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작품 <매그니피센트 7>의 주연은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며 주요 인물 중 한 캐릭터는 한국인인 이병헌이 맡았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러한 캐스팅을 두고 나의 주변에선 지인들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현대적인 시각에 맞게 캐릭터의 다양성을 고려했다는 쪽이 있었고, 그렇다고 고증을 망쳐서야 되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나는 심정적으로 전자의 말에 동의했으나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반박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도 '카우보이'들은 모두 '건장한 백인 남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화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가 보여준 이미지가 그랬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의심 없이 수용했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선입견과는 매우 달랐다. '할리우드는 어떻게 과거 서부를 화이트워싱했나'라는 <애틀랜틱> 기사에 따르면, 우리가 본 웨스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사실 비백인 카우보이들이 훨씬 많았다. 16세기 처음 북미로 건너와 식민지를 만들고 농장을 운영한 카우보이들은 모두 스페인 출신이었고 이들은 백인이 아니었다(심지어 우리에게 친숙한 '카우보이 스타일' 또한 이들의 유산이었다). 앵글로계 백인들이 북미에 건너온 것은 카우보이 문화가 정착한 지 200년이 지난 이후였다. 하지만 이때에도 카우보이들의 일이란 '부유한 백인이 다른 백인들에게 시키기 힘든 험한 노동'을 의미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당시 대부분의 카우보이들은 흑인 노예들이었다.

북미 미디어의 얄팍한 아시아인 재현

 영화 <매그니피센트 7>의 한 장면. 자본가의 횡포에 직면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뭉친 7인 7색 용병들의 모습. 이들의 개상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다.

영화 <매그니피센트 7>의 한 장면. 위기에 직면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뭉친 7인 7색 용병들의 모습.ⓒ UPI 코리아


말하자면 <매그니피센트 7>을 둘러싼 말들 중 그 어떤 것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 영화는 현대적인 시각에 맞춰 딱히 상상력을 발휘한 것도, 이 때문에 고증을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여전히 백인 캐스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19세기 말에는 이미 카우보이 세 명 중 하나가 멕시코 출신이었다. 영화에 그만한 비율의 히스패닉 배우들이 보이는가? 물론 모든 주연을 백인으로 채웠던 이전의 할리우드 서부 영화에 비하면 이 영화는 양반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실존 인물의 인종을 바꿔버리는 일도 있었다. 가령 이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존 웨인 주연의 <수색자>는 사실 흑인 카우보이 브릿 존슨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만일 이 사실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카우보이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었으며 그 시대 북미 서부 사막은 그들의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미디어의 얄팍한 소수자 재현이 미치는 악영향의 극명한 사례 중 하나다.

가령 북미 TV쇼에서의 아시아인 재현에 대한 2017년도의 연구에 따르면, 방송에 등장한 동양인 캐릭터들은 아직도 스테레오 타입화 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북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로 여겨지거나, 위험한 악당 혹은 괴짜로 그려졌다. 남성의 경우 '남성성'을 상실한 존재'로 여성은 '이국적인 성애적 존재'로 묘사되었다. 심지어 아시아인이 맡아도 이상하지 않을 주도적인 캐릭터를 백인 캐스트가 꿰찬 사례도 있었다. 아무리 배경이 북미라지만 굳이 야쿠자의 리더나 중국어를 쓰는 중국 전문가가 백인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미디어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낳은 악영향

북미 연예계의 이러한 비백인 묘사는 크나큰 악순환을 낳는다. 이들은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의 편견에 휩싸인 재현 행태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아마 나처럼 그런 선입견을 '사실'로 착각한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다 사실에 가깝게 혹은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된 비백인(혹은 소수자) 캐릭터들을 사람들이 낯설게 여기도록 만든다. 자신이 아는 소수자의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의 개연성을 위해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반면 백인 배우가 심지어 '외계인' 역할을 맡아도, 이를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한국계 배우 존 조가 단독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서치>의 감독이자 작가인 아니쉬 차간티는 이렇게 말한다.

"긴 시간, 영화의 내용이 주인공의 정체성을 정당화 해주는 일이 필요했어요. 특히나 백인이 아닌 사람을 캐스팅 할 때, 왜 그 캐릭터가 거기에 있을 수 있는지 영화의 줄거리가 설명해주어야 했죠."

 영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의 한 장면. 핀(존 보예가, 왼쪽)은 로즈 티코(켈리 마리 트란, 오른쪽)를 만나 다른 성격의 인물로 변한다. 주인공 레이를 돕는 인물로 흑인과 동양계 여성이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의 한 장면. 핀(존 보예가, 왼쪽)은 로즈 티코(켈리 마리 트란, 오른쪽)를 만나 다른 성격의 인물로 변한다. 주인공 레이를 돕는 인물로 흑인과 동양계 여성이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물은 얼마전 배우 켈리 마리 트랜이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성명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녀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저항군인 로즈 역할을 맡았고 이후 엄청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개인 SNS에 업로드한 포스트를 삭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영화의 완성도나 캐릭터의 성격과는 별개로 스타워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트랜이 '아시아인'이자 '여성'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발표된 성명에서 트랜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은 영웅, 구원자, 선언된 운명의 계승자이라고 가르친 세상이 내게는 이야기의 배경에 존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의 손톱을 다듬고, 병명을 진단하고, 연애사를 도우며.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그들이 날 구원하리라 믿으며."

백인 주인공의 손톱을 다듬어주는 아시아인 미용사, 병명을 진단하는 흑인 의사, 연애사를 도우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이 캐릭터, 나는 이 인물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나 TV쇼에서 선심 쓰듯 소수자들에 할당해준 배역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식의 재현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아마 트랜이 과도한 공격에 시달린 것은 그녀가 이 '지정석'을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사회에서 '특수'한 '예외'인 그녀는 결코 한 영화의 얼굴이 되어 극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보편적' 인물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트랜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영화의 완성도를 망가뜨린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대중문화의 소수자 묘사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로즈 티코' 역을 맡은 배우 켈리 마리 트란. 최근 악성 댓글로 인해 SNS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로즈 티코' 역을 맡은 배우 켈리 마리 트란. 최근 악성 댓글로 인해 SNS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리고 스크린 밖에서 켈리 마리 트랜은 어떤 일을 겪었냐고? 아홉 살에 그녀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을 못 견뎌 또래 속에서 베트남어를 쓰기를 포기했다. 열일곱 살 트랜이 남자 친구와 방문한 식당에서 완벽한 영어로 주문하자 웨이트리스는 '교환 학생을 데리고 있다니 귀엽다'는 말을 했다. 미국 사회에서 그녀는 베트남어를 쓰는 미국인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며 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아시아인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납작한 이미지와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 그녀는 기껏해야 마트 계산대에서 서툰 영어로 손님을 응대하는 이민자여야 했을 것이다. 그 기분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나 역시 아직도 이성애자들을 만나면 '내가 생각한 게이의 이미지와 달라서 놀랬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캠페인과 운동만으로 소수 집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 대중문화에서 소수자에 대한 재현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CW채널에서 제작될 드라마 <배트우먼>의 주인공 배트우먼은 성적 지향이 동성애로 설정되어 있다. 같은 채널에서 제작 중인 <슈퍼걸>에서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히어로를 트랜스젠더 배우가 연기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 <서치>에서 존 조는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가 특별히 아시아인이어야 할 이유가 별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의 한 장면

영화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의 한 장면ⓒ Warner Brothers Pictures


또한 최근에는 모든 캐스트가 아시아인인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유의미한 상업적 성과도 거두었다. 연예인 에릭남은 이 영화를 상영하는 한 극장의 표를 모두 구매해 팬들에게 나누어주며 이런 멘트를 남겼다.

"주류 미디어가 아시아인들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일에 우리는 질렸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있고, 유능하며, 영향력이 있고, 중요한 존재임을 이해하는 결정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원한다. 우리는 단지 괴짜 공학도, 수학 너드, 닌자 암살자만이 아니다. 우리는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섹시하고 더 많은 것이 될 수 있는 존재다."

이를 한 문장으로 옮기자면 '우리도 다양한 얼굴을 지닌 사람이다'가 아닐까? 사회적 소수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이런 설득을 하고 있어야 하는 점에 망연자실 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라도 변화를 향한 목소리가 등장한 것에 기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트랜이 성명에 쓴 것처럼, "우리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배우 켈리 마리 트란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성명. 그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출연 후 일부 팬에 의해 '인종차별·성차별'이 담긴 SNS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바 있다. 성명에서 켈리 마리 트란은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I am not giving up)"이라 밝혔다.

배우 켈리 마리 트란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성명. 그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출연 후 일부 팬에 의해 '인종차별·성차별'이 담긴 SNS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바 있다. 성명에서 켈리 마리 트란은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I am not giving up)"이라 밝혔다.ⓒ 뉴욕타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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