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함께 한 소년이 자신의 방 한 편에 준비된 각종 도구들을 꺼내 웃는 모습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칼, 톱, 해머와 같은 무시무시한 도구들을 들고 이 장비들이 사람을 어떻게 해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제 막 10대가 되었을 것 같은 소년의 자연스러운 웃음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그는 이 작품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의 대상이 되는 오도넬 가족의 둘째 아들인 케빈 베리라는 소년이며, 각종 폭력으로부터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 작품은 타이틀부터가 상당히 자극적이다. 엄마가 아들을 왜 쏘았냐는 타이틀을 보면, 그 즉시 아들을 직접 총으로 쏜 엄마에 대해 다룬, 가정 폭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해 북아일랜드가 펼친 수십 년에 걸친 분쟁과 그 중심에 있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네이드 오도어 감독은 상호 조약이 이루어진 뒤에 북아일랜드 지역에 남은 문제와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어떻게 찾아오는지에 대해 찾아보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가 오도넬 가족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들이 살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데리'를 5년 간 촬영한 것은 모두 그런 이유였다.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2.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원래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요구하기 위해 조직된 군사조직이었다. 1921년 아일랜드공화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북아일랜드 지역이 영연방에 잔류하고, 영국이 무력으로 이 지역의 통치를 기정사실화하자 1969년부터 IRA는 영국에 대한 테러활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수십 년에 걸쳐 크고 작은 문제가 벌어지던 북아일랜드 분쟁은 1998년 Good Friday Agreement 조약을 통해 종결되며 평화를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 조약의 내용과 이행 사항에 반발한 급진적인 조직들은 The IRA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정신을 계승해 반체제 공화국군을 만들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오도넬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데리'는 그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성한 지역 중 하나이며, 그 지역에서는 The IRA의 의지에 따라 많은 일들이 암묵적으로 벌어지고 또 묵인되는 곳이다.

03.

처음에 등장했던 케빈 베리에겐 형이 한 명 있다. 올해로 19살인 그는 필립 오도넬.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오랜 수감 생활로 가족의 곁을 떠난 뒤, 그는 각종 마약과 술로 폐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약에 취한 채로 엄마를 죽인다고 협박하고 집안 물건들을 때려 부수는 등 환각상태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던 그는, 지역을 관할하던 The IRA 조직원들에게 낙인 찍혀 '처벌 사격'을 당하게 된다. '처벌 사격'이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피해를 주는 인물을 선택해 The IRA라는 조직이 직접 처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물론, 사격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총격이나 심한 폭행이 처벌의 방식이다. 작품의 타이틀인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그의 엄마인 마젤라 오도넬에게 그를 처벌하겠다는 공지를 하고, 이를 거역할 수 없는 엄마가 아들을 직접 처벌 장소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다리에 두 발의 총을 맞고 마을에서 추방당한다.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4.

직접 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이 역시 충격적이다. 아들이 어떤 일을 당할지 아는 상황에서 직접 데리고 가다니.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순히 이렇게만 봐서는 이 지역 '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제정신이 아니다. 공권력도 아니고 그럴 권한도 없는 이들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타인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 그에 공조하기 위해 가족이 나서는 것까지 말이다. 게다가 그 상황을 뻔히 다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어느 하나 이를 말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 지역에는 과거 IRA로부터 시작된 폭력성과 집단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 서로의 행동에 대한 암묵적인 이해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대의 믿음이 아버지대로 이어지고, 아버지대의 믿음이 아들 세대로 이어지는 세습과도 같은 양식들이다. 여기에, 과거에는 영연방이라는 공동의 적이 공식적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나, 상호 조약 이후 딱히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 또한 이 비이성적인 폭력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이 작품은 말한다. 분쟁의 과정에서 과거의 젊은 시절, 고통 받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해소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분쟁 당시 이 지역에서만 2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오도넬 가족의 엄마인 마젤라 오도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지금 자신에게 통보해 온 집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자신의 아들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의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자신이 직접 데리고 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위치에 총 몇 발 맞게 하는 것이 오히려 그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05.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폭력을 당한 이가 필립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휴는 그런 일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직과 직접 접촉하며 양 쪽의 대화 창구 역할을 하고, 도시에 만연한 마약 관련 범죄들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도 과거에는 IRA 출신으로 활동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현재의 The IRA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문제도 인식하고 있다. 과거의 집단이 갖고 있던 목적이나 상징성은 모두 잃어버린 채,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지역 사회를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는 조직의 이중성에 대해 말이다.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다큐멘터리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6.

필립의 아버지가 석방되고 며칠 뒤, 그 역시 The IRA로부터 총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실 그는 휴와 같이 IRA에 속해 영연방의 공권력에 대항하는 의미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수감된 것이었고, 당시 지역 사회는 그를 향해 영웅이라 칭송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한 시간이 넘는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부분으로, 현재의 The IRA라는 집단이 얼마나 그 목적을 잃어가고 있는지, 폭력의 대상을 잘못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5년의 시간이 지나고 오도넬 가족은 조금씩 평화를 되찾아 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역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처음에 등장했던 케빈 역시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의 모습을 회상하며 이제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어린 그의 꿈은 The IRA의 멤버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케빈은 묻는다. 마약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이기는 하지만, 총을 맞는 게 정당한 일이냐고 말이다. 영국과 경찰을 향해 총을 들었을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폭력배일 뿐이라고.

07.

시네이드 오시어 감독이 처음 오도넬 감독을 만났을 때 생각했던 진정한 화해와 평화 같은 건 이 마을에 없어 보인다. 휴와 같은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과거에는 유사한 조직의 멤버였을 뿐 아니라, 현재도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데리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자신들이 겪었던 아픈 기억만을 추억하며 그 분노를 드러내고 재생산해낸다. 그 폭력성이 외부로 향하지 못하니, 이제는 자신들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이 공격성은 타인을 지배하고 굴복시키는 용도로 활용되며 악순환을 이어나가게 하는 힘이 된다.

작품이 끝남과 동시에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라는 이 타이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아들을 쏜다는 의미에는 작게는 오도넬 가족의 이야기가, 크게는 작품의 대상이 되는 지역 '데리'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결코 아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이 순환을 끊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자신들의 사회 속에서 악습을 반복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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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국제다큐영화제 로고 EBS 국제다큐영화제 로고 ⓒ EBS 국제다큐영화제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31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영화 무비 EIDF 다큐멘터리 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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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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