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4강, 결승골 주인공과 인사하는 박항서 감독 27일 오후(현지시간)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의 패트리엇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남자 축구 8강 베트남과 시리아의 경기.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승리한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이날 연장 후반 결승골을 넣은 응우옌 반 토안과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베트남 4강, 결승골 주인공과 인사하는 박항서 감독 27일 오후(현지시간)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의 패트리엇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남자 축구 8강 베트남과 시리아의 경기.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승리한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이날 연장 후반 결승골을 넣은 응우옌 반 토안과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쌀딩크' 박항서 감독과 한국축구가 운명의 재회를 맞이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과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29일 열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남자축구 4강전에서 결승 진출을 놓고 운명의 한판승부를 벌이게 된다.

김학범호는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에 일격을 당하는 등 다소 고전했으나 토너먼트에서 아시아의 강호로 꼽히던 이란과 우즈벡을 잇달아 제압하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2002년 부산 대회부터 5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한 김학범호는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어 금메달 2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우즈벡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느라 체력소모가 컸지만 선수단의 사기는 최고다.

베트남 국민 영웅' 된 박항서, 2002년 후 돌아온 아시암게임 준결승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이미 지난 1월 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최초로 결승 진출에 성공하여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항서 감독은 비록 우즈벡에 아깝게 분패하여 준우승에 그쳤으나 일약 베트남의 국민영웅으로 거듭났다.

당시 김봉길 감독이 이끌던 한국대표팀은 같은 대회 조별리그에서 박항서의 베트남을 2-1로 제압했지만 전반적으로 대회 내내 졸전 끝에 4강에서 무너지며 베트남의 선전과 달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김봉길 감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명예스럽게 사임해야 했다. 베트남 축구를 도약시킨 박 감독의 리더십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국내 팬들은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의미에서 박 감독에게 '쌀딩크'라는 센스 있는 애칭을 붙이기도 했다.

박항서의 베트남은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도 더 이상 축구변방이 아닌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베트남은 조별리그부터 8강전까지 5경기에서 아직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끈끈한 짠물축구를 과시하고 있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일본을 격파하고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바레인(16강전)과 시리아전(8강전)까지 3경기 연속 1-0 승리를 챙겼다. 아시안게임 준결승 진출 역시 베트남 축구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박항서 감독이 아시안게임 준결승 무대를 밟는 것은 무려 16년 만이다. 박 감독은 2002년 당시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준결승에서 이란에 승부차기 끝에 분패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특히 당시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여파로 축구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다. 그런 데다 박지성-이동국-이운재-이영표 등 A대표팀 출신 선수들이 다수 포진한 최정예 멤버로 구성되었기에 안방에서 당연해보였다. 당시 우승을 놓친 박항서 감독은 한동안 적지 않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한때 히딩크의 뒤를 이어 차기 A대표팀 감독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박 감독은 아시안게임 이후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고 다시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당시 박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나면서 축구협회와 갈등이 컸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박 감독이 축구계 비주류 출신이라 협회에서 차별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이후 박 감독은 K리그 경남-전남-상주 등의 감독 등을 역임하며 나름의 능력을 보여줬지만 주로 중하위권 클럽을 맡아서 크게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다. 최근 국내에서는 지도자로서 거의 끝물에 와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며 재평가를 받게 됐다. 그러자, 유능한 자국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고 활용하지 못한 한국축구의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자국 출신 감독과 겨루게 된 김학범 감독

미소짓는 김학범 감독 15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1차전 한국과 바레인의 경기. 다섯번째 골이 들어가자 김학범 감독이 미소를 짓고 있다. 2018.8.15

▲ 미소짓는 김학범 감독 15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1차전 한국과 바레인의 경기. 다섯번째 골이 들어가자 김학범 감독이 미소를 짓고 있다. 2018.8.15 ⓒ 연합뉴스


현재 한국 U-23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학범 감독 역시 박항서 감독과 비슷한 축구인생을 걸어온 인물이다. 김 감독은 2005년 성남에서 감독으로 데뷔해 K리그 우승까지 차지했고, 강원, 성남, 광주, 허난(중국)의 사령탑을 거쳤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령대별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2020 도쿄 올림픽까지를 목표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비슷한 세대인 박항서 감독과는 이번 K리그에서 여러 번 자웅을 겨루며 서로의 스타일과 장단점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축구계 주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축구 인생이 흡사하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이란-우즈벡 등을 연이어 상대하는 험난한 대진운을 겪어야 했던 데다 8강전은 연장까지 치르면서 체력 소모가 컸다. 그나마 한국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은 베트남 역시 시리아전에서 연장 승부를 치르며 체력적인 면에서는 크게 낫다고 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전력은 여전히 한국의 우위지만 베트남은 이제 더 이상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역대 아시안게임의 역사를 돌아봐도 한국은 어려운 경기를 승리로 이끈 이후 그 다음 경기에서 방심하다가 무너진 경우가 꽤 많았다. 1994 히로시마 대회 8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도 준결승에서 우즈벡에게 0-1로 덜미를 잡혔고, 2010년 광저우 대회 준결승에서는 UAE에 연장 접전 끝에 종료 직전 통한의 버저비터를 맞고 무너졌다. 이미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전 충격패를 통하여 예방주사를 맞았던 김학범호로서는 '선전 후 졸전'이라는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할 장면이다.

국제대회에서 자국 출신 감독을 적장으로 만나 호되게 당한 경우는 2008년 유럽선수권 당시의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별리그에서 압도적인 전력으로 연승 행진을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네덜란드는 8강전에서 전력상 한 수 아래로 꼽히던 러시아를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사령탑이 바로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러시아는 예상을 깨고 시종일관 네덜란드를 몰아붙인 끝에 연장전에서 3-1로 완승했다.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한일월드컵 4강을 이뤄낸 데 이어 다시 한번 히딩크 감독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를 이끌고 네덜란드를 이기는데 반역이라면, 나는 기꺼이 조국의 반역자가 되겠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16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에 실패하여 역적 취급을 받았던 박 감독은 이제는 베트남의 사령탑으로 한국의 앞길을 위협하는 최대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베트남의 쌀딩크로 불리우는 박 감독이 아시안게임에서 조국을 상대로 히딩크가 걸어간 길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승부다.

황의조 '아시안게임은 내 무대'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치카랑의 위바와 묵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16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황의조가 골을 넣은 뒤 손흥민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 황의조 '아시안게임은 내 무대'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치카랑의 위바와 묵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16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황의조가 골을 넣은 뒤 손흥민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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