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환갑이신 어머니와 나는 가끔씩 주말에 영화관 데이트를 한다. 누가 보면 굉장히 살가운 모녀사이로 보이겠지만 어머니께서 나와 영화를 보러 가는 건 두 달에 한 번 정도다. 영화관에 가자고 할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답변은, "엄마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너는 몸만 빠져나가면 다지?"이다.

어머니께서 낳으시고 길러 주신 지 33년 차, 집에 재정적인 여유가 없기도 하고 독립심이 강한 편도 아니라 죄송하게도 지금까지 얹혀살고 있다. 대신 월급을 바치고 용돈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반쯤 캥거루족(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위탁하여 생활하는 자녀)이 따로 없다. 가끔 돕는 집안일이 설거지와 방 청소 정도인 불효자는 여기서 대꾸할 말이 없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영화관에 가자고 할 때는 나름의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당일날 영화관에 가자고 하면 승낙받을 가능성이 낮다. 집안의 청결도와 세탁물 유무를 확인하여 어머니의 집안일이 적어 보일 때, 집안일을 거들면서 내일 영화관에 가자고 하면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님과 함께 영화 보러 갈 때, '꿀 팁'
 
 영화관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에 갈 때는 주로 한국영화를 선택한다.ⓒ 픽사베이


부모님 세대는 영화를 보는 것이 큰 마음 먹고 나가는 약속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부모님들에 따라서는 영화관에 가는 것을 큰 돈이 드는 사치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다. 자녀가 내는 영화표 값을 아까워하실 경우, 이때에는 주말 황금 시간대 영화티켓의 가격(1만2000원~1만3000원)을 말씀드리고 사용 중인 핸드폰의 통신사 할인 및 카드사 할인으로 절반 가격에 예매했다고 하거나,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올라온 저렴한 영화티켓의 가격을 이야기하며 이 표가 정말 저렴하다고 어필한다. 표를 아주 싸게 샀다고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묻지 않으신다.

우리 어머니는 다복한 8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나서 고생을 많이 하신 편이라 처음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 표값을 무척 아까워하셨다. 그래서 더 영화관에 가자고 하면 싫다고 하셨는데 몇 년 동안 꾸준히 모시고 갔더니 비교적 거부감을 덜어내셨다. 그래도 가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영화표를 아주 싸게 샀다고 자랑한다. 그러면 만족해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볼 수 있다.

부모님과 영화관에 갈 때는 걸음 속도가 생각보다 많이 느리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핸드폰으로 미리 확인한 도착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이동한다. 어머니께서 무릎이 아프시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등의 탈것을 주로 이용한다. 시간에 여유를 두지 않으면 마음이 다급해져서 부모님을 닦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건 부모님과 자녀 모두의 기분을 안 좋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나는 보통 성수기에는 표를 미리 예매해두고 30분 전에 이동하거나, 좌석이 많이 남는 한적한 영화관을 선택해서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한다.

어머니와 영화 보러 갈 때 주로 한국 영화를 선택한다. 아는 친구는 엄마가 총 쏘는 영화나 자동차 추격신을 좋아하셔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챙겨 본다는 이야기를 해서 기억에 남는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시는 데 외국영화의 자막을 따라가지 못하셔서 자막이 필요 없는 한국 영화를 본다. 한국 영화 중에서 괜찮은 영화가 나오면 부모님이 자동으로 떠오르고 그 영화는 친구들과 같이 보지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이유
 
 CGV 멀티플렉스 영화관 전경

CGV 멀티플렉스 영화관 전경ⓒ CGV


영화관에 갈 때 나는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꼭 사간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팝콘을 즐겨 먹지 않아서 영화관에서 간식을 사먹지 않는 편이다. 영화관 내부는 밀폐된 공간이라 공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커피나 콜라 같은 음료 외에 별도로 꼭 생수를 구입해서 들어간다. 영화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물을 찾아 허공을 헤매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 내가 가장 당황한 순간은 옆자리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는 어머니를 봤을 때였다. 일이 고단하셔서 그러셨는지 영화관에서 꿀잠 주무시는 부모님을 만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처음 몇 번은 기겁하고 마구 팔을 흔들어 깨웠는데,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코만 골지 않으시면 깨우지 않는다. 최근에는 그 영화가 재미있느냐, 없느냐의 척도로 옆 좌석 부모님이 얼마나 졸았는가로 판단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 어머니만 그러신가 했는데 회사 부장님이나 이사님이 자녀들이랑 같이 영화관 갔다가 졸아서 "아빠랑 다시는 영화 같이 안 볼 거야"라는 발언에 상심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다.

친구들이랑 영화관 갈 때는 영화 시작 전에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 가지만, 부모님과 갈 때는 영화 관람 후에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한다. 공복이 유지되면 영화관에서 덜 주무시기도 하고, 영화 시간을 신경 쓰며 급하게 식사하고 움직이는 게 부모님과 나 모두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영화 관람 후에 식사를 한다.

또래들과 영화관에 갈 때는 신경 쓸 게 많지 않다. 그냥 보고 싶은 영화만 맞으면 같이 보면 된다. 하지만 부모님이랑 같이 영화관에 갈 때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생긴다. 나는 이 과정이 싫지 않다.

어머니랑 365일 대부분을 한 지붕 울타리에서 만나도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른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한 번은 초콜릿 카페에 갔었다.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부모님이 좋아하실까 싶었는데 의외로 어머니가 정말 맛있게 드시면서 다음에는 언니랑 같이 오자고 하셨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진작 같이 올걸.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어머니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좋아서 나는 이 영화관 데이트를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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