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소리소문 없이 과거 명작 혹은 화제의 영화들이 속속 극장 재개봉을 통해 국내 팬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대개 2000년대 이후 근작에 집중되던 재개봉 영화들은 1990년대를 거처 어느덧 30여 년이 훌쩍 지난 1980년대 추억 속의 작품들로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멀티플렉스는 꿈도 꿀 수 없었다. 20~30만 관객만 동원해도 흥행작으로 대접받던 단관 시절이었다. 이렇다보니 막상 그 시절의 인기, 화제작을 실제 극장에서 본 영화 팬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개 VHS테이프, 또는 TV 재방송 등으로만 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근 디지털 마스터링 과정을 거쳐 새롭게 선보인 영화 <탑건>(8월 29일 재개봉)은 그 시절 추억을 지닌 이들에겐 작은 TV 화면 대신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법 하다.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쳐 실제 극장 스크린에 투사된 화면은 요즘 최첨단 장비로 촬영한 영화에 비할 바 못되지만 되려 거친 질감이 살아 있는 덕분에 과거 필름 시절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톰 크루즈, 유망주를 넘어 스타 배우로 발돋움

 영화 < 탑건 >의 한 장면.  당시 신인급 유망주였던 톰 크루즈는 이 작품을 계기로 스타 배우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영화 < 탑건 >의 한 장면. 당시 신인급 유망주였던 톰 크루즈는 이 작품을 계기로 스타 배우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리틀빅픽처스


잘 알려진대로 1986년 개봉한 <탑건>은 1980년대 할리우드 대표 흥행작 중 하나면서 OST 음반도 대성공을 거두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린 바 있다. <탑건>의 개봉 이전까지만 해도 톰 크루즈는 그냥 유망주 남자 배우 중 한 명이었다. 1983년 첫 단독 주연작 <위험한 청춘>이 성공하면서 밝은 미래가 올 줄 알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야망>(1983), <레전드>(1985)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자칫 배우로서 퇴보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순간에 만난 작품이 <탑건>이었다. 이후 톰은 같은 해 <컬러 오브 머니>를 비롯해서 <칵테일> <레인맨> <7월 4일생> <폭풍의 질주> 등 불과 5년 사이 작품성 혹은 오락성 강한 화제작을 연달아 내놓으며 세계적인 스타 배우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으로 생애 두 번째 극 영화 연출을 맡았던 토니 스코트 감독, <플래시댄스>와 <비벌리 힐스 캅>으로 주목 받았던 제작자 돈 심슨과 제릭 브룩하이머 역시 <탑건>을 발판 삼아 성공적인 영화 인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편 제리 브룩하이머, 톰 크루즈(제작 병행)를 중심으로 마일스 텔러와 제니퍼 코넬리 등 새로운 출연진이 가세, 2019년 7월 개봉을 목표로 33년 만의 속편 <탑건: 매버릭>이 제작에 돌입했다.

아날로그식 항공기 전투 장면, 극중 로맨스가 만든 재미 

 영화 < 탑건 >의 한 장면.  이후 톰 크루즈와 발 킬머(왼쪽)은 스타 배우로 발돋움 한다.

영화 < 탑건 >의 한 장면. 이후 톰 크루즈와 발 킬머(왼쪽)은 스타 배우로 발돋움 한다.ⓒ 리틀빅픽처스


영화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미 해군 최고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탑건스쿨을 배경으로 '매버릭' 미첼 대위(톰 크루즈 분)의 파일럿 성장기 + 연애담 + 적기와 펼치는 전투 등 평이한 구성을 담고 있다.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탑건>이 많은 영화 팬들에게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빼어난 전투기 공중전 장면에 있다. 당시 미 해군의 주력기였던 F-14 전투기의 실제 비행 장면을 대형 화면에 담아 박진감 넘치는 OST 사운드를 더해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보다 4개월 먼저 미 공군 F-16 전투기를 전면에 내세운 <아이언 이글>이 등장했지만 <탑건>보다 많은 제작비를 쏟아 붓고도 어설픈 이야기(고교생이 전투기를 탈취, 적군에게 포로로 잡한 조종사 아버지를 구출) 등으로 인해 흥행 참패를 맛봤다. 이후로도 많은 항공, 전투기 소재 영화가 등장했지만 <탑건> 만큼의 인기,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 해군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가상의 적기 미그-28(주: 실제 이런 기종은 없다. 영화에선 미 F-5를 적국의 전투기로 둔갑시켰다)을 상대로 F-14가 펼치는 화려한 공중 묘기급 전투씬은 지금 봐도 눈을 즐겁게 만든다.

이밖에 극중 매버릭과 교관 찰리(켈리 맥기리스 분)가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는 로맨스 장면이 더해지면서 <탑건>은 1986년의 대표적인 인기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영화 흥행 기폭제가 된 사운드트랙의 힘

 영화 < 탑건 >의 한 장면.  극중 매버릭(톰 크루즈 분)과 찰리(켈리 맥길리스 분)의 로맨스도 극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영화 < 탑건 >의 한 장면. 극중 매버릭(톰 크루즈 분)과 찰리(켈리 맥길리스 분)의 로맨스도 극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리틀빅빅처스


<탑건>은 빼어난 영상미와 함께 극중 쉴 틈 없이 울려퍼지는 다양한 삽입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발표 당시 빌보드 1위에 오른 발라드 'Take My Breath Away'(록그룹 벌린), 박력 있는 록 음악 Danger Zone'(케니 로긴스), 'Mighty Wings'(록그룹 칩 트릭), 오프닝을 장식하는 장엄한 연주곡 'Top Gun Anthem' 등 조르지오 모로더 등이 작곡한 다양한 록+팝 음악들이 영화의 인기를 부채질했다.

화려한 전투기들의 비행에 걸맞은 곡들에 힘입어 <탑건> 사운드트랙 음반은 미국 내에서만 900만 장 이상이 팔릴 만큼 대박을 내낸다. 이 작품의 성공과 맞물려 한동안 할리우드는 <플래시댄스>(1983) <비벌리 힐스 캅> <풋루즈>(1984) 등에서 비롯된 영화 흥행 + OST 음반 판매 두마리 토끼를 노리는 기획을 더욱 심화시킨다.

1980년대 레이거니즘 + 할리우드의 결합

<탑건>은 흥미진진한 재미를 선사했지만 작품의 내용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강한 미국'(이른바 '레이거니즘')을 주장하던 보수주의 정권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론 '미국 해군 PPL'로 보일 만큼  군 당국이 영화 촬영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 역시 이러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마치 "정의를 지키는 지구 수호 방위대"의 모습을 미국 국민들에게 보여줘야할 필요가 있었고 <탑건>은 이에 적합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가상의 적국(주: 영화에선 국가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이 동원한 소련제 전투기를 매버릭이 모는 F-14로 '원맨쇼' 수준으로 격추시키는 장면은 그 당시 레이건이 꿈꿨던 세계관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탑건> OST와 관련된 TMI

 영화 < 탑건 > 사운드트랙 표지

영화 < 탑건 > 사운드트랙 표지ⓒ 소니뮤직코리아


영화에 사용된 'Danger Zone'은 여러 가수/그룹에게 녹음 제안이 들어간 곡이지만 상당수 거부 당한 끝에 1980년대 'OST 황제' 케니 로긴스가 선택되었다. (영화 <캐디셱> <풋루즈>, <오버 더 톱> 주제곡 담당)  당시 이 노래 녹음을 거부한 음악인들은 록 그룹 토토, 알이오 스피드웨건, 캐나다 팝 가수 코리 하트 등이다. 주된 이유는 본인들의 자작곡이 아닌 외부 작곡가(조르지오 모로도, 팀 휘트록)들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에 빛나는 'Take My Breath Away'를 부른 그룹 벌린은 이 곡 외엔 이렇다 할 인기곡을 만들지 못하고 사라진 '원 히트 원더'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몇몇 가수들은 당시만 해도 전성기가 지난, 이른바 한물 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후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다.

극중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올드 팝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을 부른 1960년대 인기 팝 듀엣 라이처스 브러더즈의 멤버 빌 메들리는 이듬해 또 다른 흥행작 <더티 댄싱> 삽입곡 '(I've Had) The Time Of My Life'를 불러 빌보드 Hot 100 순위 1위를 차지한다.  이어 1990년엔 영화 <사랑과 영혼>에 'Unchained Melody'가 삽입되어 발표 25년 만에 빌보드 순위 재진입(13위)이라는 인기 역주행을 이뤄낸다.

역시 'Might Wings'로  OST에 참여했던 1970년대 인기 록 그룹 칩 트릭은 2년 후인 1988년 'The Flame'으로 데뷔 처음이자 마지막 빌보드 Hot 100 정상에 올라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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