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은 시각, 서울 시내 한 극장의 모습.

자정이 넘은 시각, 서울 시내 한 극장의 모습.ⓒ 신상미


한 편의 영화는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완성된다. 관객이 스크린에 투영된 결과물을 만나기까지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시킬 '기술'이 결합된 수많은 복잡한 과정들이 존재한다. 영화 후반작업만 해도 편집기사는 물론, 5~6명이 한 팀을 이룬 사운드 디자이너, 색보정 기사(Colorist) 등이 개봉 날짜를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을 두고 류승완 감독은 "영화 제작과정에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감독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편의 영화는 ▲기획 ▲선 제작 단계(Pre-Production) ▲본 촬영(Production) ▲후반작업(Post-Production)을 차례로 거치면서 완성된다. 즉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처를 찾고, 배우와 스태프를 섭외하고, 수개월에 걸쳐 영화를 찍는다. 편집과 색보정을 하고, 사운드를 입히고, 최종 프린트를 완성한다. 중간에 엎어질 위기도 여러 번 찾아올 수 있다.

이렇게 단계마다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 영화가 완성되면, 이제 관객을 만날 차례다. 한데 개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제작에 참여했던 감독과 스태프, 제작자, 투자자들이 으슥한 한밤중 컴컴한 극장에 모인다.

영화를 극장에 내걸기 전, 영화의 최종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시행하는 '기술시사'를 갖기 위해서다. 낮엔 극장이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밤중에 상영관을 하나 빌려 영화 관계자들끼리 모여 시사회를 갖는 것이다. 보통 자정이 훌쩍 넘은 새벽 3~4시 정도에 열린다.

기자도 개봉을 앞둔 한 영화의 기술시사회에 초대받은 적이 한 번 있다. 새벽 4시에 강남의 모 극장에서 기술시사를 여는데 올 수 있으면 오라는 것. 당시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며 사양했다. 또다른 후반작업 스태프는 "후반작업하면서 수백 번 봤다"면서 "대사를 외울 정도인데 또 봐야 하냐"며 웃었다.  

음향 시스템이 좋아서 언론배급시사회를 많이 하는 곳으로 유명한 강남의 모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영화인들 사이에서 기술시사의 단골 장소로 자주 꼽힌다. 이곳은 각 상영관마다 음향 시스템을 자주 체크하기 때문에 영화인들 사이에서 사운드가 좋다는 평판이 높다.

독립영화라면 굳이 상영관을 대여하지 않는다. 보통 영화제작의 최종 단계가 사운드 믹싱(sound mixing)이므로 음향 스튜디오에서 기술시사를 진행하곤 한다. 음향 스튜디오는 규모나 스크린 크기, 음향시스템이 극장과 동일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하기에 무리가 없다. 한 사운드 슈퍼바이저는 이에 대해 기자에게 "관객들이 영화를 만나는 공간이 극장이기 때문에 극장을 모델로 해 극장과 동일한 음향환경을 구축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후반작업 기술지원작으로 선정되면, 영진위로부터 사운드 믹싱과 색보정을 무료로 지원받는데, 영진위가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엔 서울 홍릉 본사 1층에 위치한 믹싱룸에서 기술시사를 자주 열었다. 수많은 장단편 독립영화가 이 믹싱룸을 거쳐갔다. 이 경우엔 상영관을 대여하는 경우와 달리 굳이 밤시간대에 하지 않는다고.

"기술시사회 갔더니 감독이 덜덜 떨고 있어서..."

 <천년여우 여우비> 포스터.

<천년여우 여우비>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장편 영화를 2편 연출·개봉한 A 감독은 기술시사에 대해 "관객만 빼고 다 모이는 자리다. 관객에게 내놓기 바로 직전이라고 보면 된다"며 "영화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참석한다. 개봉이 확정된 상태라면 영화홍보사에서도 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냉정하게 비판한다"며 "관객 앞에 뚜껑을 열어도 되는지 전문가들끼리 앉아서 까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부연했다.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의 사운드를 총괄한 정수연 사운드 슈퍼바이저는 기술시사와 관련한 일화를 한 음향 세미나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천년여우 여우비>의 기술시사회 도중 왼쪽 서라운드(Left Surround·LS) 스피커로 가도록 경로를 지정해 줬던 소리가 오른쪽 서라운드(Right Surround·RS) 스피커로 갔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스피커로 가야 할 소리도 반대편으로 갔다고. 그 순간 일제히 모든 스태프들의 시선이 정수연 믹서에게 쏠렸다. 정수연 믹서는 "순간 죄 지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됐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상영관 자체의 LS 스피커와 RS 스피커의 앰프 케이블이 뒤바뀌어 꼽혀 있었다고 한다. 영화의 최종 상태를 점검하는 기술시사의 성격상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일어 났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던 셈이다.

기술시사는 무엇보다 영화의 총책임자인 감독들이 가장 긴장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한 배우는 "기술시사회에 갔더니 감독이 덜덜 떨고 있어서 떨지 말라고 허벅지를 꽉 잡아줬다"며 미소지었다. 해당 영화는 기술시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그 해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그럼에도 기술시사는 감독들에겐 무거운 책임과 부담이 느껴지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장 관계자·제작사뿐 아니라 투자배급사에서도 참석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낮게 나오면, 후반작업을 다시 하거나 개봉이 불투명할 수도 있다. 상업영화라면 개봉일이 보통 투자 단계부터 정해지지만, 독립영화라면 기술시사회를 통해 개봉 가능성을 타진받게 된다.  

"배급사로부터 러닝타임 줄여달라 요청 올 때도 있어"

앞서의 A 감독에 따르면 보통 기술시사를 개봉 한 달 전에 끝내도록 하지만, 후반작업 일정이 늦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개봉 일주일 전에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는 "투자배급사로부터 개봉을 늦추더라도 편집을 다시 하라는 요청이 오기도 한다. 편집이 바뀌면 음악·음향·색보정까지 다 수정해야 한다. 계속 후반작업하면서 일정이 밀리고, 밤샘도 많이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배급사로부터 러닝타임을 줄여달라는 요청이 올 때도 있다"며 "러닝타임이 긴 걸 선호하지 않는다. 영화가 길면 시간이 애매하게 남을 수 있고, 100~105분 사이로 자르면 극장 입장에선 한 회차라도 더 틀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수많은 이들의 아이디어와 노력, 열정은 물론 생계까지 한 편의 영화에 모두 담기게 된다.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자본'을 필요로 하고 그것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덩치 큰 공룡 같은' 예술이자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A 감독은 "요샌 투자배급사들이 투자 단계부터 개봉일을 미리 정해놓기 때문에 후반작업이 지연되는 걸 꺼린다"며 "최악의 경우 기술시사에서 영화를 본 뒤 '배급 못한다'면서 엎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귀띔했다. 그에 의하면, 후반작업까지 30억 원을 들인 모 영화에 대해 투자배급사가 개봉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홍보마케팅 비용을 수억 원 들여 개봉해도 손해만 더 커질 뿐이라고 판단한 것.

A씨는 "미국은 우리와 달리 배급과 극장이 분리가 돼 있지 않나. 미국은 극장주가 개개인"이라며 "본래 기술시사회라는 건 극장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절차였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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