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남은 아이> 포스터

영화 <살아남은 아이>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성철(최무성 분)은 인테리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현(성유빈 분)을 불러 도배하는 법을 가르친다. 기현을 바라보는 성철의 뒷모습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 속 올리비에를 떠올리게 만든다. 성철의 듬직한 덩치에서는 고민과 슬픔이 느껴진다. 가구제작훈련센터를 운영하는 올리비에가 아들을 죽인 소년에게 목공 일을 가르친다면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성철은 아들 때문에 살아난 아이인 기현에게 인테리어를 가르친다.

아들 은찬이 친구 기현을 구하다 물에 빠져 죽은 후 성철은 슬픔을 잊고 나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아내 미숙(김여진 분)은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남편은 아들에 대한 기억을 잊자고 말하고 아내는 왜 벌써 잊느냐며 남편을 탓한다. 성철은 조금이라도 슬픔을 잊기 위해 바깥일에 매진하며 동시에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들의 이름으로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아들 때문에 살아난 기현이 똑바로 살길 바라며 자신이 일하는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시킨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아들이 대신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기현을 원망하던 미숙은 기현과 가까워지면서 그에게서 은찬의 모습을 발견한다. 죽은 아들 대신 아들과 같은 나이 대, 같은 사고에서 살아남은 기현에게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아들과 친했던 절친한 친구는 미숙을 멀리하는 반면 기현은 미숙이 어색하고 어렵지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미숙이 아프다는 소식에 죽을 싸들고 병문안을 와서 어색하지만 말동무를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성철이 기현에게 가르치는 인테리어 일 중 작품에서 주로 보여주는 일은 도배다. 이유 있는 묘사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혹은 제대로 붙어있지 않아 엉망인 벽지처럼 기현의 과거는 엉망이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이곳저곳 떠돌며 일을 하다 재혼을 통보하고 생활비 지원을 끊어버렸다. 부모라는 어른이 준 상처는 기현으로 하여금 세상을 차갑고 냉정한 곳이라 인지하게 만든다.

기현은 어른들에게 느낀 실망 때문에 엇나간다. 어른들은 진실 되지 못하다 여기기에 불량스러운 친구들과 어울린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무책임한 부모의 모습이 책임감과 정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만든 것이다. 이런 기현에게 새로운 벽지를 붙여준 게 성철과 은숙이다. 성철은 처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으로, 은숙은 이유 없는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기현에게 다가온다. 그들 사이에서 기현은 마음을 열고 미소를 보인다.

당연한 연상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 (주)엣나인필름


이 영화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부부의 아들인 은찬이 익사를 당했고 주변 사람들은 보상금에 관심을 가진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성찰과 은숙에게 주변 사람들과 교사, 검사 등 공무원들은 이제 그만하라 말한다. 특히 기현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경찰서에서 거짓말하는 이유에 대해 "그게 편하기 때문"이라 답한 건 어른들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고 슬퍼하지 말라고 강요했던 차가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자체가 세월호를 의도하고 만든 게 아니다. 감독 역시 그 점을 설명한 바 있다. 그만큼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 영화가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가 되려면 감정에 있어 따뜻함이 없어야 된다. <살아남은 아이>의 감정 구조는 나선형을 지니고 있다. 죄책감과 원망으로 무너지던 부부의 삶이 기현이라는 존재를 통해 회복을 경험하고 진실을 알고 난 후 혼돈을 통해 감정을 흔들지만 용서와 구원으로 마무리가 된다. 만약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였다면 이 용서와 구원의 느낌은 담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용서와 구원이 느껴졌던 이유는 이성이라는 변명으로 인간됨을 버려온 차가운 사회 속에서 살아온 기현이 성철의 믿음과 은숙의 사랑을 통해 이전에 없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죄책감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르덴 형제의 <아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아이를 관찰하듯 따라다니며 자신의 근무지에서 일을 시킨다는 점, 목공과 인테리어가 가지는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유사함이 느껴졌다.

인간성에 대해

 영화 <아들> 스틸컷

영화 <아들> 스틸컷 ⓒ 동숭아트센터


하지만 이 두 작품은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아들>은 안에서 밖으로 꺼내는 이야기를 다룬 반면 <살아남은 아이>는 밖에서 안을 향하는 이야기이다. <아들>에서 올리비에의 아들을 죽인 프랜시스는 소년원에서 치른 죗값에도 불구 자신에게 씌워질 주홍글씨에 대한 고통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반면 <살아남은 아이>의 기현은 성철과 은숙에 의해 인간성을 상실한 차가운 마음 내부의 감정적인 변화를 통해 포인트를 준다.

영화의 제목 <살아남은 아이>는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영화의 내용대로 기현은 은찬이 구해줘 살아남은 아이라는 것. 두 번째는 기현은 성철과 미숙에 의해 인간성이 상실된 차가운 세상에서 벗어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되며 살아남게 된 아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차가웠던 과거 혹은 아직도 차가운 사회를 비추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장편소설 <인간의 증명>에서 형사는 증거 하나 없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용의자의 감정에 기대기로 마음먹는다. 용의자가 정말 인간이라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죄책감 때문에 죄를 실토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통해 인간임을 '증명'하며 그런 인간에게는 '용서'와 '구원'이라는 삶의 열쇠가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와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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