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16강 진출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대한축구협회(아래 KFA)는 계약 기간이 만료된 신태용 전 감독의 뒤를 이을 새로운 감독을 찾아 나섰다. 월드컵 결승전 이후 1달의 시간 동안 여러 인물을 접촉한 결과 최종 선임된 감독은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였다.

벤투는 8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 혼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자주 팀을 맡았던 코칭 스태프들을 대동했는데,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를 비롯하여 필리페 코엘류, 비토르 실베스트레(골키퍼 전담 코치), 페드로 페레이라(피지컬 트레이닝 코치) 등과 함께 왔다.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 벤투, 2002 월드컵으로 맺어진 인연

사실 벤투 감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다른 포르투갈 출신 선수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과 밀접한 인연을 갖고 있다. 바로 2002년 대한민국/일본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로 경기에도 출전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포르투갈과 대한민국의 경기는 그들에게 '흑역사'가 됐다.

보통 당시 개최국인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봤던 팬들은 벤투보다는 당시 슈퍼 스타였던 루이스 피구나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했던 주앙 핀투나 베투 등 다른 선수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핀투는 경기 초반 박지성(현 KFA 유스 전략 본부장)에게 거친 양발 백태클을 범하면서 심판으로부터 즉각 퇴장 조치를 받았다. 베투 역시 후반전에 이영표(현 KBS 해설위원)에게 반칙을 범했다가 경고 2회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당시 1승 1패로 D조 3위에 있었던 포르투갈은 개최국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자력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같은 시각 조 2위였던 미국이 폴란드에게 발목을 잡히면서 포르투갈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2위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담감에 과격한 플레이를 펼쳤던 포르투갈은 선수 2명의 퇴장으로 인해 수적 열세에 놓이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 대표팀은 후반 25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박지성이 가슴으로 받아 오른발로 한 번 걷어 올려 포르투갈의 수비수를 한 번 제친 뒤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는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이때 이영표의 앞에 서 있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바로 벤투 감독이었다.

1969년 생의 벤투는 1992년 A매치에 데뷔하여 총 35경기에 출전했다. 대표팀 선수 경력이 12년 정도 되는데, 35경기 출전인 점을 감안하면 국가대표에 자주 선발된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가장 전성기에 이르렀던 시기에 벤투는 유로 2000(4강, 당시 감독 움베르투 코엘류)과 2002 월드컵에 출전했던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벤투의 감독 경력, 유로 2012 4강 이력

2004년에 선수에서 은퇴한 벤투는 유소년 팀 감독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포르투갈의 클럽 감독을 거쳐 2010년부터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벤투는 유로 2012에서 포르투갈의 4강 진출을 이끌면서 지도자 커리어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죽음의 G조(독일, 미국, 가나) 사이에서 조 3위로 탈락하고 유로 2016 지역예선 첫 경기에서 부진하면서 대표팀 감독에서는 사임하게 됐다.

이후 벤투는 브라질의 크루제이루 EC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당시 브라질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팀은 벤투에게 줄 월급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벤투는 그리스의 클럽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고, 2016-2017 그리스 리그 우승을 견인했지만 구단주와의 관계 악화로 시즌 종료 직전 해임됐다.

벤투는 아시아 클럽 감독도 경험했다. 그리스 클럽 감독 이후 중국의 충칭 당다이 리판 감독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2017년부터 중국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던 팀 상황 속에서 벤투는 고군분투했다. 2018년 7월 22일 톈진 터다(현 감독 울리 슈틸리케)와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중국 경력을 마무리지었다.

생각에 잠긴 파올루 벤투 감독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생각에 잠긴 파올루 벤투 감독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벤투는 KFA와 계약을 맺으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공교롭게 유로 2000 시절 자신의 감독이었던 코엘류가 맡았던 대한민국 대표팀을 제자인 자신도 맡게 된 것이다. 원래는 입국한 뒤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계획을 설명할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그 장소를 현장(K리그 경기장)으로 바꿨다. 벤투 감독은 서울에 있는 KFA 방문과 더불어 파주에 있는 NFC 및 K리그 경기장 등을 방문할 계획을 잡았다.

기자회견도 원래 22일에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22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경기를 한 차례 관전한 뒤 23일 고양의 투숙 호텔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연기됐다. 고양에 있는 호텔에서 숙박하는 이유는 파주 NFC를 자주 방문하기 위해서 파주와 서울의 중간 지점을 잡았기 때문이다.

히딩크만 성공, 이어진 외인 감독 잔혹사

사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감독을 맡아 4년 동안 다음 월드컵을 철저히 준비할 수 있던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히딩크가 감독을 맡기 전 A매치 경기를 가장 오랫동안 맡았던 감독이 차범근(41경기,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패배 후 경질)이었을 정도다.

히딩크는 2001년과 2002년 여름까지 1년 반가량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다만 대한민국이 개최국이었던 관계로 월드컵 예선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이 맡았던 A매치는 월드컵 본선 7경기를 포함하여 38경기로 차범근의 41경기보다 적었다.

히딩크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벤투 감독의 선수 시절 감독으로서 유로 2000 4강을 이끌었던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를 영입했다. 그러나 코엘류는 아시안컵 예선을 포함한 18경기에서 8승 3무 7패에 그친 뒤 오만 쇼크 직후 경질됐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후 조 본프레레(네덜란드)를 영입하여 아시안컵을 치르고 2006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을 맡겼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 간신히 진출하게 되자 본프레레를 경질했고, 딕 아드보카트(네덜란드)를 영입하여 월드컵 본선을 맡겼다. 2005년 겨울부터 감독을 맡은 아드보카트는 비교적 짧은 시간 팀을 이끌며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승점 4점을 획득했으며, 당시 준우승 팀이었던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1-1 무승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다만 아드보카트 역시 계약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시간이 더 필요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아드보카트 이후 대표팀 감독이 된 인물은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를 보좌하여 코치를 맡았던 핌 베어벡(네덜란드)이었다. 그러나 베어벡 역시 2007년 아시안컵에서 바레인 쇼크를 경험한 뒤 감독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됐다.

베어벡이 떠난 뒤 대표팀은 오랜만에 한국인 감독을 선임하게 됐다. 허정무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겸하며 34경기의 A매치를 지휘한 적이 있었다. 대표팀 감독에 복귀한 허정무는 다시 33경기의 A매치를 지휘하며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16강 진출의 성과를 냈다(월드컵 본선 4경기 포함). 허정무의 77경기 지휘는 역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들 중 가장 많은 경력이다.

이후 대표팀은 조광래(A매치 21경기)와 최강희(A매치 12경기)가 나눠 맡아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를 마쳤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선수단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성과를 이룩한 뒤 A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반 년의 시간으로 브라질 월드컵에서 뭔가 보여주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은 울리 슈틸리케(독일)가 맡게 됐다. 슈틸리케는 부임 직후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의 성과를 내며 외국인 감독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감독직을 맡았다. 그러나 아시안컵 이후 슈틸리케는 점차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놓고 경질됐다.

이후 소방수 역할로 대표팀 감독을 맡은 신태용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월드컵에 출전했고, 제대로 된 팀 컬러를 보여준 것은 마지막 경기인 카잔에서의 독일전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히딩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협회의 적극적인 협조와 선수 차출에 있어서 K리그 팀들의 많은 양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월드컵을 개최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K리그 팀들이 양보를 했지만, 지금 와서 선수 차출에 너무 많은 양보를 요구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바로 현장부터 찾는 벤투 감독, 4년 보장 받을 수 있을까

벤투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다. 다른 때와 달리 카타르의 사막 기후를 감안하여 겨울인 11월에 월드컵이 열리고, 이 때문에 벤투에게 주어진 시간은 2022년 12월까지 4년 4개월이다. 이 기간 동안 벤투 감독은 2019년 1월에 열리는 아시안컵도 지휘하게 된다.

일단 아시안컵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당장 9월 7일 코스타리카, 11일 칠레와 평가전을 치러야 한다. 이에 대비한 대표팀 선수 소집 명단은 27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시간이 1주도 남지 않았고, 기술위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지만 벤투 감독은 가급적 직접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KFA 부회장 겸 감독선임위원장인 김판곤 부회장에게 전한 바에 의하면, 벤투 감독은 파주 NFC에 사무실을 준비해 줄 것을 요청했을 정도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월드컵이 끝난 뒤 반 년 만에 열리는 아시안컵 일정을 감안하면, 월드컵 직후 감독직을 이어받은 사람들에게 당장의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시아에서의 대한민국 축구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아시안컵에서는 분명 어느 정도의 성과는 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벤투 감독은 자신과 호흡을 맞춰 온 코치들을 대동하고 함께 입국했으며 입국 후 기자회견이 아니라 현장 방문부터 실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최근 부임한 여러 외국인 감독과는 차별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당장 K리그 현장에서 1경기 본다고 해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한다.

파울루 벤투 코치진 입국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과 함께 선임된 코치진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 파울루 벤투 코치진 입국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과 함께 선임된 코치진이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벤투 감독이 4년 반 뒤의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을 협회와 대한민국 언론들 그리고 팬들이 기다려줄 수 있을지 여부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과는 대한민국이 개최국인 점과 이 때문에 K리그 일정까지 월드컵 준비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국가 전체가 월드컵을 위해 쏟아부은 결과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K리그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는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만큼의 양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 와중에 해외 스포츠 중계의 확대와 인터넷, 스마트기기 등 각종 통신을 통한 정보 유입의 발달로 축구를 즐기는 팬들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런 와중에 성과를 기다리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따르게 마련이다.

코엘류와 본프레레, 베어벡 그리고 슈틸리케 4명의 감독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중압감을 견뎌야 했다. 이 때문에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아드보카트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홍명보가 그리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신태용이 각각 긴급 소방수로 투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허정무가 상당히 긴 시간 감독을 맡기는 했지만, 연속으로 이어진 시간은 아니었다.

그나마 외국인 감독들 중 2년 9개월이라는 가장 긴 시간을 받았던 슈틸리케마저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놓고 기회를 잃었다. 차범근이라는 슈퍼스타를 월드컵 본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경질했을 정도로 대한민국 축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드러나는 성과에 민감하다.

벤투 감독이 이러한 여론의 중압감을 버티고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차분하게 큰 대회를 준비할 수 있게 팬들이 인내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한국 땅을 밟을 때부터 나름 자신의 방법으로 대표팀에 대한 구상을 준비하고 있는 벤투 감독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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