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뮤지컬계는 비교적 마니아층 영향력이 큰 업계라고 말할 수 있다. 마니아들은 전문가에 버금가는 솜씨로 공연을 꼼꼼하게 관람하고 이를 분석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담론을 형성하기도 하며, 각종 사건·사고에 비판 여론을 형성하는 등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 성매매 전과자인 가수 이수가 EMK뮤지컬컴퍼니의 뮤지컬 <모차르트!>로 복귀를 시도했을 때 연극·뮤지컬 마니아들은 이수 하차를 요구하고 해당 공연을 전격적으로 보이콧했다. 끝내 이수는 <모차르트!>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또, 지난 2월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연극·뮤지컬 관객 #withyou(위드유)' 집회는 연극·뮤지컬 관객들의 저력을 보여준 좋은 예다.

 뮤지컬 <오! 캐롤> 주병진 프로필 사진

뮤지컬 <오! 캐롤> 주병진 프로필 사진ⓒ 쇼미디어그룹


 뮤지컬 <오! 캐롤> 예매 페이지 관람후기 캡쳐

뮤지컬 <오! 캐롤> 예매 페이지 관람후기 캡쳐ⓒ 인터파크


그런데 최근 연극·뮤지컬 마니아들이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지난 16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 캐롤>에서 배우 주병진의 성적인 대사가 화근이 됐다. 주병진의 첫 공연(26일)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비판이 시작됐다. 다행히도 다음 공연(29일)에서 지적됐던 대사는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제작사 측은 이 사태에 대해 31일 오전 현재까지 단 한 줄의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논란은 점점 확산돼 현재는 연극·뮤지컬 커뮤니티, SNS를 넘어 예매 페이지 관람 후기 란에도 분노를 담은 리뷰가 올라오고 있다.

뮤지컬 <오! 캐롤>은 60·70년대 로맨틱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결혼식 당일 신랑에게 바람맞은 주인공 마지와 그녀의 친구 로이스가 마지의 신혼 여행지였던 파라다이스 리조트로 함께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마지와 로이스는 그곳에서 리조트 가수 델, 작곡가를 꿈꾸는 게이브, 리조트 경영자 에스더, 20년간 에스더를 짝사랑 해온 MC 허비를 만나고, 여섯 남녀는 희로애락 속 사랑을 꽃피운다.

배우 주병진은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객석을 훑으며 "나는 예쁜 사람들이 많으면 말을 더듬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객석 앞줄에 앉은 여성 관객을 지목하며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라고 말을 걸며 이벤트를 진행하는 공연도 많았고, '오늘은 꽃밭이다. 그런데 호박꽃, 할미꽃...' 과 같은 식의 대사를 관객-배우 간 긴장감을 해소하고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공연도 많았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관객들도 변하지 않았는가. 관객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이를 희화화 하는 대사에 2018년 대다수의 관객들은 불쾌해 한다.

그러나 주병진은 외모 평가를 넘어 성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에스더와 허비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에스더가 "머리카락을 왜 그렇게 세웠냐?"라고 묻자 허비 역의 주병진은 "몸에서 세울 곳이 머리밖에 없다"고 받아쳤다. 찜찜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관객들은 자신이 유추한 바가 아니길 바랐을 테다. 그러나 그 바람을 보기 좋게 짓밟듯 주병진은 "다른 (세울) 곳도 찾을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덧붙였다.

도를 넘은 성적인 대사는 2막에서도 계속됐다. 레오나드가 홀로 리조트를 찾아오자 주병진은 "리조트에 여자친구도 없이 혼자 오셨어요? 현지 조달?"이라고 물었다. 이같은 성적인 대사는 <오! 캐롤>이 만 7세 이상 관람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대사들은 대본에 쓰인 게 아니라 오로지 주병진이 만들어낸 '주병진 표' 애드리브다.

책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종이에 남은 기록은 널리 왜곡된 인식을 낳기도 한다. 그럼 아무 자료도 남기지 않는 공연은 예외일까? 공연은 관객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관객은 기억 하나로 행복해지기도 하고, 기분을 망치기도 한다. 부디 뮤지컬 <오! 캐롤>측이 관객들 분노를 허투루 생각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진정 행복을 전도하는 공연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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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대단한 가치를 이야기하더라도 '재미'가 없는 극은 그 가치를 다 하기 힘듭니다. 그것을 소비해줄 관객이 없으니까요. 재미있게 쓰여진, 그러나 그 끝에는 오래도록 되새겨질 여운을 남기는 극을 찾기 위해 오늘도 객석에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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