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의 마지막 밤
 상두(박정복)와 희주(이진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상두(박정복)와 희주(이진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빅타임엔터테인먼트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 할 두 남녀가 마지막 하룻밤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희주와 상두. 두 사람의 이야기다.

박신양, 전도연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 <약속>의 원작이 바로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다. 1996년 이만희 작가가 써서 초연했는데 이후 영화로는 <약속>, 드라마로는 <연인>으로 각색됐다. 그중 영화 <약속>이 연극과 이야기가 동일하다.

여자 주인공 채희주는 유망한 의사다. 나이 많은 상두에게 반말을 쓰며 덤빌 정도로 활발하고 솔직한 성격이다. 남자 주인공 공상두는 조직폭력배 두목이지만 희주 앞에서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병원이었다. 희주의 첫 환자가 바로 상두였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면 의사와 건달이 아닌 수녀와 사형수가 나타난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꽤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 보이기도 한다. 연극은 이때부터는 과거로 돌아가 두 사람의 마지막 밤을 보여준다. 상두는 살인을 저질렀고 자수하러 가기 전 희주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바다에 나가 노는 등 소소하게 마지막을 보낸다.

사실 <돌아서서 떠나라>는 설명할 내용이 많지 않다. 스토리는 이게 전부다. 사건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장소가 바뀌지도 않는다. 다만 이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인물들이 서로를 사랑해서 안달 난 눈빛을 봐야한다. 대사를 전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 심지어 작품에는 그 흔한 배경 음악도 효과음도 없다. 잠깐 나오는 카세트 테이프 음악 말고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부다. 무대 가득 희주와 상두의 목소리, 숨소리가 채워지면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

지루하지만 마지막이라면 소중한 것들

이 작품은 2인극이며 대사의 양도 상당하다. 작품의 배경이 옛날이라 그런지 한 번에 못 알아듣는 말들도 꽤 있었고 전반적으로 잔잔하다보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이라면 흔한 일상도 다 중요하기 마련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하고 서로 쳐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들. 그래서 오히려 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한 점이 좋았다.

무대는 희주의 집이다. 창으로 된 문이 아주 큰 벽돌집이다. 집 옆으로 예쁜 벚꽃 나무도 있고 넝쿨은 지붕을 감싸고 있다. 처마에는 종도 달려있다. 작품처럼 아늑하고 조용한 시골집이다. 객석은 마치 희주의 마당처럼 느껴진다. 마당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소극장 공연을 좋아한다. 앞에 앉든 뒤에 앉든 관객들은 인물들과 동일한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작은 소품도 큰 효과를 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더 따뜻하게 들린다. 그리고 이런 작은 무대가 딱 <돌아서서 떠나라>에 안성맞춤이다.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는 관객도 인물들도 이 시간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다. 물론 희주는 상두가 자수한다는 걸 몰랐지만 아마 느낌으로 알았을 것이다. 이별이 다가오는 걸. 그래서 인물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마지막 밤을 보내는 시간들이 소중했다.

이 작품을 잘 보려면 단 한 가지만 잘 지키면 된다. 대사와 눈빛을 놓치지 않는 것. 특히 수녀와 사형수로 면회하는 첫 장면에서의 대사들이 과거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시간의 대사들과 다 이어지니까 잘 봐두는 편이 좋다.

몇 년 만에 찾아와서는 밥 먹고 자는 남자,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포스터.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포스터.ⓒ 콘텐츠플래닝


사랑하는 사람이 연락도 없이 몇 년간 사라졌다가 갑자기 찾아와서는 밥 달라고 해서 왕창 먹고 푹 자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라면 어이없었을 것 같다. 이건 뭐 자러왔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희주와 상두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마지막 날이라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편하게 쉬고 이야기하고 장난치고 싶을 테니까.

<돌아서서 떠나라>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 좋을 작품이다. 보고 나오면 서로가 소중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소중해지는 이 연극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공연은 9월 21일까지 대학로 콘텐츠 그라운드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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