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목격자> 포스터.

영화 <목격자> 포스터. ⓒ NEW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극이 서스펜스를 얻기에 용이한 방법 가운데 관객의 일상을 건드리는 형식은 자주 활용된다. 극의 장르를 떠나 관객의 일상에 가상의 설정을 설치하는 것은 특별한 다른 설정 없이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관객으로 하여금 빠르게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곤지암>이나 흥행에 성공했던 <숨바꼭질>이 대표적이다. 특히, <숨바꼭질>의 경우에는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 치부하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지점의 설정들을 관객들 실제의 삶과 잘 엮어내며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

영화 <목격자>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살인 사건과 사이코패스 범인의 행동반경을 관객들의 일상인 아파트 대단지로 가져다 놓으면서 관객들 스스로가 느끼게 되는 불안을 극의 서스펜스로 활용하고자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게 느껴져야 할 나의 가정이 외부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기에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주인공 상훈(이성민 분), 그리고 자신의 범행을 목격한 상훈의 집을 특정할 수 있는 살인자 태호(곽시양 분)의 구조적 역학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는 이 구조를 통해 획득된 서스펜스를 기저에 깔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02.

새벽에 벌어진 아파트 단지 내에서의 살인 사건이 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 두 사람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은 다양한 모습으로 파생되어 나가며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요소가 된다. 살인 사건이라는 단어 앞에 '외부인에 의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만으로도 제3자의 입장, 아파트 주민들의 입장이 사건 밖으로 첨예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해당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 사이에 발생한 살인 사건과는 그 접근부터가 다르다. 외부인에 의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간의 소유자인 주민들이 이 사건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있으며,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형사 재엽(김상호 분)이 아파트 단지를 돌며 탐문 수사를 할 때 아파트 주민들이 보이는 반응들이 이를 증명한다. 아파트 단지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항변하거나 사건이 공개된 이후 하락할 집값 걱정을 먼저 하거나, 사건의 당사자 혹은 피해자의 처지나 입장과 같은 것은 애초에 배제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스크럼을 짜고 '외부인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과 '사건이 발생한 우리 아파트 단지'에 거리를 두려는 모습. 아파트 주민들의 교육 수준을 말하는 주민의 부족한 주민의식을 꼬집는 장면과 함께 이 지점의 이야기에는 영화가 활용하고 있는 설정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사회 풍자적 요소가 드러난다.

03.

 영화 <목격자> 스틸컷

영화 <목격자> 스틸컷 ⓒ NEW


이 지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심리는 상훈에게로 이어진다. 그는 원하지 않았던 살인 사건의 목격으로 인해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과 개인의 안전을 지키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도덕적인가 하는 물음을 짊어지게 되는 인물이다. 범인이 자신의 집을 특정할 수 있다는 상황의 불안 속에서 자신이 경찰에 협조할 경우 일어날지도 모를 실질적인 위협 앞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아파트 부녀회장이 가져온 동의서를 보며 크게 역정을 내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 한 번 목격하게 되는 범인의 두 번째 살인은 그런 그의 심중에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상훈은 자신과 유사한 환경에 놓여있던 목격자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가족 또한 가만히 있는 것으로 위협과 불안의 본질을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범인의 입장에서도 목격자를 살려둘 이유는 없을 테니까. 한편, 자신에게 함께 경찰서를 같이 가달라던 다른 목격자의 요청을 외면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또한 하나의 동인이 된다. 마침, 그의 증언만 있으면 태호를 잡을 수 있다는 재엽의 요청이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04.

아파트 내의 두 번째 살인 사건 이후에도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친 아파트 주민들을 향해 일갈하는 아내 수진의 모습 또한 상훈에게는 자극제가 된다. 사실 처음에는 그녀도 쉬운 길을 걷고자 한다. 이 아파트가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인 것은 물론, 딸 은지(박봄 역)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처음에 일어난 살인 사건과 달리, 두 번째 살인사건은 함께 생활하는 주민이 겪게 되는 일이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 이상 사건이 바깥 세계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상훈은 처음부터 아파트 주민들의 스크럼과 무관하게 경계에 놓여있는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선택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아파트 주민들은 겉으로 보기엔 외부를 배척하고 자신들끼리 위하는 듯싶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면 스크럼 내에 속해있는 자신들끼리도 서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유약한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은지는 외부에 놓여있는 사건을 향해 직접 뛰어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울타리 내의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건넬 줄 아는, 그녀야말로 처음에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들의 모습이라 항변하던 인물에 적합한 인물인 셈이다.

05.

 영화 <목격자> 스틸컷

영화 <목격자> 스틸컷 ⓒ NEW




태호를 잡기 위해 상훈이 경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에 이르면, 감독은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일반인인 상훈에게로 옮겨놓는다. 일반적으로 이 질문은 사건 해결에 대한 임무를 부여 받은 경찰이나 형사, 군인 혹은 사명감을 갖고 있는 히어로 등의 특수한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상훈이 마주한 것과 동일한 상황처럼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정의를 지킬 수 있느냐 물으며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상훈에게는 딱히 그럴만한 의무나 정의감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앞서 말했듯 그는 단순히 목격자의 입장에서 사건에 개입되었을 뿐이니 말이다. 이 사건을 해결한다고 얻게 될 이득이랄 것도 없다. 영화에서처럼 계획대로 되지 못했을 경우 위험만 감수하게 될 뿐. 게다가 공권력이 얼마나 유명무실한지 깨달은 상훈의 입자에서는 형사의 협력 요청 앞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06.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클라이막스에서 마주하게 되는 천재지변에 의한 갈등의 해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적어도 자신의 계획에 번번히 등장해 방해하는 상훈에 대한 태호의 짜증과 자신의 가족을 위협했던 태호에 대한 상훈의 분노까지는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감독이 두 사람에 대한 처분을 우연적 상황에 기대는 모습은 어쩐지 허망하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뒷산 정비 공사나 하라던 상훈의 볼멘 소리를 통해 설정적으로는 이미 준비를 해 놓은 듯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단순히 범인을 처벌하는 권성징악의 결말을 원해서가 아니다. 다만, 러닝타임 내내 쌓아 온 상훈이라는 인물의 입체감과 내면의 심리들을 모두 무시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07.

 영화 <목격자> 스틸컷

영화 <목격자> 스틸컷 ⓒ NEW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상훈은 사건이 일어났었던 자리로 돌아와 살려달라며 소리를 지른다. 현재 그에게는 아무런 위해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나름대로는 큰 사건을 겪고 난 뒤의 공동체적 변화, 시민의식의 고취 혹은 주변에 대한 관심의 증진과 같은 것들을 기대하고 또 확인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아파트 단지는 고요하기만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 주는 메시지다.

잘 알려진 대로 영화는 큰 틀에서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 효과(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감소하여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게 되는 심리현상)라고 불리는 현상을 실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 영화가 짚어내는 이 시대의 진짜 문제는 공동체의 위협에 대한 학습 능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없는 목격자는 목격자가 아님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나. 목격자는 사라지고 방관자만이 남은 도시에서 과연 방관자들은 언제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이야말로 이 영화 <목격자>가 관객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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