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좋아하지만 극장을 잘 가는 편은 아니다. 아니, 영화를 보는 횟수에 비해선 거의 안 가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일주일에 최소 2편 이상 영화를 보지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건 일년에 고작 몇 번 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를 즐기지 않고 작은 영화를 즐겨보기에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축인 것 같다.

간혹 극장에 가면 남다르게 설렌다. 누군가에겐 허구한 날 가는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 누군가에겐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터, 누군가에겐 심심하면 들락거리는 놀이터인 극장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몇몇 극장에서의 일이, 그것도 꽤나 오래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많은 기억이 없는 게 이런 식으로 유용하기도 한가 보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2학년 때인 <여고괴담>이다. 찾아보니 1998년 5월 말에 개봉했다고 하는데, 1998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기억이 정확하다. 학교에서, 우리반 전체가 가서 봤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고, 충격적인 몇몇 장면만 기억난다. 그 유명한 최강희의 점프컷 등등...

왜인지 몰라도 그때 그 기억,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으로 봤던 기억이 그리 좋지는 않다. 지금 나에게 극장은 완벽한 혼자만의 영화 보기가 가능한 공간인데,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다. 중2 친구들이 모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떠들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액션을 취하고.

대지극장에서의 <쥬라기 공원 3>
 <쥬라기 공원 3> 포스터.

<쥬라기 공원 3> 포스터.ⓒ UPI코리아


그 이후 기억에 크게 남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쥬라기 공원 3>이다. <쥬라기 공원 3> '따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건 아니고, 지금은 없어진 '대지극장'과 가족들끼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 때문이다. 아, 아빠는 없었고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가서 봤다. 동생은 당시 중3이었다.

당시가 2001년, 2003년에 없어진 대지극장의 마지막 즈음이었다. 대지극장은 미아삼거리(지금은 '미아사거리역'이 된 '미아삼거리역' 주위를 통칭)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지금은 주위에 백화점이 두 개, 종합쇼핑몰이 두 개, 이마트가 한 개 있는 강북의 중심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당시에는 대지극장이 전부였다.

서대문의 화양극장, 영등포의 명화극장과 더불어 홍콩영화 3대장이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곳에서 홍콩영화를 본 적이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대지극장에 관한 말을 들었고, 수없이 자주 대지극장을 지났으며, 수없이 대지극장을 갈 수 있었지만, 정작 나는 딱 한 번 <쥬라기 공원 3>을 보러 대지극장에 갔을 뿐이다.

동생이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좋아했다. 1, 2탄은 집에서 비디오로 봤었을 텐데, 3탄만은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했었을 테다. 당시 우리집은 아빠, 엄마가 교대로 보시는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평일은 고사하고 주말조차 온가족이 외부에 나가서 뭘 해본 기억이 없다. 세 가족이라도 극장 나들이를 한 건 굉장한 일이었다.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
 대지극장과 미아 CGV

대지극장과 미아 CGVⓒ none


1965년에 생겼다는 대지극장은 2003년에 없어졌다. CGV가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을 1993년 강변에 열고, 롯데시네마가 1999년 일산점에서 시작해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메가박스가 동양 최대 규모의 코엑스점을 2000년에 오픈했으니 오래 그 자리를 버텼다고 볼 수 있다.

대지극장이 사라진 곳에는 복합쇼핑몰 트레지오가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 CGV가 들어섰다. 2007년의 일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곳은 망했다. 북적이던 옛 느낌, 상징과도 같았던 옛 명성을 잃었다. 물론 영화를 보러 가면 사람은 많은 편이다. 여느 영화관 건물처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쥬라기 공원 3>을 보러 간 이후에도 엄마와 두 번을 더 극장에 갔다. 당연하게도 극장은 그곳, 옛 대지극장 자리에 들어선 CGV 미아였다. 두 번 모두 조조로 봤는데, <인셉션>과 <관상>이었다. 엄마도 아주 재밌고 알차게 보았다고 하셨으니, 엄마의 영화보는 눈썰미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함께 가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 번은 서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은 근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에 갔다. 그 또한 엄마, 나아가 가족과 처음 가보는 패밀리레스토랑이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도 없어졌다. 여러 모로 아쉬움 가득 남는 엄마와의 영화 데이트다.

하고 싶은, 해야 하는 것들

더 늦기 전에 엄마, 아니 가족들과 극장에 가보고 싶다. 아빠는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지만, 영화를 보진 않더라도 극장이란 델 함께 가보고 싶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히 한 번쯤 했어야 하는 수순이 아닌가 싶다. 나도 나지만, 부모님도 부모님이었다. 무심한 걸까,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정말 무섭게 빠르다. 나의 만만했던 미아사거리역이 말이다. 빠르게 바뀌고 있다. CGV 미아도 도태되면 어느새 없어져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가족들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게 아닌가. 꼭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지만, 이왕이면 그곳이면 좋겠다 싶다. 그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에게 '대지극장'은 특별하니까.

무엇이든, 누구든, 사라지기 전에 해야 한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테고,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다. 나에겐 그게 가족들과 함께 옛 대지극장 자리에 있는 CGV 미아로 영화를 보러가는 거다. 소박하다면 한없이 소박하지만, 나에겐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미뤄온 일이고 결코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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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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