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 앞으로 나와!"

또 무슨 일인가 걱정부터 앞섰더랬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생 하성태는 선생님께 이름을 불리는 게 일상이었던가. 그리 심하지 않은 장난기가 곧잘 발동하는데다 성적은 또 나쁘지 않은 터라, 선생님께는 각별히 요주의 인물이었던 듯도 싶다.

기억한다. 그래서 한때 앉는 자리도 다른 친구들과 멀찍이 떨어졌던 것을. 단짝 녀석과 단 둘이서만 떡하니 칠판 바로 앞 두 자리를 차지했던 그때, 부단히도 선생님께 이름이 불리고 꾸지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랬으니, 놀라지 않았겠는가.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께 또 이름을 불렸으니. 나는 왜 또 혼이 나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던 것도 같고. 

한데 그 날은 좀 달랐다. 나이가 많아 봤자 30대 후반이었던, 꽤나 엄했던 그 여자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단으로 불러 세운 것은. 생뚱맞게도, 선생님의 주문은 며칠 전 쓴 일기를 읽어 보라는 것이었다. 막 1990년대로 들어섰던 그때만 해도, 국민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일기를 '검사'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도 같다. 

선생님께서도 당시엔 놀림 반, 신기함 반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사내 녀석이 무슨 영화를 봤길래 극장에서 눈물까지 흘렀느냐"며 50명이 넘는 반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놀리기까지 하셨으니.

그렇게 어리둥절 불려나가서는 교단에 서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기를 읽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발표 아닌 발표는 어쩌면 내 인생 첫 번째 영화 리뷰이자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으리라. 25년도 넘은 그 사연인즉슨, 사실 단순하다.   

동시상영관에서 흘린 첫 눈물
 
 영화 <가위손> 스틸컷

영화 <가위손> 스틸컷ⓒ (주)프레인글로벌


부연은 좀 필요할 것도 같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91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한 해 전이던 그때만 해도 서울 성동구의 우리 동네엔 무려 3개의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1990년대가 그랬다. 서울 종로의 피카디리나 단성사와 같은 개봉관에서 상영이 끝난 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서너 달이면 동시상영관에 최신 영화가 상영됐던 시기였다. 그리고, 비디오, 그러니까 VHS의 활황이 막 도래하려 했던 그때.

관람 등급이 무색하던 시절이었다. 유경험자들이 적지 않겠지만, 당시 동시상영관들은 웬만큼 야한 성인(에로) 영화가 아니고서는 청소년들의 출입을 눈감아 줬었다(그 성인 등급 영화를 동시상영관에서 본 중고등학생이 더 많겠지만). 초등학생이란 특별한(?) 신분으로 중고생 관람가 영화는 무사 통과였고.

특히나 동시상영관에 대한 예찬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텐데, 특히 마음이 가는 영화가 그 다음 주 예고 간판에 걸릴 때면(당시 동시상영관들은 주 단위로 영화들이 교체됐다), 며칠이나 마음이 두근두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떡볶이 사먹을 돈을 모아 모아서 관람료 2천 원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도 낡은 의자에 폭신 안겨 너른 스크린 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판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면, 그 4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홀로 극장에서 탐닉한 영화들이 성룡 영화였고, 당시 홍콩 무협 영화였으며, <스타워즈>니 <인디아나 존스> 류의 할리우드 영화였다. 그저 어둠 속 너머 스크린으로 펼쳐지는 '재미'와 '환상'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빠져 버렸던 그 1990년대.

그럴 만했던 것이, 여느 꼬마답지 않게 취미가 독특했다. 동네 헌책방에서 <하이틴>이니 <주니어>니 하는 하이틴 잡지와 <로드쇼>, <스크린> 등 영화 잡지를 모으고 스크랩 하는 것이었고, 그 취미는 어른이 된 훗날까지도 지속됐다. 어쩌면 인생을 바꿔 놓은 잡지가 < KINO >였으니, 말해 무엇 하랴.

영화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던 그 초등학교 6학년생은 그 가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전 수업만 있던 수요일 오후 단짝 친구 두 놈을 꼬드겨서는 개인 당 2000원을 가져 오라고 반 협박을 했다. 당시에 반에서 어른들이나 보는 스포츠신문을 본다거나 영화 얘기를 하는 아이는 나 혼자였기에, 친구 녀석들은 그 변종의 강권을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남자 초등학생 세 명은 걸어서 20분 남짓 떨어진 동시 상영관으로 향했고, 그래서 만난 영화가 바로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이었다. 제목이나 포스터를 본 친구들은 "유치한 영화 아냐?"라며 처음엔 힐난했지만(웃기지 않은가, 초등학생들이 유치를 운운하다니), 영화가 시작되자 이내 녀석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몰입했다. 
 
 영화 <가위손> 스틸컷

영화 <가위손> 스틸컷ⓒ (주)프레인글로벌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아니 당대의 평가 역시나 <가위손>은 오래오래 회자될 만한 수작이었다. 팀 버튼 감독 특유의 환상적인 미장센, '가위손'이란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이방인을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마을 내 '보통' 사람들의 이기심과 그 안에서 꽃피는 '가위손' 조니 뎁과 마을 소녀 위노나 라이더의 가슴 아픈 사랑, 그 처음이자 가위손에겐 마지막 사랑. 어찌 보면 사춘기를 막 앞두고 있었을 꼬마 녀석들이 흠뻑 빠져들 만한 이야기 아니었겠는가.

특히나 사람들의 질시와 오해에 몰려, 결국은 위노나 라이더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아니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산으로 쫓겨 가는 조니 뎁의 모습이 어찌나 안타까웠던지. 그 극장에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작 13년 인생이었지만, 첫 경험은 언제나 강렬한 법 아니겠는가).

그래도 사내 녀석이라고,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찔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놀림이라도 받을까 친구들 몰래 고개를 돌렸던 것도 같다. 그리고, 동시상영관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팀 버튼의 '환상 세계'는, 그 이후 영화와 함께 한 나의 사춘기 시절을 지배한 자양분이 되어줬다.

그로부터 20년 후 만난 팀 버튼

그로부터 20여년 후, 지척에서 그 팀 버튼 감독에게 눈을 마주한 채 질문을 던질 기회가 찾아 왔다. 그는 <팀 버튼 전> 개최에 맞춰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었고, 나는 전시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 신분이었다. 맞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장소, 초대받지 않은 공간에 명함을 들이밀고 찾아 갔다. <가위손> 이후 '같이 나이 먹어 간다'는 나만의 반가움을 표현하기 위해, 첫 내한한 그 사춘기 시절의 '최애' 감독을 알현하기 위해.

평소 영화 시사회장에선 그리도 질문에 인색하던 내가 이례적으로 손을 들고 했던 질문은 역시나 유년시절의 '꿈'과 관련된 것이었다. 악몽과 같은 주요 코드도 그렇고, 어릴 적 감정이나 꿈이 현재에 인생이나 작품에 있어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판타지, 흑백 고전영화에 대한 애정을 늘상 고백해 왔던, 그 팀 버튼 감독이 다른 질문보다 좀 더 길고 진지하게 대답해 소소한 기쁨을 줬던 그 답은 이랬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책임이 생기고, 새로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감정들을 기반으로 작품들도 똑같이 변화해 나가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어릴 적 영감들은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라'라기보다 '어린 시절 사물을 봤던 시각을 유지해라'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질문 말미에 "제가 어릴 적부터 '빅 팬'입니다"라는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들려준 답(과 그가 작품으로 입증하고 있는 세계관들)은 어릴 적 경험들을 어떻게 인생에, 작품에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답을 듣고는 꽤나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나긴 한다.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을 했던 것도 같고.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영화 <가위손> 스틸컷

영화 <가위손> 스틸컷ⓒ (주)프레인글로벌


박연선 작가는 드라마 <연애시절>에서 연애를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거라 비유했다. 아마도 오늘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그 희망이란 존재를 드라마 소재에 적절하게 대입한 명대사가 아닐는지. 연애가 장래희망일 나이를 이제는 지나왔지만, 어릴 적 꿈 하나는 무던히도 오래 품고 있었던 듯하다.

<가위손>을 보며 눈물을 훔치던 그 시절엔 '비디오/음반/도서 대여점 사장'(지금도 이 희망이 기재된 초등학교 학급일지를 보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웃음만 난다)이 꿈이었다. 고등학교 학생기록부엔 '영화 기자, 영화 평론가'로 기재돼 있고. 대학 이후엔 그저 막연하게 '영화 글쟁이'를 꿈꿨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내 꿈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좋은 글을 쓰는 사람. 그것이 영화기자든 그 어떤 유형의 글쟁이든, 위치는 중요치 않을 것 같고. 이 글 역시도 시나리오 마감과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와중에 머리를 식힐 겸 떠올린 오래된 기억에서 비롯됐음을 고백하는 바다. 

그리하여 그 장래희망은 영원히 진행형일 것도 같다. <가위손>을 보던 어린 시절과 미친 듯이 영화에 탐닉하던 고등학생 시절, 그 '어린 시절 사물을 봤던 시각을 유지해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한 몸부림의 현재 진행형. 그래서 10년이, 20년이 흐른 뒤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또 다시 내 인생 첫 번째 영화 리뷰를 발표하던 초등학교 6학년 그 때, 영화관에서의 첫 눈물을 흘리던 그 동시 상영관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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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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