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샤먼로드>의 한 장면. 성미와 꼴레뜨 두 샤먼이 길을 걷고 있다.

영화 <샤먼로드>의 한 장면. 성미와 꼴레뜨 두 샤먼이 길을 걷고 있다.ⓒ 강컨텐츠


어렸을 적 동네에서 굿판이 벌어질 때가 있었다. 굿을 보러 가거나 만신 집 아이랑 노는 것은 금기였다. 엄마의 야단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몰래 굿 구경을 가곤 했다. 현란한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신이 올라 춤을 주는 굿판의 절정은 만신이 맨발로 작두 위에 서서 추는 춤이다. 천이 쓱쓱 베어져 나가는 작두 위에 선 만신을 보며 혹여 피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을 죽이곤 했다. 마지막은 주로 무명 천 가운데를 찢으며 나가는 의식었다. 사람들은 지전을 시루떡이나 만신의 옷, 양쪽으로 찢겨져 나가는 무명 천 위에 놓곤 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엔 자연의 모든 현상이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교감 능력이 있거나 자연의 신비를 믿는 사람이 인간과 자연 사이에 매개자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들은 어떤 의미로 본다면 모두 샤먼이었다. 사실 샤먼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개인의 길흉을 점치는 일부터 마을의 길흉,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일의 일정 부분을 샤먼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한국 무당과 프랑스 샤먼의 우정

고대 사회에는 샤먼의 능력을 빌려 비를 부르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전쟁의 승패를 점치기도 했으며 망자의 한을 풀어 주는 진혼제 등을 지내기도 했다.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동신제의 경우 온 마을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준비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샤먼은 타인의 고통과 고민, 아픔을 들어주고 해원굿 등을 통해 망자와 산자 사이에 맺힌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지금은 민속 차원에서 굿을 보존하기 위해 무형문화제로 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무속이나 무당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피의 대상이나 미신 정도로 취급된다. 실제로 샤먼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왜 샤먼이 되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프랑스 샤먼 성미와 꼴레뜨의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샤먼로드>(감독 최상진, 제작 강컨텐츠)는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EBS 국제 다큐영화제인 EIDF 한국 다큐멘터리 파노라마 초청작이다. 81개국 1025편의 출품작 중 72편만 상영작으로 관객에게 선보였다.

<샤먼로드>는 2014년 프랑스 돌르(France Dole)에서 열린 세계 샤먼 축제에 참가한 한국의 샤먼 성미와 프랑스 샤먼 꼴레뜨가 서로의 길을 이해하고 꼴레뜨가 내림굿을 받는 과정, 서로의 나라에서 샤먼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한국의 수원에 사는 샤먼 박성미씨와 프랑스 돌르 지방에 사는 샤먼 꼴레뜨와 그녀들의 딸이 본 엄마의 이야기다.

"왜 하필 나야. 왜 내가 이 길을 가야해?"

한국의 샤먼 성미도 프랑스 샤먼 꼴레뜨도 평범하지 않은 샤먼의 길을 가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삶을 갈망했지만 운명은 그녀들을 샤먼의 길로 이끈다. 둘 다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성미씨는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미치거나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샤먼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내림굿을 받아 샤먼이 된다.

프랑스에 사는 샤먼 꼴레뜨는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고 자연으로부터 예언적 음성을 듣는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는데 죽기 전 그 능력을 그녀에게 물려준다. 그녀는 손을 이용해 병을 고치거나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는 테라피를 하던 샤먼이다.

원하지 않는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두 사람

 영화 <샤먼로드>의 한 장면

영화 <샤먼로드>의 한 장면ⓒ 강컨텐츠


2014년 프랑스 돌르에서 세계 샤먼 축제가 열리고 꼴레뜨는 한국에서 온 샤먼 성미를 본 순간 자매를 본 듯한 기시감을 느낀다. 한국에 와서 화성과 사찰을 둘러 본 꼴레뜨는 이미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시감에 전생에 자신이 한국의 샤먼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천주교 신자였던 꼴레뜨는 명상과 기도를 통해 성미의 신딸로 내림굿을 받기로 결심한다. 성미는 샤먼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시간을 두고 곰곰 생각해 볼 것을 권하지만 꼴레뜨의 확신에 찬 태도에 내림굿을 해 준다.

프랑스로 돌아 온 꼴레뜨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속에서 사용하는 방울과 부채 등의 도구를 사용하고 쌀과 향, 물, 무속 그림 등으로 단을 꾸미고 환자를 만날 때도 무속의 도구를 사용한다. 꼴레뜨의 딸 마리는 샤먼인 엄마가 내림굿까지 받은 사실에 대해 힘들어하며 꼴레뜨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샤먼으로 산다는 것과 그 삶이 이해되기는 쉽지 않다. 딸 마리는 엄마가 샤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산다. 그녀는 한국에서 내림굿까지 받은 엄마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 샤먼 성미의 딸 송이도 엄마가 샤먼이기에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산다. 성미는 내림굿을 받으며 입었던 옷을 미래의 사위와 손주에게 입히라고 딸 손에 들려주지만 송이는 샤먼의 딸인 자신이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집안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무속화를 보고 자란 송이는 현재 탱화와 무속화를 그리고 사찰의 문과 기둥 벽을 덧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두 샤먼, 샤먼 엄마를 두었기에 남들과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녀의 딸들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운명과 고민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고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우주는 물론이고, 많은 부분을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는데, 나 역시 어느 날 숨을 거두게 되면,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줌으로써 이어지길 바라요. 그것은 커다란 선물이 될 것입니다."

남들을 위로하지만 자신은 이해받기 어려운 샤먼의 길을 가는 꼴레뜨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신과 자연의 선물이며, 외할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숨을 거둘 때 자신이 지닌 능력이 자녀 누군가에게 선물로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두 샤먼의 내적 고민을 아내와 엄마의 관점에서 조명한 이 영화는 특별한 삶을 살아가며 사회문화적으로 소외받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이들 모두에게 격려와 응원가가 될 것이다. 스스로의 운명을 알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들판을 걸어가는 두 샤먼의 모습에서 뭉클한 감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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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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