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보름 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2일 폐막했다.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 중국이 300개에 가까운 메달을 쓸어 담으며 이변 없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개최국의 이점을 살린 인도네시아가 무술종목 펜칵실랏에서 14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종합 4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65개 이상의 금메달로 6회 연속 종합 2위를 노리던 한국은 금메달 49개, 은메달 58개, 동메달 70개를 수확하며 중국과 일본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육상과 수영 등 많은 메달이 걸린 기초 종목에서의 부진이 이어졌고 사격, 승마 등 전통적인 강세종목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선수단을 파견한 대한 체육회 입장에서는 결코 만족하기 힘든 결과다.

하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두가 최선을 다하며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했고 그 결과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177개의 값진 메달을 수확했다. 특히 몇몇 종목의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스포츠 팬을 감동시킨 멋진 장면들을 연출하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각본 없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병역 혜택의 당근도 막을 수 없던 펜싱과 양궁 선수들의 스포츠 정신

나이가 어린 남자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대형 종합대회에서 더욱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는 바로 병역 혜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병역 혜택은 그 어떤 포상금이나 명예보다도 큰 선물이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두 종목에서 병역 혜택의 유혹(?)을 이겨내고 끝까지 스포츠 정신을 발휘한 선수들이 있었다.

이 기쁨 어찌할까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구본길(왼쪽), 오상욱이 기뻐하고 있다.

▲ 이 기쁨 어찌할까 지난 8월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구본길(왼쪽), 오상욱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20일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는 한국의 구본길과 오상욱이 결승에서 만났다. 구본길은 일찌감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혜택을 받은 상태였고 세계랭킹 5위의 신예 오상욱도 충분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 자격이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금메달을 앞에 두고 두 선수는 양보 없는 치열한 명승부를 펼쳤고 결국 15-14로 승리한 구본길이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구본길은 금메달을 따고도 미안한 마음에 오상욱을 안고 눈물을 보이며 단체전에서의 선전을 다짐했다. 그리고 3일 후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으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단체전 결승에서 이란을 45-3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미래가 보장된 후배의 앞길을 막았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던 구본길도 그제서야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오상욱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금, 은 차지한 김우진, 이우석 지난 8월 28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양궁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경기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우진(가운데)과 은메달을 차지한 이우석이 시상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금, 은 차지한 김우진, 이우석 지난 8월 28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양궁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경기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우진(가운데)과 은메달을 차지한 이우석이 시상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28일 양궁 남자 리커브 결승에서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의 주인공이자 리우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김우진과 갓 상무에 입대한 신예 이우석이 만났다. 한국은 전날 단체전에서 대만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문 터라 이우석이 병역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배 김우진을 꺾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반면에 김우진은 이미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와 올림픽 금메달까지 가지고 있어 이우석 만큼 금메달이 절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우진은 후배의 '조기전역'이 걸려 있는 경기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명승부를 펼쳤고 경기는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우진이 6-4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우석은 마지막 세트에서 야속한(?) 선배 때문에 1점 차이로 패하며 조기 전역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우석은 은메달이 결정된 후에도 "군대는 절대 나쁜 곳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환하게 웃으며 선배의 금메달을 축하해 줬다.

아버지 뒤 이어, 아버지보다 더 어린 나이에 AG 금메달 목에 건 2세들

한국 축구 역대 A매치 최다골(56골)에 빛나는 레전드 차범근 전 감독과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코치였던 '차미네이터' 차두리는 성공한 부자 축구 선수로 유명하다. 차범근-차두리 부자뿐 아니라 많은 종목에서 부모님의 대를 이어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아버지의 대를 이은 금메달리스트가 둘이나 나왔다.

소감 말하는 여서정 지난 8월 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체조 여서정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른쪽은 아버지인 여홍철 교수.

▲ 소감 말하는 여서정 지난 8월 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체조 여서정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오른쪽은 아버지인 여홍철 교수. ⓒ 연합뉴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과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는 '도마의 신' 여홍철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기계최초의 전설이다. 그리고 여홍철의 차녀 여서정은 지난 2010년 8살의 나이에 체조를 시작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경기체중 시절에는 3년 동안 소년체전에서 금메달 11개를 휩쓸었을 만큼 또래 중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AG 도마 금메다 여서정, 아버지의 길을 따라 여서정이 지난 8월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서널 엑스포(지엑스포)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미소짓고 있다.

▲ AG 도마 금메다 여서정, 아버지의 길을 따라 여서정이 지난 8월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서널 엑스포(지엑스포)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미소짓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여서정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시니어 자격을 얻어 출전하는 첫 국제대회였다. 처음 출전하는 큰 무대에 '여홍철의 딸'이라는 주변의 관심까지 더해진 만큼 여서정이 느낀 부담은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능가하는 담력을 가진 여서정은 주종목인 도마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대형사고'를 쳤다. 여전히 아빠의 전화를 받으면 눈물부터 흘리는 만 16세의 여린 소녀가 아시아의 체조여왕에 등극한 것이다.

아빠와 아들, 둘 다 AG 금메달 1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 이정후와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 주루코치가 금메달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아빠와 아들, 둘 다 AG 금메달 1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 이정후와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 주루코치가 금메달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이미 프로에 데뷔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해태 타이거즈를 3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슈퍼스타였다. 이종범의 장남 이정후는 이종범이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하던 1998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이종범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 나이로 5살이었던 이정후는 아버지가 금메달을 땄던 장면도 기억에서 흐릿할 것이다.

하지만 이정후는 16년 후 당시의 아버지보다 훨씬 이른 만 20세의 젊은 나이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 대체 선수로 들어와 대표팀 부동의 1번타자로 활약한 이정후는 이번 대회 타율 .417 2홈런7타점6득점으로 맹활약했고 결승전 9회2사 후 금메달을 확정 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도 잡아냈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 국가대표 1번 타자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준결승 패배 하루 만에 극복하고 한일전 3연승의 시작 알린 여자배구

아시안게임 2연패를 노리던 한국 여자배구의 4강 상대가 태국으로 결정됐을 때 국내 배구팬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물론 태국도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복병이지만 세계랭킹1위 중국이나 6위 일본에 비하면 약한 상대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8월 31일에 열린 준결승에서 태국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하면서 결승 진출이 무산됐다.

흔히 우승을 노리던 팀이 준결승에서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상대에게 덜미를 잡히면 3-4위전에서 사기가 떨어져 허무한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3-4위전 상대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고 한일전으로 치러진 동메달 결정전은 저녁에 열린 야구와 축구 한일 결승전을 앞둔 중요한 한일 3연전의 시작이 됐다.

김연경 블로킹 포효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배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블로킹에 성공한 한국 김연경이 포효하고 있다.

▲ 김연경 블로킹 포효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배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블로킹에 성공한 한국 김연경이 포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값진 동메달 따낸 여자 배구 선수들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배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AG) 여자 배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 값진 동메달 따낸 여자 배구 선수들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배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AG) 여자 배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결승전 못지않은 접전을 펼쳤다. 32득점을 퍼부은 주장이자 에이스 김연경부터 나란히 블로킹 3개와 함께 16득점을 올린 양효진과 이재영, 그리고 웜업존과 벤치에서 큰 목소리로 언니들을 응원했던 막내 정호영까지 14명의 선수들 모두가 코트에서 하나가 됐다. 특히 4세트 23-23에서 1분6초 간 펼쳐진 양 팀의 긴 랠리 끝에 나온 이재영의 득점은 단연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31세가 된 김연경은 이번 대회가 실질적인 마지막 아시안게임이었다. 김연경은 경기가 끝난 후 지난 12년의 기억이 스쳐간 듯 살짝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비록 금메달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멋진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리고 여자배구의 승전보는 야구와 남자 축구까지 '9월 1일 한일전 3연승'이라는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

손흥민 '너무 좋아'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한국의 2-1 승리로 끝났다. 한국 손흥민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 손흥민 '너무 좋아' 1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한국의 2-1 승리로 끝났다. 한국 손흥민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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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결산 펜싱 체조 여자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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