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목요일 저녁, 그룹 스터디로 친구의 집에서 밤을 샐지도 모른다던 딸 마고(미셸 라 분)로부터 부재중 전화 세 통이 걸려온다. 아침이 되어서야 딸의 전화를 확인한 데이빗(존 조 분)은 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에게선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마고는 평소 데이빗과 연락도 자주 주고받는 좋은 딸이었다. 마고의 행방을 찾던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 딸이 실종되었음을 알게 되고 경찰에 도움을 청한다. 조사가 시작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쉽게 나오지 않고 데이빗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수소문한다. 이내 곧 마고가 실종되던 날의 행적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동안 그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영화 <서치>는 한 소녀의 실종으로 인해 일어나게 되는 일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그려나가는 작품이다. 스토리 자체는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하는 다른 작품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를 투사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 작품에는 그 동안의 영화에서 우리가 봐왔던 일상적인 장면들이 단 한 컷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독은 이 작품의 모든 장면들을 PC와 모바일 속 기능들로 채운다. 노트북과 휴대폰, CCTV와 같은 장치들의 화면이 이 영화의 프레임이며, 웹 브라우저와 SNS·문자메시지와 화상통화 장면들이 내용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된다. 가령 이 작품에서는 인물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장면조차 컴퓨터에 장치된 카메라, 이를 구동시킨 화상 통화 기능으로 찍혀 보여지는 것이다.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소니 픽쳐스 코리아


02.

과거에도 영화 속 장면에 모바일 환경이나 PC 장치들을 활용해 정보를 전달하려는 노력들은 있었다. 단순히 텍스팅 중인 기기의 화면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화면을 CG를 통해 스크린 위로 옮겨놓는 식이다. <안녕 헤이즐>과 <러브 로지>가 개봉했던 2014년을 기점으로 모바일 텍스팅이나 SNS의 장면들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식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서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거의 없었다. 사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방식의 차용은 많은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영화 외부의 기술적인 부분, 방식적인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작품의 핵심인 드라마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치>가 올해 열린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 'Best of Next'를 수상하며 기대감을 높였던 것은 새로운 방식의 참신함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두드러지기 위해 필요했던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테이크를 길게 가져갈 수 없는 기능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치>에서는 각각의 장면들이 조금도 이질감 없이 온전한 하나의 감정으로 완성된다. 이전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다음의 상황을 구현해내는 감독의 세심한 연출 때문이라 해야겠다. 웹 브라우저의 검색 기록을 찾는 장면에서 각 기록의 위치를 표현하는 부분까지도 결코 놓치지 않는 세심함. 감독의 나이가 이제 겨우 28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함이 느껴진다.

풋티지의 주된 공간이 되는 PC 모니터의 제한성도 이 작품의 장르적 묘미를 배가시키는 장치다. 일상적인 장면에서 인물 뒤쪽에 자연스럽게 담기게 되는 배경의 공간성과 달리 이 영화의 PC 속 배경은 바로 코 앞에 놓이는 배경화면이기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예고도 없이 불쑥하고 나타나는 메시지, 전화들은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갑갑함마저 준다. 원래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에서 어떻게든 획득하고자 하는 요소들 중 하나를 외부적 설정만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답답함과 갑갑함이 부정적인 느낌으로 전환되지 않는 까닭은 1인칭 시점에 있다. 마치 직접 이 상황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의 1인칭 시점을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으로 높아진 몰입감은 이들을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소니 픽쳐스 코리아


03.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장면도 버릴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잘 짜인 이 영화는 오프닝 크레디트와 같은 처음의 5분 정도, 이 영화의 프롤로그로 여겨지는 짧은 영상부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가정의 아이가 태어나 부모와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그 행복한 시절을 남기기 위해 애를 쓰는 부모의 모습.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는 가정의 붕괴까지 포함되어 있다. 작품 속 마고의 심리를 설명해주는 근거가 될 엄마와의 이별까지 말이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하나의 작품을 따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한 가정이 겪은 아련한 시절의 이야기를 집약적이지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퀀스다.

04.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의 불화는 개인이 또 다른 개인(타인)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엄밀히 따지면 자식 또한 타인이라는 것을 부모 측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작품에서 딸의 역할을 맡고 있는 마고처럼 배려심이 깊고 천성이 착한 아이들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마고의 실종에 대한 경찰의 수사 시작과 함께 데이빗은 딸에 대해 자신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딸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만 깨닫게 된다.

경찰과 담당 형사인 로즈메리 빅(데브라 메싱 분)의 부진한 수사 결과에 실망한 탓도 있었겠으나, 어떻게든 작은 증거라도 찾아 수사를 직접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은 위험에 놓여있을지도 모르는 딸을 하루 빨리 찾겠다는 의지 그 이면에 다른 이유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사에 대한 데이빗의 의지는 점점 커지고, 결국 그는 마고가 향했던 행선지를 발견한다. 마고의 상태가 가출이 아닌 실종이라는 것을 알아내면서 그의 의지는 더욱 강건해진다. 어쩌면, 그의 그런 행동들은 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에 누구보다 먼저 찾아내 반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05.

사실 마고 실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엄마의 죽음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정작 주변의 누구와도 이야기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은 마고 본인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아픔을 씻어낼 기회도 부여 받지 못하고 일상을 버텨야 했다. 그녀의 모든 일상에 엄마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도. 아빠인 데이빗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지만, 그의 선택은 오히려 반대, 아내의 죽음과 그 빈자리를 모른 척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면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고에게 이 상처를 누군가와 해결하기 전까지 다른 모든 대화와 관계는 무의미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호수를 홀로 찾아가고, 각종 SNS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시도들을 하게 되는 이유다. 어떤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아본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마고가 그런 아이다. 속은 또 쓸데없이 깊어서 아빠에게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그런 외로움을 감춘다. 감춘 외로움 위에 더 큰 외로움이, 또 다시 감춘 큰 외로움 위에 더 큰 외로움이 쌓이게 된다. 오히려 그런 그녀는 위로해 주는 건, 삼촌 피터(조셉 리 분)다.

미성년자인 조카 마고에게 마약인 마리화나를 하게 한 것은 잘못된 방법이었으나, 피터의 역할은 그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했다. (물론 이러한 극적인 설정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동력이 된다) 그녀가 깊은 외로움에서 빠져 나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데이빗의 행동이 안타까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히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자신은 딸을 위해 그런 통로가 되어주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적어도 노력은 하려고 시도한 피터를, 딸이 마약을 했다는 그 결과만 갖고 원망을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생일조차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던 사람이다.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으면서.

06.

영화는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언론과 소셜 네트워킹, 네티즌들의 반응과 같은 것들의 아쉬운 모습에 대해 그려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화제성이 높은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한 다양한 모습은 물론, 평소에는 사고의 당사자인 마고에 대해 어떤 감정도 없었으면서 기회를 틈타 그녀의 불행을 이용해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뿐만이 아니다. 개인이 SNS를 통해 대중에 노출되는 일의 문제와 익명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 작품이 이런 현대화 기술들, PC와 모바일의 발전으로 인한 요소들로 작품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의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하나의 소재에 대해 긍정적인 면은 작품의 뼈대로, 부정적인 면은 소재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소니 픽쳐스 코리아


07.

이야기는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그 동안 쌓아온 이야기의 결과물을 꺼내기 위해 몇 차례의 전복을 시도한다. 삼촌인 피터도 담당 형사인 로즈메리 빅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러 차례 이야기 했듯이, 몇 번의 전복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 작품만이 가진 여러 강점들과 적절히 잘 뒤섞여 의외로 높은 긴장감과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사건의 주범이 여러 차례 바뀌는 부분에서는 미디어와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함께 뒤섞이며 관객 본인이 마치 그 상황에 놓여진 듯한 느낌마저 받게 한다.

세상에 불행하지 않은 사건이 어디 있을까. 이 글의 대부분이 사건의 피해자인 마고의 심정을 헤아리는 지점에서 설명되다 보니 아빠인 데이빗의 부족한 점에 대해 주로 강조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를 잃은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고 자신도 역시 태어나 처음으로 딸이라는 존재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입장인 그에게 마고의 실종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사진을 옮겨 추모글을 만들던 영화 처음의 장면과 딸의 사망이 추정되는 시점에서 영상을 옮겨 추모 영상을 만들던 영화 후반부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부분에서 이 작품에 숨겨진 그의 비극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그는 딸의 실종 사건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고, 또 어떤 것을 얻는다. 아픔과 상처는 사랑과 관심과 마찬가지로 감추기만 해서는 지울 수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그는 너무 배려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본인이 꺼내는 것으로 인해 딸 마고가 어떤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직접적인 대화를 통한 결정이 아니라 홀로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기에 딸의 속내를 헤어리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딸과 함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처음에는 보내려다 지우고 말았지만, 앞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데이빗이 마침내 문자로 적었던 글 '엄마도 그럴 거야(Mom would be too)'라는 문장처럼.

 영화 <서치>의 포스터

영화 <서치>의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무비 서치 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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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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