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다큐멘터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틸컷

다큐멘터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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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2018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바로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였다. 작품을 연출한 시몬 레렝 빌몽 감독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 간의 군사적 충돌을 통해 전쟁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2014년 봄에 시작된 전쟁은 1년 가까이 우크라이나 동부 전역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반복하다 돈바스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전선을 형성한다. 이를 돈바스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감독은 이 전선에서 불과 16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흐누토베'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10살 소년 올렉과 할머니의 일상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작품의 시작과 함께 카메라는 올렉과 그의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올렉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무덤으로 향하는 모습을 비춘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황량하기만 한 마을의 모습은 현재 이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이 곳은 현재 양 진영의 충돌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곳이며, 폭격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이야기다. 올렉이 어머니를 여읜 까닭도 그 때문. 그들의 삶에는 전쟁과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으며, 그 와중에도 일상을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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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몇 차례의 섬광이 터지는 장면을 통해 이 지역의 위험을 암시하지만 직접적인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 대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을 통해 이들이 느끼는 긴장을 전달하며, 전쟁의 공포가 사람을 얼마나 병들게 만드는지를 그려낸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곁에 있던 사람을 갑자기 잃게 되는 아픔과 내일을 꿈꿀 수 없다는 일의 절망에 대해서도 오롯이 전달한다. 바로 언덕 뒤가 교전지인 이 동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폐허가 된 공터가 늘어나며 스산해져만 간다.

마을 전역에는 각종 폭발물과 지뢰가 있고, 불발탄들의 위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탄피나 폭발물의 잔해를 찾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고, 심지어는 거래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전쟁 상황에서의 대피 훈련을 받고 폭발물 발견 시 행동 요령을 배운다. 아이들은 점차 군인의 모습을 멋있게 느끼고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전쟁의 가장 무서운 일은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전쟁의 그림자는 일상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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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폭격이 떨어질 때마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만, 소년 올렉에게는 그보다 사촌 동생인 야리크가 이모를 따라 마을을 떠나게 되는 일이 더욱 슬프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간접적인 이별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직접적인 이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올렉보다 더 어린 야리크에게도 마찬가지다. 떠나던 날 아침 짐을 싸주는 할머니 주변을 서성이며 그는 곁을 떠나기 싫은 마음을 괜히 이죽거리며 표현한다. 미운 행동이다. 하지만 정말 슬픈 건 남겨진 할머니와 올렉. 야리크의 가족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두 사람은 서로를 붙잡고 슬퍼한다.

포격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지쳐간다. TV에서는 정전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가 있지만, 이 마을에서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정전에도 계절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정전 협정의 선언과 마을에서 들리는 포격 소리는 계절이 다시 돌아오듯이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홀로 올렉을 지켜야만 하는 할머니도 일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포탄이 떨어지는 밤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불안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청소를 하며 기도하는 일뿐이다. 그것이 어디에 떨어질 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는 가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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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틸컷

다큐멘터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전쟁의 그림자가 집어 삼키는 가장 마지막 지점은 아이들의 감각이다. 환경에 쉽게 동화되는 아이들은 겁도 없이 전쟁의 환경에 조금씩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마을에 산재한 탄피와 잔해들을 수거하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은 병과 캔을 세워놓고 돌을 던져 맞추거나 직접 깨뜨리며 즐거워한다. 이 작은 폭력성은 점차 큰 호기심이 되어 총을 직접 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 대상은 개구리라는 생명체에게까지 총구가 겨눠지게 되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살생을 저지르게 된다.

정말로 무서운 일은 올렉을 포함한 그들에게는 조금의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폭력(전쟁)의 상황에 놓여져 있었고, 포격과 피격, 죽음과 같은 일들이 일상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너무나도 작게만 느껴졌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할머니가 그들의 폭력성에 제동을 걸어주는 인물이 되어 행위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만, 만약 그럴 사람조차 주변에 없었다면 아마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처음에 느껴졌던 아이들의 순수는 모두 사라져 버린 모습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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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배경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마을이며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소재로 담고 있기는 하지만,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코 이 지역의 분쟁이나 다툼에 대한 국소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과 역사를 떠나, 세력의 충돌로 인한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에 더욱 가깝다. 또,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게까지도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감독에 따르면, 작품이 완성된 2017년 11월을 기준으로 그간의 무수한 정전 협정에도 교전은 하루 단위로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무력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올렉과 할머니가 살고 있는 마을 역시 그럴 것이다. 서늘하기만 한 작품의 모든 러닝타임이 끝나고 기억을 떠나지 않는 것은 단 두 장면이다. 불안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의 대화 모두가 일상의 언어가 아닌 포격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간다는 것과 포격 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그리워진다던 10살 소년 올렉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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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틸컷

다큐멘터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감독의 표현이 참 인상 깊다. 밤마다 떨어지는 폭격에 하루 종일 울리는 총소리. 무엇 하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두려운 소음 속에서 개가 짖는 소리라도 들려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사람들은 반가워할 수 있지 않을까. 개가 짖는다는 건, 결국 그 곳에 사람이 아직 살고 있다는 소식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강대국인 러시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을 담은 표현이기도 하다. '모든 개는 자기 집에서는 사자다'라는 우크라이나의 속담처럼 자신의 영토 안에서 마음껏 포효해야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이틀의 표현처럼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곧 진정한 정전과 자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9월 1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영화 무비 다큐멘터리 EIDF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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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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