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엘리> 포스터

<어바웃 엘리> 포스터 ⓒ Dreamlab


개인적으로 '드라마'라는 장르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을 묻는다면 아쉬가르 파라디를 꼽고 싶다. 그의 작품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인간 본연의 욕망과 거짓말, 이란 사회에 대한 비판, 배경과 결말에 묻어나는 시대의식까지 모든 면에서 흥미롭고 여운이 남는 드라마를 선보인다. 이 작품 <어바웃 엘리> 역시 마찬가지다. 파라디 감독이 이 작품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으니 사실상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파라디 영화가 그러하듯 <어바웃 엘리> 역시 평범한 인물들, 평범한 배경이 등장한다. 세피데(골쉬프테 파라하니 분)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가족여행에 유치원 선생인 엘리(타라네 앨리두스티 분)를 데려간다. 독일에서 온 친구 아마드(샤하브 호세이니 분)에게 그녀를 소개시켜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세 명의 가족들과 한 명의 친구 사이에 껴서 가족여행에 따라간 유치원 선생님 엘리. 하지만 세피데가 장소를 잘못 잡으면서 그들은 바닷가 근처의 더러운 장소로 숙소를 바꾼다. 모두가 자신의 일에 정신이 팔렸을 때 한 아이가 물에 빠진다. 아이를 필사적으로 구하는 남자들. 그들은 아이를 돌보지 않은 여자들에게 불만을 내뱉는다.

'아이는 엘리 선생님한테 돌봐달라고 그랬어.' 누군가의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알게 된다. 엘리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엘리를 찾아다니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고 세피데는 엘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저 유치원 선생이고 아마드에게 소개하기 위해 데려왔을 뿐이라고. 엘리는 아이를 구하려다 물에 빠진 걸까? 아니면 그들 중 몇 명의 말처럼 이 어색한 분위기와 강제로 이뤄지는 커플 엮기에 짜증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간 걸까?

이란 사회의 희생양,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

 영화 <어바웃 엘리> 스틸컷

영화 <어바웃 엘리> 스틸컷 ⓒ Dreamlab


파라디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여성'이다. 그의 작품 속 여성은 매번 남성 폭력의 희생양이다. 성차별이 심각한 이란에서 그들은 억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 라지에가 유산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건 남편의 강요 때문이었으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서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을 기도한 건 그의 불륜이 단초였다. <세일즈맨>에서는 에마드의 아내가 폭행당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와 폭행을 당한 이유 역시 강한 이슬람 국가이자 가부장 중심의 이란 사회가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 속 여성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바웃 엘리>는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성은 사라진 엘리, 다른 한 여성은 그녀를 데려온 남겨진 여성 세피데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가부장적인 이란 사회의 희생자들이라는 점이다. 엘리가 사라진 후 세피데의 남편은 끝없이 세피데를 몰아세운다.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엘리를 데려온 그녀에게 있다는 듯이. 심지어 세피데가 엘리의 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폭력을 휘두른다. 감독은 '엘리는 어떻게 되었고 왜 엘리는 사라진 걸까?'라는 궁금증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스릴러의 구조를 가져왔다. 그래서 관객은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남편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의 입장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비밀을 간직한 세피데에게 진실을 말하라 추궁하는 과정에 몰입하게 된다.

관객은 장르가 가진 구조에 빠진 나머지 남편이 저지르는 폭력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의 시점은 이 미스터리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해결의 열쇠를 쥔 여성의 침묵에 궁금증을 느끼며 그녀가 입을 열기를 바란다. 

파라디의 드라마가 돋보이는 이유는 이야기, 그리고 배경에 살며시 주제의식을 녹여낸다는 점이다. 그가 배경으로 삼는 무너진 집(<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 무너진 가정,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세일즈맨>에서 지진으로 손상된 집과 매춘부가 살았던 집, <어바웃 엘리>에서 주인공들이 묵게 되는 낡은 별장)은 아직도 이슬람주의와 가부장적 관습에 얽매인 이란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남성들의 폭력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묻어난다.

결국 모든 이유는 남성의 폭력에 있었다

 영화 <어바웃 엘리> 스틸컷

영화 <어바웃 엘리> 스틸컷 ⓒ Dreamlab


<어바웃 엘리>에서 엘리는 왜 세피데를 따라온 걸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약혼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이슬람 사회에서 결혼을 결정하는 건 여자가 아닌 가족이며 상대편 남자다. 그녀에게 결혼을 '파기'하는 건 스스로의 의지로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숨기고 세피데를 따라 나선 것이며, 세피데는 그녀가 혹 약혼자에게 연락을 받고 마음이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핸드폰을 압수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피데는 잘 모르는 엘리를 가족 여행에 데려왔으며 그녀와 아마드 사이가 잘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 이유는 세피데의 남편이 그녀에게 행한 폭력에 있다. 세피데의 남편은 폭언도 모자라 그녀를 때린다. 그의 친구들의 자세 역시 이와 같다. 친구들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지시만 할 뿐 그녀들이 사건의 앞에 서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진실을 알고 있는 세피데 만을 앞세우며 그녀가 책임지기를 바랄 뿐이다.

세피데는 엘리에게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엘리의 모습에서 강압적인 가정에 갇혀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한 여성의 실종이라는 스릴러는 껍질을 벗긴 순간 종교와 관습에 의한 감옥을 보여준다. 이런 세피데의 모습 때문인지 이 영화의 결말은 다른 파라디 영화들과 다르게 나길 바랐다. 그의 영화는 항상 새드 엔딩이다. 바뀌지 않는 조국을 위한 판타지는 없다. 비극 앞에서 어설픈 희극을 그려내며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흥미롭지만 괴롭다. 서늘한 사회의 깊이만큼 강하게 흉부를 도려내는 아픔이 강하게 작용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와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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