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미러4>에서 '악어' 편을 연출한 존 힐코트 감독.

넷플릭스 <블랙미러4>에서 '악어' 편을 연출한 존 힐코트 감독이 서울드라마어워즈 행사 차 한국을 방문했다.ⓒ 넷플릭스


과학 기술은 과연 인류의 구원자일까 그 반대일까. 지난 2011년부터 현재까지 방영 중인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는 아무래도 후자, 그것도 매우 암울하게 보는 것 같다. 영국 특유의 우울함이 짙게 깔려 있는 해당 드라마의 제작자가 풍자 코미디로 유명한 찰리 브루커라는 건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넷플릭스는 시즌 3부터 해당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시즌 4에선 존 힐코트, 조디 포스터 등 내로라하는 영화 감독들이 각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매회 이어지는 게 아닌 각각이 독립된 이야기인 옴니버스 구성인 만큼 연출자의 개성이 각 회차에 짙게 깔려 있다. 마침 서울드라마어워즈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존 힐코트 감독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현대판 '세익스피어'라는 수식어 

존 힐코트 감독은 시즌4 중 '악어' 편을 연출했다. 한국 관객들에겐 영화 <더 로드>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로 잘 알려진 감독이다. 이중 <더 로드> 역시 근미래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헌신으로 일종의 '희망'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악어'가 그의 전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작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이 절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 남자친구 롭(앤드류 가워)과 함께 드라이브 하던 미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 자전거 운전자를 치게 된다. 신고하려는 미아를 롭이 말리고 그렇게 두 사람은 뺑소니 가해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자신들의 삶을 살게 된다. 바로 이 하나의 진실을 숨기기 위해 미아가 점차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는 과정이 '악어'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다분히 악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다. 억센 악어의 턱에 사로잡힌 채 서서히 영혼이 죽어가는 미아. 그 촉매제는 사람의 기억을 관찰하는 장비 '리콜러'다. 보험조사관이 그 장비를 통해 또 다른 사고를 조사하다 미아를 알게 되면서 비극이 이어지는 것. 존 힐코트 감독과 작품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4>의 한 장면.

넷플릭스 <블랙미러4>의 한 장면.ⓒ 넷플릭스


- 한국 팬들은 이 영화를 두고 '현대판 세익스피어' 같다며 극찬하고 있다. 감독이 생각하는 이 <블랙미러> 시리즈의 매력이 있다면?
"우선 '영화'라고 표현해주어 감사하다(웃음). '현대판 세익스피어'라는 수식어는 찰리 브루커가 매우 좋아할 것 같다(웃음). <블랙미러>는 하나의 공통된 시리즈면서 각 작품이 독립적이라는 게 매력이다. 아들과 한국에 같이 왔는데 미국 TV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소프라노스>와 <더 와이어>를 두고 뭐가 더 좋은 드라마인가 말하다가 난 <더 와이어>가 최고 같다고 했는데 <블랙미러>도 비슷한 매력이 있다.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가는 것 말이다. 

<블랙미러>는 근미래와 과학기술이라는 큰 주제를 설정해 놓고 감독에게 자유도를 줘서 그 안에서 작은 작품을 만들도록 했다. 전통적인 TV드라마를 보면 제작자가 주도하며 대사 위주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콘텐츠의 미래를 위해선 감독 주도로 대사가 아닌 화면과 영상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만들 때 그 점을 신경쓰려고 하는데 쉽진 않다(웃음)."

- 오랜 시리즈인만큼 연출 제안 시점이 궁금하다. 제안을 언제 받았고 흔쾌히 수락했는지.
"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가서(웃음). 생각 좀 해보자. 작년 아니면 재작년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제작자이자 각본을 쓴) 찰리 브루커와 존스가 제안을 했고, 바로 그 다음해에 아이슬란드에 가서 촬영 준비를 했다. 대본을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결정한 건 맞다." 

- <블랙미러>의 세계관이 넓어서 나름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작업 시 힘들었던 점은? 
"준비도 힘들었고, 작업이 아주 어려웠다. 1월의 아이슬란드는 겨울이잖나. 우리가 갔을 땐 1930년 이후 폭설이라더라. 어깨에 쌓여가는 눈을 털어내며 촬영했다. 훌륭한 스태프들 덕에 신속하게 촬영할 수 있었지. 다른 프로들 보면 수많은 작가, 제작자들이 관여하곤 하는데 넷플릭스는 협업에 특화된 것처럼 보였다. 감독에게 많은 자유를 줬다."

- 시즌1부터 기존 에피소드들은 다 챙겨본 상태인가?
"
많이 보긴 했지만 제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다 보진 못했다. <블랙미러>는 첫 시즌부터 알고 있었다. 그 중 '당신의 모든 순간'(The Entire History of You)의 영화화를 고려할 만큼 관심이 있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4>의 한 장면.

넷플릭스 <블랙미러4>의 한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블랙미러4>의 한 장면.

넷플릭스 <블랙미러4>의 한 장면.ⓒ 넷플릭스



왜 하필 '악어'인가 

- 디스토피아, 근미래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전작 <더 로드>와도 비교할 수 있다. 나름 희망을 그렸는데 '악어'에선 다른 결이 느껴진다. 사실 <블랙미러> 자체가 시즌1부터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렸잖나. 
"'악어'에선 인간의 운명이 햄스터에 달려있다(영화의 결말과 관련돼 있음-기자 주). 물론 농담이다(웃음). 진지하게 말하면 <블랙미러> 전체로 묶으면 희망이지만 각 작품들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시리즈들은 인류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지 검토하고 있다. 그런 자세 자체가 일종의 희망을 주지 않나 생각한다. 과학 기술과 미디어에 대한 블랙 유머와 풍자 요소가 있다. '악어'는 유머스럽진 않지만 보고나면 재밌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더 로드> 결말에 희망이 느껴졌다고 말해줘서 감사하다. 그 각본을 쓴 맥카시 역시 희망을 담고 싶었다고 했거든. 그런 면에서 '악어'는 오히려 비극이다. 비극을 바라보는 게 중요했다. 왜냐면 극단적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 필요가 있거든. 제가 한국영화를 좋아하는데 어찌보면 <블랙미러>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사람의 어두움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고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게 한국영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인 건데 제가 코미디를 좋아하긴 하지만 밝은 코미디 영화 뒤엔 제작자나 스태프들이 어둡고 힘든 환경에서 작업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 작업은 스테이지 뒤에선 다들 재밌게 웃으며 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상징이 태극기의 태극 문양이다. 음과 양처럼 빛과 그림자가 이 모든 것에 공존하는 것이지."

- 일부 마니아는 시즌1 '1500만 메리트(15 Million Merits)'와 '악어'가 서로 연결된다고 해석하더라. 미아가 첫 살인을 할 때 방에서 포르노 영화 채널을 트는데 그게 시즌1에 나온 채널 '레이스 베입스(WRAITH BABES)'였다고. 
"
이 작품에서 포르노는 미아가 자신의 상황을 꾸미기 위한 알리바이 역할을 한다. 시즌1을 이어가려는 생각은 없었다(웃음)."

- 악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다면?
"좋은 질문이다. 제목은 찰리 브루커가 붙였다. 나도 물어봤다. 처음엔 말 안 해주더라(웃음). 결국 각자의 해석이 중요하다면서 그가 자기 의도를 설명해주긴 했다. 하지만 나도 인터뷰에선 말하지 않겠다(웃음). 제가 해석한 건 논리적으로 인물을 조여 오는 현실인데 그게 악어가 먹잇감을 조이는 것과 같다고 봤다. 인간이 냉혈동물에서 온혈동물로 진화했다고들 하는데 본능적 상황에선 냉혈동물의 본능이 발동되는 게 아닐까. 음, 역시 보시는 분들 해석대로 가는 게 좋겠다(웃음)."


 
 넷플릭스 <블랙미러4>에서 '악어' 편을 연출한 존 힐코트 감독.

"“준비도 힘들었고, 작업이 아주 어려웠다. 1월의 아이슬란드는 겨울이잖나. 우리가 갔을 땐 1930년 이후 폭설이라더라. 어깨에 쌓여가는 눈을 털어내며 촬영했다."ⓒ 넷플릭스



디스토피아라는 화두

- 전작들과 이번 작품을 놓고 보면 존 힐코트라는 사람은 '악한', '디스토피아'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는 않다. 다만 사람의 어두운 면에 관심이 있다. 모든 제 작품에 진정성이 녹아 있길 바라는데 그러려면 진정성 있는 사람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측면에서 전 사람이 괴물이 된다라는 표현보다는 사람 내면에 악과 선이 다 섞여 있다고 하는 걸 좋아한다. 악한 면을 감추려고들 하는데 저는 그 감추려는 속성을 탐험하고 파내는 게 건강하다고 본다. 근단적 상황에서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최선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최악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게 제가 흥미를 갖고 있는 지점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상황에서 어둠과 악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진 빅브라더,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압박을 주는 게 아니라 리틀브라더를 더 믿는 편이다. 나 자신이 결국 나의 적이다. 기술의 발전이 내 안의 악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걸 잘 관찰하고 싶다. 그리고 그게 <블랙미러>의 존재 이유다. 실제 세상도 그렇다. 미국, 영국, 심지어 호주에서 뽑힌 새 수상의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나(보수파에 호전적 성향의 인물 당선을 뜻함- 기자 주). 역사는 반복되기에 역사를 잘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로드>를 보면 어두운 현실, 인간성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 인간성을 지키는지가 담겨 있다. 또 제 최근작 중 <코라존>이라는 실화 바탕의 드라마도 그렇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사람이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뉴욕에 가는 과정을 그린 건데 주변 사람들의 선의로 도움을 받는 이야기다. 

'악어'도 보면 처음에 미아는 선의가 있는 여성이었다. 상황적 압박으로 큰 실수를 범하고, 이후에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 연쇄작용을 스스로 끊을 수도 있었다.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걸 표현하려 했다. 참 비극적인데 이게 우리 인류의 현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인류의 비극은 이런 잘못된 선택이 점진적으로 이어져 스스로 인간성의 상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미디어의 영향, 과학 기술에 대해 감독은 어떤 입장인가. 한국에서 인기 있는 한 책에선 '과학 기술 발전이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는 통제하지 못한다' 대목이 나온다. 중요한 화두다.
"맞다 중요한 질문이다. 좋은 책 소개해줘서 감사하다. 그 주제에 저도 관심이 많고 밤새 얘기할 수 있다(웃음). 아까 말한 <코라존>을 찍으며 의학 기술이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는 걸 느꼈다. 비례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이라는 게 중요하다. 제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교육이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기술을 따라가기는커녕 제대로 이해조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 친구들 중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이 많다. 실리콘벨리, MIT 출신 등 그들과 얘기하다 보면 문제의 핵심은 결국 도덕심이다. 지금까지 기술은 도덕을 고려하지 않고 발전했다. 그것과 분리된 과학은 위험성이 크다. 아까 태극기의 음과 양을 말했는데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걸 무시하면 안된다. <코라존>을 통해 의술의 긍정적 면을 보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참 어렵다. 지구 온난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인데 제가 바라는 건 과학기술이 이런 문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기기 중독, 그리고 SNS 중심의 삶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 성격이 아닌 대체 성격이 SNS 상에 나온다. SNS 상에선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 나오기 마련인데 전 SNS 부흥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충동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인터넷 전체가 일종의 우리 이드(id, 정신의 무의식 부분을 뜻하는 용어)가 되는 셈이다. 인터넷 발명가는 선의로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어두운 면이 드러나고 있다.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그게 데이터화되고 알고리즘화 된다. 편협함, 충동성이 알고리즘 화 된 게 문제다. 그게 마치 인간사회 전체를 반영한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등 미디어 분야의 경영진들이 정작 자기 가족에겐 자신들이 개발한 장치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들도 그런 부작용에 대해 뭔가 숨기는 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국 우린 과학 기술의 긍정적 적용 사례를 꾸준히 찾고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까 처음에 기자 분이 언급한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웃음)."

 
 넷플릭스 <블랙미러4>에서 '악어' 편을 연출한 존 힐코트 감독.

" 결국 우린 과학 기술의 긍정적 적용 사례를 꾸준히 찾고 추구해야 한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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