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배우 최무성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배우 최무성이 3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에서 배우 최무성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 성철 역을 맡았다. ⓒ 이정민


영화 <살아남은 아이> 속 성철(최무성)은 시종일관 침착하다 마지막 순간에 결국 이성의 끈을 놓는다. 자기 아들이 죽으면서 살려낸 아들의 친구 기현(성유빈)이 그 죽음의 진실을 뒤늦게 말하는 바람에 모든 게 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들의 희생을 의로운 죽음으로 만들고자 했던 한 아버지가 모든 것을 놓은 이기적 인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살아남은 아이, 그리고 남겨진 어른.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크게 세 인물의 감정선을 밀도 높게 교차시킨다. 그중 성철은 우리가 흔히 그릴 법한 묵직한 아버지 캐릭터다. 최무성이 이 캐릭터를 입어 더욱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해할 순 있었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독님에게 토를 잘 안다는 편이라"는 그는 "막상 읽었을 때는 잔잔한 느낌의 구성이라 생각했는데 촬영하다 보니 감정선이 크고 마치 대하드라마 같은 느낌이 있었다"라고 운을 뗐다.

"저 역시 (기현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기에 성철이 처한 상황이 이해는 되더라. 물론 (아들을 잃은) 그 고통은 차마 예상할 순 없겠지만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들이 팔삭둥이다. 일찍 나와서 저체중에 미숙아였다.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성철의 심정은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감정선이 커져 봐야 달라질 건 없으니 성철처럼 잔잔하게 있었던 것 같다. 심각한 일에서는 차분하게 대하는 게 사태를 더 나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영화 속 진성철의 감정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후반부에 굴곡이 좀 심해질 때도 어렵진 않았지. 기현을 품는 건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사망한 아들을 좋은 일 하고 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덜 억울하고 자기의 고통도 덜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전형적 기성세대 같은 모습이랄까. 아내인 미숙(김여진)은 감정을 다 드러내지만, 성철은 그렇게 하진 않는다. 그렇게 맑은 마음의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그렇게 캐릭터를 해석했기에 최무성은 영화에서 성철이 기현에게 보이는 호의를 용서라고 보지 않았다. "모든 게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다"며 최무성은 "성철 또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 전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함께 호흡을 맞춘 감독과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다.

"고통스러운 상황과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엔 인간에 대한 온정이 깔려 있다. 감독님 역시 저와 처음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보이고 싶다고 말했었다. 정직함이 느껴졌다. 배우들 역시 현장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에너지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편했다.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기다려주고 보여주고 하는 식이었다.

저는 배우기에 감독님이 그린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면 된다. 그 외적인 것까지 생각하면 연기가 좀 이상해지더라. 고통스러운 삶에 있는 사람으로 연기하면 최선이지, 더 가버리게 되면 뭔가 어색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외의 것은 감독님의 몫이지. 알고 보니 영화 안에 상징이 많더라. 기현이 그 많은 일 중 도배를 하는 설정이나 서 있는 자세 등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들었다. 전 배우로서 '아 그렇구나' 생각하고 천진하게 임했던 것 같다."


진실한 창작

<살아남은 아이>를 통해 최무성은 "배우가 어떤 해답을 던지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사람답게 살아보려 한 세 인물이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성철과 미숙이 기현에게 가혹할 수도 있었고, 기현이 더 영악하게 두 사람을 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한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유했다고 할까. 다들 끝까지 치닫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 다들 서로 더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노력했잖나. 그 부분이 답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어른스럽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존재인데 건강한 어른이라면 자기 입장만이 아닌 다른 사람 입장을 생각할 것이다. 그게 기본적인 성숙함 아닐까. 끝까지 가지 말고 살아보자. 그러면 서로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심을 가지고 말이다."

'살아남은 아이' 배우 최무성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배우 최무성이 3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는 배우기에 감독님이 그린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면 된다. 그 외적인 것까지 생각하면 연기가 좀 이상해지더라. 고통스러운 삶에 있는 사람으로 연기하면 최선이지." ⓒ 이정민


그의 나이가 50이다. 그간 <응답하라> 시리즈 등으로 아버지 캐릭터를 맡았으면서 동시에 영화에선 몇몇 악역으로 강하게 기억돼 있기도 하다. 최근 방송 중인 <미스터 선샤인>에선 김태리의 스승으로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또한 연극 무대에선 연출자로 꾸준히 작품을 올리고 있다.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다는 뜻이다. "성유빈과 김태리 모두 좋은 배우"라며 "그들이 잘 나가니까 저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연극은 예전부터 했으니 이젠 생활이 됐다. 안 하면 안 되고 즐겁게 하려 한다. 제가 연기를 하다 보니 연출할 때 후배 연기자들에게 시범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 욕구를 점점 줄이고 있다. 연출할 땐 연출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 지점에서 최무성의 개명한 이유를 물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매너리즘에 빠졌기에 본명인 최명수에서 지금의 예명을 쓰고 있는 사연을 밝혔기 때문.

"(웃음) 좀 미화된 사연이다. 일도 뜸했던 때고, 이름을 바꾸면 좀 잘 될까 싶어서 그런 것이다. 밭을 열심히 꾸준히 간다는 뜻인데 다른 이름을 갖게 되면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악마를 보았다> 때부터 지금의 예명을 쓰고 있다. 개명한 게 아니다. 제가 종손이라 개명하면 안 된다(웃음).

연기를 계속 할지 말지 그 고민을 하던 때는 아니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은 낸 상태였지. 35살 때 제가 드라마와 영화 쪽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름 명분을 고민했었다. 연기를 할 때 어떤 명분을 가져가야 하는지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려 했지. 그냥 좋아서 한다가 아닌 의미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왜 연기가 좋은지를 파고든 것이다. 두 가지가 있더라. 하난 창작에 대한 즐거움이었다. 단순히 재미를 넘어 뭔가 만들어 내는 즐거움이 있었다.

또 하나는 연극이 진행되는 한 시간 반 동안 관객들이 자기 삶을 내려놓고 보신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것이잖나. 실제 같은 삶을 보면서 뭔가 반성하고 돌아보잖나. 그런 게 보람이었다. 창작을 진실하게 해서 관객 중 한 사람에게라도 위안을 줄 수 있다면 큰 보람인 것이다. 그렇게 본질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명분을 찾게 되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최무성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책임감'이었다. "내 작업으로 인해 누군가 고통받거나 혹은 현실과 진실을 호도하거나 포장해서는 안 되겠다"며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는 이 특별한 책임감을 그는 무시하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살아남은 아이' 배우 최무성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배우 최무성이 3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창작을 진실하게 해서 관객 중 한 사람에게라도 위안을 줄 수 있다면 큰 보람인 것이다. 그렇게 본질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명분을 찾게 되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이정민



최무성 김여진 살아남은 아이 성유빈 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