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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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국제다큐영화제 로고ⓒ EBS 국제다큐영화제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다큐멘터리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가 세분화되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목적이나 방향성, 의도 여부 등에 따라 나누어진다.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것도 있고,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도 있고, 개인의 삶을 통해 일반화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목적을 갖고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구분하는 경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극의 연출이 얼마나 개입되느냐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에 의해 좌우되며, 실화나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더라도 각색이 개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존하는 필름이나 실제 인터뷰와 같은 영상을 삽입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활용의 문제일 뿐 극의 연출을 뒤집을 정도까지는 쓰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있는 사실 그대로 활용된다. 물론 감독의 성향이나 작품의 의도에 따라 그 방향성이 좌우되며 하나의 흐름을 갖게 되지만, 이 경우에도 그 방향성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이번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심사위원장을 맡은 고든 퀸은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가 다큐멘터리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잣대라고 밝혔다.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인가'가 영화라면, 다큐멘터리는 '전달(Delivery)'에 그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02.

 다큐멘터리 <모리야마 씨> 스틸컷

다큐멘터리 <모리야마 씨> 스틸컷ⓒ EBS 국제다큐영화제



"비행기도 보트도 한 번 타본 적 없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일본도 도쿄도 떠나본 적이 없죠. 그는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시작되는 이 작품 <모리야마 씨>는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 일라 베카와 루이즈 르모안 두 감독이 2016년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모리야마라는 이름의 남자와 일주일 간 함께 지내며 제작한 작품이다. 모리야마 씨와 감독 두 사람 모두 노이즈 음악(소음을 하나의 요소로 도입시킨 음악의 한 장르)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 중에서도 일본의 대표적인 노이즈 음악 뮤지션인 오토모 요시히데를 동경해 왔다는 이유 하나로 이 다큐멘터리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앞서 설명했던 어떤 큰 목적, 사회적 문제의 고발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함도 아니다. 단순히 감독의 호기심과 취향의 문제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그 시작이 즉흥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즉흥적이라는 지점에서 다양한 관점을 던져주며 관객들을 매료시켜 나간다.

03.

작품의 대상인 모리야마 씨는 10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함께 살던 집을 해체한다. 집의 구조적 요소인 방과 화장실, 부엌과 거실과 같은 모든 공간이 각각의 공간으로 나뉘어 외부를 통하지 않고서는 연결될 수 없도록 만든 것. 방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바깥 골목이 그대로 보이는 외부 통로를 지나야 하는 식이다. 또한, 그의 모든 집은 전면 유리와 같은 부분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또 밖에서 안으로 모두 통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일상의 사물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허무는 행위임과 동시에 스스로를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되려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는 집을 해체하면서 모두 10개의 구조물을 만들어 본인이 4개의 구조물을 활용하고 나머지 6개는 외부인들에게 임대를 주는 식으로 활용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내 공간을 빌려주고 비용을 돌려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음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소음을 하나의 요소로 도입시켜 만든 음악 장르인 노이즈 뮤직처럼, 그 역시 기존에 있던 형식을 파괴해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을 창조해 낸 셈인데, 이는 마치 건축물과 외부 공간의 경계의 해체를 시도한 것처럼 느껴진다.

04.

 다큐멘터리 <모리야마 씨> 스틸컷

다큐멘터리 <모리야마 씨> 스틸컷ⓒ EBS 국제다큐영화제



그런 그의 삶을 단순히 그려내기만 했다면 이 다큐멘터리가 갖는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두 감독은 그런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신들이 연출하는 작품 또한 그의 삶과 아주 유사하게 매치시켜 나간다. 작품 내부(대상)의 모습과 작품 외적인 모습의 일치를 통해 관객이 작품이 바라보는 대상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작품 자체가 낯설어 보일 수밖에 없다.

작품은 마치 조각난 천을 모아 이어 붙인 듯,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 하다가 그와 얽혀 있는 장면들을 스틸컷처럼 모아 보여주는 장면들이 몇 차례나 이어진다. 그가 책을 사랑한다는 대목에서는 집안 곳곳에 놓인 책을 보여주고, 이 작품 촬영 열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강아지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마을 골목마다 놓인 강아지 모형을 들여다 보는 식이다. 그의 집이 전면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 것마냥, 날 것 그대로의 연출도 감추지 않고 모두 드러낸다. 일본인 모리야마 씨와 이탈리아인 일라 감독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장면들은 물론, 민들레 홀씨를 날리며 좋아하는 장면들도 말이다.

05.

모리야마 씨는 촬영 막바지에 이르러 두 감독과의 헤어짐을 앞두고 일본인들만의 독특한 사유 중 하나인 '와비사비'를 알려준다. 와비사비란 성장하고 쇠퇴하는 미완의 인생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삶의 한 방식으로, 이는 관객들이 작품 속 모리야마 씨의 행동을 보며 어렴풋이 느껴왔던 어떤 분위기의 총체와도 같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힌 적이 없었으며, 촬영 당시 35도의 무더운 날씨에도 그저 묵묵히 감내해내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리야마 씨>가 하고 싶은 말은 삶의 즉흥성에 대한 것과도 같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을 어머니와 아끼던 반려동물을 떠나 보내야 했던 두 번의 이별은 물론, 집을 해체하며 6개의 구조물을 임대하고 만난 사람들(세입자)과의 관계, 노이즈 뮤직이라는 독특한 취향으로 시작된 이 다큐멘터리까지. 그의 삶에 찾아 온 모든 일들이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이 모든 것들을 외부의 사건으로부터 개인이 겪는 피동적 상황,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것들을 '즉흥성'으로 바꿔내는 힘은 역시 모리야마 씨의 삶의 태도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06.

 다큐멘터리 <모리야마 씨> 스틸컷

다큐멘터리 <모리야마 씨> 스틸컷ⓒ EBS 국제다큐영화제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매미에 관련한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러닝타임 내내 주시하던 모리야마 씨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부분인데 갑자기 등장한 이 장면.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열흘 밖에 못 살지만 땅 속에서 3년을 견디는 매미에 대한 마을 주민의 설명은 어쩐지 모리야마 씨의 삶을 설명하는 듯 하다. 작품 속에 모두 담기지는 않았지만, 모리야마 씨가 지금의 삶을 살기까지 어쩌면 매미의 삶과 비슷한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듯한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작품에서 유일하게 모리야마 씨의 행위로부터 설명되는 것이 아닌, 두 감독에 의해 표현되는 장면이라는 점 역시.

일주일간 모리야마 씨와 함께 지내며 이 작품을 완성시킨 두 감독은 그의 삶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즉흥적으로 시작된 다큐멘터리의 시작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게 들리는 한 문장이다.

"그의 집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오는 22일(10시 30분), 24일(12시 30분) 양일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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