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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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살아간다는 일의 딜레마는 언제나 유한하다는 사실과 유한성의 정도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삶이 유한하지 않다거나, 언제쯤 끝이 나는지 정확히 알 수만 있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임이 분명하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삶의 가장 화려한 때, 젊음이 사라지고부터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에게 기대되는 수명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노화가 시작되고 개인의 신체적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 느껴질수록 더욱. 일반적으로 이때가 되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하지 못한 선택에 대해 많은 후회를 갖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들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한다. 살아온 방식에 대한 익숙함과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이 갈수록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클린 쥔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에는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삶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 기존의 삶을 바꾸려는 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생을 편하고 안락한 가정에서 평균의 삶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피어슨씨와 자신을 '누레 오치바'– 온종일 마누라에게 딱 들러붙은 은퇴한 월급쟁이를 일본에서 일컫는 용어– 라고 설명할 정도로 은퇴 후 방황하는 야마다씨. 그리고, 과거에는 영광을 누렸지만 시대가 지나 산업 자체가 몰락하고 찾는 관객이 사라져 자신의 선택에 대해 회한을 느끼는 드래그퀸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스티브씨. 세 사람은 출신 국가도, 직업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단 하나. 새로운 삶을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 스틸컷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2.

작품이 대상으로 하는 세 사람이 서로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 선택된 세 사람이 감독의 의도에 따라 하나의 작품에서 동일한 주제 아래 활용되고 있을 뿐. 이제 이 나이에는 죽어도 이상할 게 없으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생각하다 보면 무섭고 두려워진다는 것만이 그들이 공유하는 감정이다. 필시 그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이 작품의 내용을 따라가는 일은 생각보다 조심스럽다.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가 억눌러왔던 지점을 들여다보는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피어슨은 자신의 안전한 집을 팔고 캠핑카를 구해 서부 캘리포니아 사막 지대를 향한다. 그 동안 자신의 삶에 존재하지 못했던 즐거움과 내면의 남성다움을 지금이라도 찾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평생을 몸 바쳤던 회사에서 정년퇴직하고 난 뒤 갑자기 혼자가 되어 사회에서 밀려난 느낌을 받은 야마다 역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고령자 모임에 들어간다. 이제 와서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스스로 '잘했어'라고 자랑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18시간씩 일하고 술과 담배를 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시간도 없이 타인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스티브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평생을 지냈던 영국을 떠나 스페인의 베니돔으로 향한다.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 스틸컷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3.

각자가 선택한 방향과 방식은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은 자신이 느껴온 어떤 결핍을 지금에라도 적극적으로 메우려는 삶의 의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내던지고 월마트 주차장에서 잠들기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과 새로운 재교육 과정을 버텨야 하고 평생 해 본 일이 없는 타인 앞에 나서는 일에 도전하는 모습, 여전히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웃음을 팔지만 자신에 대한 회의감에 무너지지 않고 맞서 이겨내려는 모습이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는 이유다. 이는 단순히 그들과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인지하고 그에 뛰어드는 용기는 나이나 국가와 같은 외면적인 정보와는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갖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를 과거로부터 찾아내기 위해 하는 시도들 역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야마다씨와 스티브씨의 경우에는 평생을 몸담아 왔던 일이 외부의 변화에 의해 급격한 충격을 받은 상황. 모든 것들이 문제없이 잘 움직이던 시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부딪힌 것과도 같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를 느끼는 것은 깊은 정서적 무력감으로도 이어진다. 이 부분은 작품의 말미쯤에 등장하는 스티브씨의 공연 내용, 알츠하이머를 희화화한 부분에 등장하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기억이 날까?'라는 그의 대사는 자조적인 심리가 투영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 스틸컷

다큐멘터리 <올모스트 데어> 스틸컷 ⓒ EBS 국제다큐영화제


04.

영화에 등장하는 노인 부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늙는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왜 다들 그거 갖고 난리죠?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는 거예요."

물론이다. 늙는다는 것은 생명체라면 종과 무관하게 어떤 대상이든 겪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제와도 같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몸소 느끼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급격히 인지되기 시작하는 삶의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은, 그것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점차 거대해져서 과거에 하지 않았던 것과 과거에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후회를 부풀리고 만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지만, 기준점을 지금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놓게 하면서 말이다.

물론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도 당장 실행하지 못하는, 하지 못하면 미래에 후회할 것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많은 변명들로. 어쩌면 그래서 세 사람의 나아가는 모습은 이 작품의 대상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들의 행위로 인해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현재의 행동에 대한 또 다른 아쉬움이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택이라는 것은 반드시 기회비용을 낳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평생을 다른 꿈 꿔본 일이 없는 이들이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한번쯤, 자신의 새로운 삶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것, 또 그것만큼은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 바로 <올모스트 데어>다.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오는 25일(16시 30분)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더부티크 102호에서 상영.
영화 무비 다큐멘터리 EIDF 올모스트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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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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