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의 아폴론>은 청춘의 사랑을 표현한 영화로, 일본의 모던한 감성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원래 만화가 원작이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후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자칭 '만화를 좋아하는 덕후'라는 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영화를 보고 와서 작품에 사용된 엔딩곡의 제목을 알고 싶어 검색했더니, 애니메이션 <언덕길의 아폴론> 영상이 눈에 띄었다. 유튜브에 공유된 <언덕길의 아폴론> 영상 중 하나는 작품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것이었는데, 학교 축제에서 두 주인공이 재즈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영화관에서 이 장면을 볼 때도 혼자 고개를 좌우로 끄덕이거나 손가락을 움직였는데,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볼 때도 역시 이 장면은 좋았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 재즈 가락이 마치 살아서 재생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만큼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은 원작을 멋지게 재연한 작품이었다.

 언덕길의 아폴론

언덕길의 아폴론 ⓒ 노지현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은 도쿄에서 자란 주인공 니시미 카오리가 시골의 한 학교로 전학을 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니시미 카오리는 주변에서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에게 처음 말을 건 인물이 고마츠 나나가 연기한 히로인 무카에 리츠코다.

딱 보더라도 니시미가 리츠코에게 한눈에 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사랑에 빠지는 건 이렇게 한순간인 걸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역시 고교 시절의 첫사랑이라는 주제는 모든 세대에게 매력적인 소재이지 않을까 싶다. 모두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풋풋한 사랑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니시미는 리츠코에게 옥상이 어디 있는지 들은 이후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옥상문은 열리지 않았고, 옥상문 앞에서 잠을 자고 있던 또 한 명의 주인공 카와부치 센타로를 만난다. 바로, 여기가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두 사람과 히로인 한 사람이 얽히는 최초의 계기다.

피아노 클래식 레코드를 찾던 니시미는 리츠코의 소개로 리츠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를 방문한다. 거기서 리츠코와 이야기를 나누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이야기가 나와 레코드 가게 지하실에 있는 연습실을 보게 된다. 드럼을 신나게 연주하는 센타로의 모습은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이 장면은 세 사람이 한 장소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공유한 장면이었다. 센타로의 도발에 응하기 위해 니시미는 재즈 모닝 레코드를 빌려 집에서 필사적으로 연습한다. 홀로 재즈 연습을 하는 니시미가 학교 수업 시간 중에서도 책상을 건반 삼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센타로도 거기에 가세한다.

학교 수업 시간 중 펼쳐지는 두 사람의 재즈와 두 사람의 재즈를 눈을 감고 감상하는 히로인 리츠코. 이 모습을 보며 정말 '싱그럽다'라는 표현이 저절로 떠올랐다. 너무나 일찍 지나가 버린 학창 시절을 돌아본다면, 이런 장면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언덕길의 아폴론

언덕길의 아폴론 ⓒ 노지현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막을 올린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은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두 사람과 히로인이 향하는 감정의 방향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이래서 첫사랑이 아픈 건가 싶기도 했다.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은 하나하나의 추억이 되는 장면을 넘기면서 재즈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에서 들려준 재즈는 슬픔의 재즈가 아니라 오늘을 웃으면서 보내는,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등을 떠밀어주는 역할을 하며 분위기를 띄워줬다.

재즈는 원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독특한 리듬을 넣은 음악이라고 한다. 백인 사회의 차별 속에서 웃으며 지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리듬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나는 재즈는 '청춘'과 '첫사랑'과 잘 어울리는 음악일지도.

재즈를 조연으로 하여 첫사랑이라는 주연을 그려낸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일본 특유의 모던한 감성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즐기는 동시에, 오늘 하루 지친 피로를 덜어낼 수 있는 재즈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한여름의 추억은 바로 이런 거라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무언가. 오늘 무거운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가까운 극장에서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을 찾아보자. 영화 속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재즈와 이야기는 분명, 일상에 지친 당신에게 웃을 수 있는 힘을 되찾아주리라 믿는다. 영화 <언덕길의 아폴론>은 그런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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