지 해석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감독이 생각하는 상류사회의 민낯은 외설적인 부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 그런 것일까.

뿐만 아니다. 감독은 표현의 자유를 볼모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작품이 공개되기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일본 배우의 캐스팅은 이 작품의 장르 자체를 호도할 수 있을 정도로 최악이다. 다른 모든 영화적 표현도 그렇겠지만, 영화가 외설이 아니라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타당한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그 장면의 표현 방식도 마찬가지다.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2017)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필요 이상의 여성 폭행 장면과도 같다. 이 영화 <상류사회>에 일본 성산업의 히로인과도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녀의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그 순간이 이미 이 작품의 본질은 바뀐다. 그녀가 등장하는 시퀀스가 이 작품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전체의 흐름에 문제가 되는지, 한 회장의 욕망을 상징하지 못하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더 분명해진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가 이 작품에서 등장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04.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일본 배우의 캐스팅은 하나의 지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의 모든 관계가 성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처음부터 감독 본인이 이 작품을 섹스, 불륜, 밀애, 욕정과 같은 단어들과 동급으로 놓지 않고서는 이런 관계들만으로 가득 찰 수 있을 리가 없다.

수연과 지호(이진욱 역)의 관계는 물론, 태준과 은지(김규선 역)도 마찬가지. 심지어 화란(라미란 역)이 한 회장의 외도, 그 증거를 잡기 위해 이용하는 방식마저도 모두 동일하다. 관계의 성립과 관계의 붕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코드로 진행되는 작품이 흥미로울 리가 있겠는가.

수연의 미술품 거래와 태준의 선거 출마에 또 다른 이익 집단을 끼워 넣으며 부패한 거래의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만 겉돌기만 한다.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배제 당했어야 할 요소 하나가 오히려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이 설정은 작품의 기획의도와도 같은 상류사회의 부정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서가 아니라, 상류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대비를 통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든다. 서로의 가장 부도덕한 지점을 목격하고도 그 치부를 묻어둔 채 앞으로 나아가는 두 집단, 한 회장과 화란 그리고 수연과 태준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어떤 차이 말이다.

한 회장과 화란이 서로의 행동을 문제삼지 않는 것이 관성 때문이라면, 수연의 태준이 서로의 행동을 용서하게 만드는 것은 회복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상류사회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곳의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메타포가 된다.

05.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

▲ 영화 <상류사회> 스틸컷영화 <상류사회>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일반인들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상류 계층에 대한 소재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 자주 활용된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그들을 붕괴시키고 극복해내는 과정에서의 대리 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사 소재는 활용이 빈번하면 할수록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성향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하위 소재가 개발되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방식은 너무 구식이다. 그리고 과하다. 아직도 관객들이 벗고 나오기만 하는 작품에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이 작품이 지금 말하고 있는 상류사회의 민낯을 그리는 쪽이 아니라, 반대로 그 곳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이 겪게 되는 무력함을 이야기하는 쪽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불필요하게 넘치던 살색의 향연을 그만 멈추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조깅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던 수연의 오프닝 연출까지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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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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